[카오스 강연스케치 8강]
글 : 카오스재단 김수현 팀장
바깥세상의 침묵, 자폐
유리 관 속에 갇힌 생쥐 두 마리.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한 마리씩을 넣어두었다. 유리벽 너머에도 생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왼쪽 생쥐는 오른쪽 생쥐를 거의 쳐다보지 않고 관 속을 뱅뱅 맴돌기만 한다. 유리벽 너머의 오른쪽 생쥐가 외치는 것 같다.
’이봐, 같이 탈출할 방법을 찾자, 여기 좀 봐줘, 이봐!’
하지만 왼쪽 생쥐는 다른 생쥐에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바깥세상의 외침은 그에겐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생쥐는 ’shank2 시냅스 유전자’가 부족한 생쥐다. 이는 자폐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영상을 보면서 ’shank2 시냅스 유전자’가 부족한 사람을 상상해보았다. 어머니가 "사랑해"라고 말해도 잘 들리지 않고, 친구들이 "같이 놀자"라고 말해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 그의 외로운 생이 떠올랐다.
신경정신질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파킨슨병, 간질, 알츠하이머 등의 병은 신경세포의 사멸과 관련이 있단다. 반면 자폐 같은 인지·정서장애는 시냅스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shank2 시냅스 유전자’도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뇌 8강’의 강연자 김은준 교수(KAIST 교수, 기초과학연구원 단장)는 자폐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처음에 시냅스 유전자를 보고는 약간 의아해했어요. ’보통 시냅스 유전자는 신경전달에 관여하는 유전자형 단백질인데 어떻게 갑자기 정신질환하고 관계가 있지?’ 하고. (중략) 시냅스는 신경전달이 일어나는 물리적인 장소인데 시냅스를 현대과학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했어요. 처음에 한 시냅스 안에 보이는 단백질이 20종이었는데 몇 년 더 연구해보니 적어도 1000종 이상의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사실은 뇌를 쪼개서 환원적으로 쉽게 접근하려다가 이 안에 새로운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다시 뇌라는 우주에 대하여
김은준 교수를 비롯해 왜 과학자들은 뇌를 우주에 빗대어 설명할까? 그저 시인 흉내를 내고 싶은 걸까?
16세기 중반(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지구가 도는 게 아니라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 세상의 중심은 ’나’고, 내가 속한 지구였다. 그런데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던 지구가 태양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이후 지구는 태양계의 작은 행성일 뿐이란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는 태양계가 속한 은하를 일컫는 말인 ’우리 은하’ 내의 작은 변방에 불과했다. 어릴 적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던 내가 자라면서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는 기분을 나의 지구도 겪고 있었다.
그럼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가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할까? 아니다. 우주엔 ’우리 은하’ 같은 은하가 자그마치 1000억 개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각 은하 속에는 지구 같은 행성이 수백억에서 수천억 개 있다고 한다.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다 보면 그것은 너무나 커지고 있고 ’창백한 푸른 점(<코스모스> 저자 칼 세이건의 표현)’ 지구에 사는 나는 너무나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인간의 몸에 있는 작은 뇌를 광대한 우주에 빗대는 것은 어불성설로 느껴진다. 그런데 뇌를 한번 까보자. 인간의 인식과 각종 뇌질환을 이해하기 위해 유사 이래 수많은 과학자가 뇌를 해부해보았다. 오랜 연구 끝에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먼저 뇌 안에는 뉴런이라 불리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이것은 우주 내에 있는 은하의 숫자와 비슷하다. 그리고 은하처럼 많은 신경세포 속에는 각 1000개에서 1만 개의 시냅스가 있다. 시냅스는 각 신경세포를 연결해주는 가지 역할을 한다. 그럼 1000억×1만 개(1000개)니까 1000조(또는 100조) 개의 시냅스가 있단 의미다. ’이래서 우리가 뇌를 아직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개의 시냅스 속에는 유전자 단백질이 1000종이 있다고 한다. 종류만 1000종. 내 머리는 기껏 해봐야 1.4kg인데, 그 속에 1000조 개의 시냅스가 있고 기껏 대장균 정도 1마이크론 크기인 시냅스 속에도 와글와글하게 시냅스 단백질이 있다. 작은 세계 안에 끝없는 세계가 있고, 그 안에 다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티끌에 온 우주가 있다’는 화엄의 사상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우리 뇌는 우주를 품고 있다.
유전일까 환경일까
처음에 김은준 교수의 강연 자료를 받고 걱정이 들었다. 자폐의 원인이 유전자 때문이라니 참석자들은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만일 자녀가 자폐를 앓고 있다면 이 강연을 듣고 부모들은 얼마나 가슴 아플까. 더구나 아직 제대로 된 약도 없단다. 사회자였던 김철훈 연세대 의대 교수는 약리학 전공자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인 표적이 불분명하기에) 아직 허가된 약이 없습니다. 모든 약은 또한 독이 될 수도 있으므로 유의해야 합니다."
강연을 모두 듣고 보니 뇌라는 우주 안에서 아주 작은 시냅스 오류가 일어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닐 것 같았다. 또한 우리 인간은 작지만, 우리가 품고 있는 뇌는 끝없는 우주이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치료약을 찾지 못하는 것도 납득이 되었다.
유의해야 할 점은 자폐의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지만 환경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다만 아직 환경요인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덧붙여 뇌 세포 속 단백질에 필요한 비타민, 미네랄, 아연의 결핍에 의해서도 자폐가 유발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순간 귀신처럼
"10년, 20년 뒤에는 병원에 가면 혈액검사를 하듯이 유전체 검사를 할 것입니다. 현재 검사비가 150만 원인데 그때쯤이면 정부 부담금까지 하면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알게 되는 거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원이었죠. 이젠 1인당 150만 원이면 2만5000개의 유전자를 완벽하게 읽어냅니다."
뇌과학을 배우다 보면 이것의 발전 속도가 공포영화 속 귀신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귀신이 저 멀리 흐릿하게 있는 것 같은 주인공은 ’도망갈 시간이 있겠지’ 하고 안심하는데, 귀신은 그때 갑자기 눈앞에 다가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알파고가 그렇게 성장했으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올해 3월, 바둑기사들도, 뇌과학자들도, 인류도 모두 안심하고 있다가 그의 놀라운 점프에 충격을 받았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자폐도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 획기적인 치료법이 나타날 것이다. 전 세계에 수천 개의 신경과학 연구실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연구자는 수만 명이라고 한다. 자폐 원인도, 치료법도 전 세계 수만 명이 밝혀내고 있으니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 귀신처럼 등장할 것이다.
출처
KAOS ’뇌’ 강연 중 8강 ’시냅스, 생쥐, 그리고 정신질환’
강연자 : 김은준(KAIST 교수, 기초과학연구원 단장)
패널 : 고재원(연세대 교수)
패널 : 한기훈(고려대 교수)
사회자 : 김철훈(연세대 의대 교수)
강연 영상 : 카오스재단(http://www.ikao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