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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06. 2016

도시의 산책자 '구보'를 환생시킨 까닭

소설가 윤고은 인터뷰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 <밤의 여행자들>과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의 저자 윤고은의 신간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는 2014년 <알로하>를 출간한 이후 2년 동안 쓴 여덟 편의 소설을 모은 것이다. 윤고은의 소설에는 세상에 없는 직업, 사업이나 상황 등 상상의 영역에 포함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러한 소설과 함께 이전보다 좀 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소설도 다수 포함되었다.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 개가 예술가를 후원하는 이야기, 소설가 박태원이 환생한 이야기, 성폭행과 살인을 목격한 남녀의 이야기 등 작가는 다양한 소재를 통해 세상의 여러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Q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에 수록된 작품 '된장이 된'에서 아버지와 X는 채무자-채권자의 관계이지만 둘 사이가 정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드러내려 했던 이들의 관계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예요. 아버지도 아버지만의 세계가 있잖아요. 자기와 10년을 함께한 동료를 믿고 싶은 아버지를 통해서, 그를 살게 한 것이 빚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에게 X는 자신의 청춘을 알던 친구나 동반자처럼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동반자, 청춘을 함께 나눈 친구일 것 같아요. 나중에 딸도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게 돼요. 외부에서 보면 사기꾼과 무능한 사람 사이의 일처럼 보이지만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법이잖아요.



Q 'Y-ray'에서 Y가 된 사람들, Y를 보유한 사람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전 소설집에서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구도의 소설이 그려졌어요. 제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한 기업이 도시 전체를 장악한 기업도시 같은 거예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사택 같은 공간도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되잖아요. 'Y-RAY'는 이전 몇 편의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어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Y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사회에서 문제가 있다고 미리 진단해버려요. 우리 사회, 기업 같은 곳에서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을 드러내고자 했어요.



Q '불타는 작품'에서 작품을 불태운다는 설정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책도 그림도 예술이 너무 많잖아요. 사람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림이나 노래가 있지만, 사람들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보다 공급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특이한 무언가가 아니라면 어떤 의미를 지니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시한부처럼, 이 순간이 아니라면 볼 수 없도록 작품을 불태우는 것이죠. 작가에게 아주 소중한 작품을 시한부로 전시한 후 자신 앞에서 불태운다면 자기 자식을 잃는 느낌이 들 거예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불태우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소중함을 더 느낄 것 같았어요. 행위예술처럼 소중한 작품을 자해하는 정도가 되어야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죠. 한 예술가가 자신이 만든 작품을 소각해야 하는 설정에서 그는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그런 상황을 만들었던 거예요.





"작가는 자본주의 상황에서 항상 지는 인물… 자본의 대척점에 있어"



Q '책상'에는 글이나 문장에 대한 생각이 많이 열거되어 있고, 소설가라는 자의식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즐거움과는 별개로 불안한 작업인 것 같아요. 제 소설 속 작가나 예술가는 자본주의적으로 소비되는 상황에서는 항상 지는 인물이에요. 자본과 대척되는 지점에 있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한 거예요.



굳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향수 개발자라든지 무엇인가 창작해야 하는 인물, 주어진 것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인물, 없던 것을 만들어야 하는 인물이 많았어요. 이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사회에 안착하게 하는데, 그런 인물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에요. 그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그런 인물들이 제 소설에 자주 등장해요.



Q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잘 수긍한다고 보입니다. 



취업난을 겪는 젊은이, 은퇴했지만 재취업해야 하는 아버지라든지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이나 자신을 알려야 하는 예술가 등 이런 인물들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표현하기에 좋아요. 그래서 그런 인물을 계속해서 설정하게 되는 것이에요. 표제작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의 주인공도 생존 배낭에 창의적으로 무엇인가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창작자와 비슷해요. 작가나 창작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휩쓸리기 좋은 인물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의 효율로 계산되지 않아도 존재 가능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에게 예술가나 창작자는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Q '다옥정 7번지'에서 환생한 박태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작가 박태원을 좋아하시나요? 



첫 장편 <무중력 증후군>에 친구 이름으로 구보라는 인물이 등장해요. 제가 소설 속 인물에게 이름을 붙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나'나 이니셜로 많이 썼어요. 이름을 붙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에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는 작품 자체로도 좋지만, 구보가 가진 산책자, 도심을 다니면서 영감을 얻는 이미지가 작가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어서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그리고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한 번은 그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번에 쓰게 됐어요.



Q 작가님의 소설에는, 존재할 법하지만 그러면서도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소설이 허구라 하지만 비현실적이거나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작품을 구상하거나 쓰는 단계에서는 비현실적인지, 말이 되는지와 같은 것을 주변에 많이 물어봐요. 그런데 작품이 나온 이후에는 그런 지점에 크게 개의치 않아요. 글을 쓸 때는 흔들릴 때도 있지만, 소설을 완성한다는 것은 어떤 부분에 대한 확신으로 봉합한 것이고, 하나의 세계가 소설로 나타난 것이니까 개연성에 대해서는 초월해 있어요.



오히려 그 자체로 제 소설을 즐기셨으면 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소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실을 과장하고 풍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부분에 매력을 느끼면서 소설을 쓰는 것이라서 블랙코미디처럼 일부러 더 그렇게 훌쩍 넘어가는 부분이 있어요. 





"돈과 소문의 두려움을 쓰지만 나름의 ‘체온’에 주목하려 해"



Q 이번 소설집에서 우연성이나 과장이 두드러졌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우연성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세상을 보니깐 우연한 것이 참 많이 있더라고요. 우연한 상황이 겹쳤을 때 실제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데, 그런 것을 이야기로 풀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쓴 것이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였어요.



Q 소설 속 인물들이 대부분 선하게 보였고, 평범한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나약한 인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소설집은 당시 썼던 글들을 묶은 것이라 기복이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어둡게 쓰고 나면 따뜻한 것을 쓰고 싶고, 강약강약 오가는 와중에 쓴 작품을 묶은 것이에요. 저는 바로 전에 썼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우울한 것을 쓰고 나면 그 다음에는 밝은 면을 쓰게 되고, 동전의 양면처럼 번갈아가며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집은 이전에 비해서, 우스꽝스럽지만 현실을 잘 수용하는 인물이 많았던 시점인 것 같아요. 다음 소설집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Q 선한(?) 인물이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의 다른 면이 존재하잖아요, 작가님이 보기에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결여된 부분 혹은 한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번 소설집에 유독 그런 인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 소설에서 악한 인물은, 회사에서 잘렸는데 돌아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정도의 인물이었어요. 이번 소설집에는 인물 자체에 강한 성격이 드러난 인물은 거의 없었어요. 저는 한 인물이 악하다기보다는, 사회나 시스템이 무섭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싸우더라도 사실 둘 다 불쌍한 존재라 생각을 하는 것이죠. 독자들이 인물보다는 그 인물이 가진 배경이나 무대를 끔찍하게 생각하면 좋겠고. 이 소설에서도 그런 잔상이 많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Q 지금까지 작가님의 소설에서 가장 집중했던 이야기나 소재는 무엇인가요? 



살아가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보다는 압력을 느끼거나 무서워하는 것을 많이 쓴 것 같아요. 다루었던 소재는 다르지만 두 가지로 압축하면 돈(자본)과 소문인 것 같아요. 두 개는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한정된 사회 안에서 휘말리기 시작하면 한 사람을 매장할 수 있는 것들이라서 그런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써온 것 같고, 아직도 쓸 이야기가 있어요. 이런 부분을 썼기 때문에 희망적인 이야기가 나오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자본이나 소문의 두려움을 쓰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나름의 체온 같은 것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장소 : cafe lobby

취재 : 신양희(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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