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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07. 2016

두 번째 읽을 때 놀라운 추리소설

[서평] <인 어 다트, 다트 우드>

     



작가와 독자 - 미끼를 던지는 자, 미끼를 무는 자



추리소설의 매력은 작가와 독자간의 잡고 잡히는 싸움에 있다. 작가가 가급적 많은 양의 미끼를 직간접적이고 영리한 방식으로 던질수록, 독자들은 그 복잡하게 얽힌 미끼들로부터 작가가 의도한 바를 잡아내려 애쓰면서 재미가 증폭된다. 



최근 흥행한 영화 '곡성'에 얽힌 논란도 이 과정에서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은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라고 제작의 의도를 말했다. 하지만 영화 내용에는 관객들을 오독하게 하는 '모호함'이 존재했고, 즉 그가 던진 미끼들이 정답을 향해 있지 않고 간극이 벌어지면서 일부 관객과 평론가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루스 웨어라는 영국 신인작가가 쓴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예담, 2016년)에도 한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이 누구인가'가 이야기 후반부의 긴장감을 담당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는 사실 범인이 너무나 뻔한, 그래서 도리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을 때, 묘사 전체가 미끼 덩어리들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에 이 책의 마력을 발견했다.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내용처럼 삽입된 대사, 배경 묘사가 사실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군지를 가리키는 화살표로서 촘촘히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머리가 복잡하기만 했다. 이후 긴긴 세월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했다. 과거는 과거로만 묻어두어야 했다. -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21쪽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는 스물 여섯 살의 추리소설가 노라에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하면서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신인은 10년 전 인연을 끊었던 친구 클레어이고, 곧 결혼을 할 것이니 싱글파티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메일을 받은 주인공 노라의 심정은 불편하기만 하다. 인기쟁이 클레어가 절친들만 불러 모아도 모자랄 자리에 어째서 자신을 초대한 것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클레어에 대한 과거의 아픈 기억이 살아나 망설인다. 그들에게 얽힌 과거사는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서야 밝혀지기 시작한다. 결국 노라는 평소의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약속 장소인 유리로 만들어진 기괴한 형상의 저택으로 향한다. 



모든 인간 사이엔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



이 모임에는 노라가 전에 알던 클레어의 친구들이라고 믿기 어려운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참석하고, '싱글파티'에서 왜 굳이 이런 일들을 하나 싶은 이상한 이벤트들을 벌인다. 후반부가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면, 전반부는 이 기괴한 싱글파티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니나가 씁쓸하게 말했다. "전보다 치밀하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길 뿐이지." -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186쪽



이 대목에서 작가가 친구들 사이에 형성될 수 있는 권력관계와 그에 얽힌 감정이나 행동을 세심하게 묘사한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 노라의 10년 전 절친 클레어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전형적인 '여왕벌'형 인기쟁이다. 본문에서 주인공이 "클레어는 내가 원하는 전부를 가졌고 언제든 자신감이 넘쳤다. 클레어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강해지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의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몰린다. 노라도 10년 전 그녀와 함께 어울릴 때, 함께 어울리면서 얻는 이득 때문에 그녀의 부조리한 면 정도는 그냥 눈감고 넘어갈 정도로 수직적인 권력관계에 있었다. 



10년 후에 만난 뒤에도 이런 구도는 여전하다. 클레어의 현재 친구인 플로는 그녀의 옷과 머리 스타일을 있는 그대로 모방할 정도로 그녀를 일방적으로 숭배하며, '싱글파티'를 성공적으로 여는 것이 유일한 목표일 정도로 비정상적인 애정을 과시한다. 노라도 "내 자아는 텅 빈 곳 같아서 클레어 같은 사람에게 금세 휘둘릴 수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클레어는 강력한 존재다. 친구 및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내적갈등을 외적인 긴장감과 조화롭게 배치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캐릭터에 대한 부분이다. 클레어와 노라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그 외의 캐릭터들은 기괴하다는 인상을 줄 뿐 특별한 매력 없이 다소 불명확하게 그려져 있다. 주인공 노라의 시점에서 묘사가 이뤄지는 만큼 그녀와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이들은 성의 있게 그려졌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주인공의 긴장되고 경직된 태도가 서술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 같다.



주인공 캐릭터들과 조연 캐릭터 간의 조화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하얀 눈길과, 짙은 어둠. 안락한 집과 괴기스러운 숲 속의 집 간의 대비는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끝까지 짙은 어둠이 깔린 숲길을 숨가쁘게 달리는 기분이다. 처음엔 미지가 주는 어둠(dark)이었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상처와 어둠이 낳은 또 하나의 어둠과 맞닥뜨리게 된다. 왜 주인공 노라가 10년 동안이나 이름도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독자들은 슬픈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배우 리즈 위더스푼 제작으로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니 조만간 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겠다.


글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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