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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07. 2016

현실을 설명 못하는 경제학… '인간'이 빠졌다

김홍기의 세상의 모든 책들 [숨겨진 명저]

                    

* 지금 세계의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국내 최대 출판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의 김홍기 디렉터가 유럽·미주·아시아 지역 출판계 동향을 친절하고 재미있게 읽어준다. – 편집자 말


2010년에 영국 팔그레이브 맥밀란 출판사에서 출간된 <위기와 회복 : 윤리, 경제학 그리고 정의>(CRISIS AND RECOVERY: Ethics, Economics and Justice)는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에 관한 의미 있는 반성과 견해를 담아낸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2016년 현재의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브렉시트' 등의 정세를 더 잘 설명해내고 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경제학적 관점에서 유물론과 사회학을 배경으로 세상을 해석해냈다면, <위기와 회복>의 저자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는 사회운동가이자 종교인, 철학자로서 역사적 변주와 인간 심리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현상들을 훌륭하게 고찰하고 있다.

<위기와 회복> 영국판 표지


1929년 대공황은 미국의 모든 산업 분야 지수들, 주식, 생산성, 고용지표, 수출과 수입 등을 50% 이상 극적으로 감소시켰고, 사람들은 그에 따른 최악의 시련들을 물리적으로 체감하고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1933년 3월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수락 연설에서, 지금 미국이 직면한 문제와 고통의 실체는 '경제'가 아니라 바로 '도덕의 위기' 그 자체라고 선언했다. 1920년대, 끊임없이 투자자와 경제주체들에게 장밋빛 희망을 던져주면서 주식과 자산 가격을 부풀리는 데 혈안이 된 것에 대한 일침이었다. 대공황은 결국 유럽의 모라토리엄을 낳고 히틀러를 등장시켰고, 그 이후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일련의 역사들을 만들었다.


우연히도 이러한 주기는 반복되어서,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또한 대공황 당시의 양상과 비슷했다. 이해관계자들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자산의 거품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책임을 서로 전가하면서 분산시켰고, 그 거품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 때, 한순간에 일은 터지고 만 것이다!


200년 넘도록 고도로 발전해온 '경제학'이라는 학문. 그리고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해서 듣고 사용하는 '경제적'이라는 단어. 하지만 우리는 그 고도로 발달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더 이상 매일 매일 우리가 체감하는 불확실한 경제 현상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지금 살고 있다. 


재미있게도, <위기와 회복>의 저자 로완 윌리엄스는 영국 성공회 교회를 이끄는 104대 캔터베리 대주교를 역임했다. 브리티시 아카데미의 회원이자 사회운동가, 학자이기도 한 이 신앙심 두터운 성직자가 주목한 것은 '과연 경제 현상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과학의 가치중립성은 차라리 이해하기 편할 수 있겠지만, '경제학의 가치중립성'이라는 생소함에 대해서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경제 현상이 '인간'을 기반으로 벌어진다는 데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간을 생각하는 신학자의 관점에서, 그리고 식견 높은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로완 윌리엄스는 가디언지(紙)의 20년 넘은 베테랑 경제전문가이자 편집자인 래리 엘리엇(Larry Elliott)과 함께, '정의'와 '윤리'라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경제 현상에 대해 논리적인 비판과 분석을 이 책에서 가감 없이 제시한다.

<위기와 회복> 저자 로완 윌리엄스 © National Assembly For Wales


이 책은 '경제적 정의'라는 추상적인 대주제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유한 총 9개의 에세이들을 싣고 있다. 인간의 행동과 그 한계에 관한 문제, 빼놓을 수 없는 케인즈의 경제학 이론에 대한 윤리적 타당성, 경제적 금융 위기 발발의 가장 직접적인 정의에 관한 이슈, 하지만 불가피하게 '필요악'으로 규정되는 IB(투자은행)에 관한 문제와 경제적 위기가 바꿔 버린 문화적 트렌드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위기와 회복>은 경제학 혹은 사회적 가치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사유의 수단이 되는 책이다. 경제학적 정의란 과연 무엇이며 어디까지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지, 좌-우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사유인지, 더 이상 공정하지 않은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하고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더욱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사유의 과정이 문화적 가치들과 정치적 합목적성, 그리고 인간의 생태계 자체를 풍요롭게 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관련이 있다고 저자 로완 윌리엄스는 역설한다. 


글 : 칼럼니스트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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