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Jun 24. 2016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소설가 권여선의 커밍아웃




권여선의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가 나왔을 때 작가를 아는 몇몇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은 물론이고 '작가의 말'까지 술에 관한 이야기로 채움으로써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책 한 권이 탄생했다. 등단작부터 한결같이 술이 등장하는 소설을 통해 암암리에 애주가임을 짐작케 했던 작가가 이젠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자신이 '주정뱅이'임을 커밍아웃 한 것이다.


권여선은 "30년의 음주 이력을 거치며 온갖 우려와 질타, 냉담과 무시, 위협과 압박을 받아왔다"고 토로한다. "제발 이제 술 이야기 좀 그만 쓰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이런 제목을 지은 이유는 뭘까? 더군다나 소설집에 실린 단편 제목은 '봄밤', '삼인행', '이모', '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 켤레', '층'으로, 이른바 표제작도 없다. 소설집의 제목으로 수록 작품 중 하나를 고르는 관행이 무너지고 있는 추세를 따른 건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책을 묶고 보니 소설집 전체를 아우를 만한 제목이 없더라고요. 전혀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술이 빠지지 않는 작품들이 모아진 김에 한번쯤 정리하고 지나가면 어떨까 했어요. 저와 작품 속 인물들, 또 각 작품 속 인물들끼리도 서로 '안녕' 하며 인사를 나누고 술 한잔하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요."

술자리 풍경을 가장 맛깔나게 쓰는 소설가 권여선


술 마시는 장면과 술에 대한 묘사를 권여선만큼 맛깔나게 표현하는 작가가 있을까. 등단작인 <푸르른 틈새>부터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과 다섯 권의 소설집을 통해 각양각색의 상황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태를 실감나게 표현해온 권여선의 장기가 이번 소설집에서라고 예외일 리 없다.

 
먼저 첫 번째 수록 작품인 '봄밤'을 보자. "젖을 빠는 아이처럼 더 많은 알코올을 쭉쭉 흡수하길 원하"던 '영경'은 치료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안주로 소주 세 병을 순식간에 해치우곤 점점 술에 취해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라고 김수영의 시 '봄밤'을 큰 소리로 외친다. 마시고 싶은 욕망과 절제해야 한다는 무의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알코올 중독자의 심정이 절절하다. 


"매초 매초 알코올의 메시아가 들어오는 게 느껴집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 단편 '역광'의 술자리 '썸' 대사는 또 어떤가. "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굽니까?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 따르는,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대체 누굽니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알딸딸한 작업 멘트가 아닐 수 없다. 


"술을 쓰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만, 제게는 공기처럼 너무 자연스러운 존재라 술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죠. 도대체 사람이 만나서 술을 안 마시고 뭘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상하게 차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이끌고 술집으로 들어갈 수밖에요. 그렇게 되니까 뜯어고치려 해도 속에서 너무 우러나와 가지고 (뜯어고치는 것이) 되지가 않는 거예요. 어떻게 하겠어요."


술자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놓은 꼴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 '설'을 연기하던 나는 어느덧 크게도 아니고 자그마하게 '설'을 푸는 小설가가 되었다. - <안녕 주정뱅이> '작가의 말' 중에서


'술'과 小'설' 사이에 이렇게 절묘한 관계가 있었던가. 아무튼 권여선의 등단 과정에도 술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니 이쯤 되면 운명이라 해도 좋겠다. 권여선은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드라마와 영화판을 기웃거리다 실패하고 과외를 하며 당시 한창 붐이었던 PC통신에 빠져 거의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물론 PC통신과 음주는 술과 안주처럼 한 몸이었다. 


당시 열악했던 인터넷 환경 때문에, 접속이 폭주하면 채팅방 밖으로 무작정 튕겨져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컴퓨터의 커서는 반짝이고, 할 일은 없고, 술은 남아 있고... 재접속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이것저것 쓰다 보니 한 달 후에는 엄청난 분량의 글이 모아졌고, '이걸 소설로 한번 만들어볼까' 해서 이리저리 엮어본 것이 제2회 상상문학상 당선작인 장편 <푸르른 틈새>였다.


하지만 소설가로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던 권여선의 작가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1년 반 정도 지난 후에는 청탁이 완전히 끊겼다. 아동물과 청소년물을 쓰면서 어느새 마흔을 앞둔 권여선은 불현듯 노후대책이라도 세워야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학원행을 결정했다. 학원강사가 되면 이제 영영 돌아올 수 없을 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한 출판사에서 청소년물을 써주는 대가로 소설집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것이 바로 등단 8년 만에 나온 첫 소설집 <처녀치마>였다. 


소설집이 나온 후 뜻밖에도 단편 청탁이 들어왔다. 8년간 소설을 쓰지 않았기에 망설이고 주저하는 게 당연했으나, 웬일인지 덥석 하겠다고 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행복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3년 후 출판된 두 번째 작품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분홍 리본의 시절'이다. 그리고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사랑을 믿다'를 발표했다. 

"고통이나 비극에 대해 옆에 앉아 있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


권여선은 지나간 시절의 과거를 반추하고, 뒤늦게 드러난 아픈 진실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변주하며 조금씩 소설 세계를 확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소설집에서는 이전 권여선의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분위기가 감지된다. 관찰자로서 삶의 비의를 포착해내던 날카로운 시선이 한껏 무뎌지고 '착한' 느낌마저 물씬 풍기는 소설들이 등장한다. 


"예전에는 삶이나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이 무자비하달까, 삐딱하달까 그랬어요. 평화로운 일상이나 고상한 인간이 어느 날 뒤통수를 맞고 감추었던 본색을 드러내며 깨지는 순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면서 고통이라는 것은 뒤통수를 맞아서가 아니라 아무 잘못 없이도 그냥 농담처럼 온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와해될 수 있는 허약한 존재에 대한 망연자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자꾸 들여다보니까 날카로운 것이 깎여 부드러워지고 겹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제 더 이상 '뒤통수 후려치기'가 고소하지 않고, 그냥 슬픈 거죠. 예전에는 고통이나 비극에 대해 고발하고 위악을 떨며 딱 치고 도망가고 싶었다면, 이제는 안아주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옆에 앉아 있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요."

 
이러한 변화를 처음으로 시도한 작품이 죽음을 앞둔 두 남녀가 가차 없는 삶을 사랑의 형식으로 견뎌내는 ‘봄밤’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이해받게 쓰고 싶었어요. 자칫하면 신파로 흐르고, 너무 미화시킬 우려가 있어 엄청나게 자제하면서 썼어요. 안 쓰던 방식이라 너무 어렵더라고요. 감정이 실리는 것, 슬프게 만드는 것은 현대 소설에서는 촌스러운 것이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어요.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언어가 중요하다며 잘난 척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반성을 많이 한 계기가 됐어요.


독자들이 보기엔 미미하겠지만 제 입장에선 워낙 새로운 시도라 써놓고도 잘 가고 있는 건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엽서도 받고, 잘 읽었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셔서 큰 힘을 얻고 이후에 '이모'나 '카메라' 같은 다음 작품을 쓸 수 있었어요." 

"소설의 역할은 '정서의 가벼운 흔들림'만으로 충분"


권여선의 소설에는 해피엔딩이 없다. 어떤 이유로 고통을 겪는 인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견뎌낼 뿐이다. 그리고 그 고통이란 대부분 우연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 느닷없이 뒤통수를 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나지막이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봄밤')라고 읊조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마치 이에 대한 대답을 하듯, 많이 배운 여자와 못 배운 남자의 쓸쓸한 연애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수록 단편 '층'에서 술에 취한 남자는 "이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소설은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라는 말로 끝이 난다. 완전히 독립된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는 공교롭게도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8쪽)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242쪽)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흔히들 고통을 극복한다고 하는데, 저는 고통이 극복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불행이라는 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없어지는, 생각하기 나름인 문제인 건지 잘 모르겠어요. 소설은 고통받는 거, 그러면서도 사는 거를 보여줄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힐링이라든가 극복방법 이런 건 종교나 다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이겠죠."


그렇다면 문학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문학이 고통스런 삶에 그 어떤 위로나 희망도 주지 못한다면 그 존재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소설은 활자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상상하는 등 자기가 해내야 하는 게 많기 때문에 눈물이 쏟아지거나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같은 즉자적인 반응을 끌어내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동’이라는 말을 쓰는데, 읽는 동안 가슴속에 미미하게 뭔가 일어났다고 느끼는 정도가 소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해요. 제 소설을 읽고 쓸쓸하구나, 허무하구나, 슬프구나, 해도 좋고 아무것도 아니구나, 해도 좋고 다 좋아요. 다만 정서가 살짝 흔들리길 바랄 뿐이지 뭔가 의미를 획득하길 원하진 않아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쓴 것들이고요."


문학상 심사를 종종 맡는 권여선 작가에게 눈여겨보는 젊은 작가에 대해 물으니 황정은, 김금희, 최정화, 최진영 등 누구 한 명을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했다. 잘 쓰는 작가들을 보면 반갑고 기운이 나면서도 한편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가난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여선은 만약 술을 마시고 설을 푸는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덜 행복하게 살았을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만약 제 인생에 술과 소설이 없었다면 제 결벽주의적인 성향이나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 등에 비춰볼 때 매우 까다롭고 편협한 인간이 됐을 확률이 높아요. 술을 마시면 제가 하는 짓을 모르니 어쩔 수 없이 겸손해지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배려의 폭도 넓어진 거죠. 또 제가 이른바 점점 '착한' 소설을 쓰게 된 것도 나이가 든 이유도 있지만 아마 글을 써오면서 순화된 면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언어 자체가 주는 교정의 힘이 분명히 있거든요. 아마 글을 쓰지 않았으면 저는 더 괴팍한 사람이 됐을 거예요."


권여선 작가와 한 인터뷰는 어느 모로 보나 소주 한 잔을 앞에 두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한낮의 인터뷰'에는 얼음 동동 아이스 커피가 함께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권여선 작가는 가녀린 손을 내밀며 "인터뷰하느라 고생했으니 조금 있다 동네 술집에서 한잔 할 거예요" 했다. 나도 모르게 '사랑을 믿다'의 저 유명한 첫 문장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가 떠올랐다.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낯가림이 심한 권여선 작가는 인터뷰와 같은 공식적인 만남을 몹시 꺼린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러한 내색 없이 오히려 즐겁다고 느껴질 만한 시간을 내준 작가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모쪼록 그날의 인터뷰가 권여선 작가에게 '한없는 축복'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여행자 김향미·양학용, '라오스'에 꽂힌 까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