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 순수하고 기발한 아이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메시지, 아이 그림을 명화처럼 감상하며 '아이 그림 읽어주는 여자' 권정은의 해설을 들어봅니다.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 내 자신, 그리고 세상과 다시 나누는 이야기. 이 연재는 권정은 'Art Centre 아이' 원장의 책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편집자 말
인간이 동물과 가장 다른 것 중 하나는 '거울 보기'가 아닐까. 자기 얼굴 들여다보기, 그리고 끊임없이 꽃단장하기.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하루에 최소 한 번은 거울을 보게 된다. 세수한 직후나 이를 닦을 때 특히 많이 보게 된다. 사실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거울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깔끔하게 가다듬는 것은 타인의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은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만 거울을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애(自己愛)', 일종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있기 때문이다. 막 세수를 마쳐 촉촉한 수분을 머금은 얼굴은 보통 때보다 더 예쁘고 잘생겨 보인다. 몇 초간 촉촉한 내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현상은 어린아이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자아이들을 보라. 엄마의 예쁜 옷을 몽땅 꺼내서 입어보고 울긋불긋 향긋한 엄마 화장품을 덕지덕지 발라보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른들과 똑같은 즐거움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건강한 '자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힘센 엔진이 된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슬슬 자뻑 증세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내 무의식은 그것이 행복한 엔도르핀을 샘솟게 하는 방법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아이 때와는 다른 힘들고 불안한 상황을 겪기 시작했던 나에게는 그런 순간 자뻑 증세가 쉬지 않고 나타났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의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응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건강한 정신의 생존을 위한 일종의 균형 잡기였다. 망상에 이를 정도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힘든 상황에 대항하여 정신적 균형을 잡아줄 적절한 자기애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뻑 상태'는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우리에게 몇 분, 몇 초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자기최면의 상태가 되어준다. 이 자기최면적인 자기애 상태는 외모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게는 아침에 욕실에서 거울 한 번 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자뻑 상태가 되려면 스스로 자신의 좋은 점과 강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한다.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마음먹은 대로 잘 안 풀릴 때, 남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왠지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무능력해 보일 때 '자뻑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채워보자.
우리가 우울할 때는 사실 우울한 상황에 놓인 현실보다 그 상황을 우울한 방향으로 인지(Perception)하는 것 자체가 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자체보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감정까지 변화시킨다"고 주장한 아론 벡(Aaron Beck)의 이론을 보면 우울한 사람은 유난히 '0 아니면 100'이라는 식의 양극화적 인식이나 파국적 결말에 초점을 두는 경향, 나빴던 한 가지 예를 너무 일반화시키는 경향, 지나치게 남 탓이나 자기 탓을 하는 경향,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결론의 비약화 등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탓에 우울증이 심해진다고 보고 있다. 인식을 바꾸면 우리의 감정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어떤 일에서든 자발성도 높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도움도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상처에 대한 회복력도 빠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힘들 때 '자뻑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을 적당한 자아도취 상태로 끌어올려 긍정적이고 행복한 시선으로 상황을 인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꽃이다. 그런데 이미 꽃인 우리가 더 아름다운 꽃으로 거듭나게 하는 자뻑 힐링법을 여덟 살 태언이의 그림을 보며 깨닫게 된다.
태언이가 그린 그림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린 욕실에서 한 아이가 이를 닦고 있다. 얼핏 보면 왼쪽의 변기나 화장실 풍경이 먼저 보이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울에 비친 미소 짓는 아이의 커다란 얼굴이 보인다. 뒤통수보다 거울 속의 얼굴이 두 배는 큰 것 같다. 자뻑 얼굴인가 보다. 아이의 그림도 예쁘고 삐뚤삐뚤한 선도 사랑스럽다.
예쁘게 이 닦는 아이를 보면 우리도 이를 닦고 싶다. 그러면서 우리의 힘듦까지 닦아내고 싶다. 거울 속의 예쁘고 멋진 나를 바라보며 웃어보자. 스스로를 안아주고 마음껏 자뻑하는 건강한 자기 최면의 시간을 꼭 갖자.
글 : 칼럼니스트 권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