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하우스
꽉 막혀 있는 도로 위 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서울의 외곽 한적한 도시에 살고 있음에도 휴일에는 교통체증으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특히 봄가을에는 호수공원에 놀러온 인접 도시 차량들까지 넘쳐난다. 도로 위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과 붉은색의 브레이크등은 도시의 상징이 됐다.
'유럽호흡기저널'의 논문에 따르면 바르셀로나∙로마∙스톡홀름∙비엔나 등 유럽 도시 10곳의 어린이 건강과 교통 매연 노출 정도 등을 분석한 결과, 어린이 천식 환자의 14퍼센트가 거주지나 활동지역의 교통으로부터 나오는 매연을 주 원인으로 한다. 매연이 없다면 조사대상 23만7000명 중 3만3000명은 천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피해는 간접흡연과 비슷한 정도인데, 매연 속에는 미세먼지, 이산화황, 일산화탄소, 알데하이드 등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대안으로 전기차가 조금씩 보급되고 있는데, 화석연료를 태워 물리적인 운동에너지를 얻었던 전통적인 자동차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미래의 자동차는 전기를 사용하지만 전기는 자체로 저장할 수 없다. 전기에너지가 저장된 배터리도 결국은 화학에너지 형태이고, 결국 전기차의 전기에너지는 화석연료를 태워서 만든다. 이렇듯 자동차에만 해도 엄청난 과학이 숨어 있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붉은색의 정지등(브레이크등)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답답하리만큼 갔다 섰다를 반복하는 도심을 멍하게 보던 아들 훈이가 갑자기 질문을 한다.
"아빠! 차가 정지를 하면 뒤에 불이 들어오는데요, 왜 전부 붉은색이지요? 차 모양도 색깔도 다 다른데 브레이크등은 전부 붉은색이에요. 다른 멋진 색으로 하면 안 되나요?"
왜 안 되겠니! 하지만 정답부터 말한다면, 다른 색은 불법이야. 자동차는 안전을 위한 부분들에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 정지등(브레이크등)은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제조회사에서 붉은색을 사용하기로 약속했지. 그 이유는 빛의 과학 때문이야.
빛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단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빛만 빛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세상의 모든 빛을 볼 수 없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을 가시광선(visible light, 可視光線)이라고 해. 네가 초등학교에서 '보남파초노주빨~'이라고 외웠던 무지개 색이 바로 가시광선이야. 가시광선의 일곱 가지 대표적인 빛을 모두 합치면 밝은 백색의 빛이란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빛도 분명 존재해. 혹시 파장(wavelength)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니?
"파장이요? 요즘 초등학생을 뭘로 보시고! 들어봤죠. 무지개 빛은 각각 다른 파장의 빛이다. 그런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 빛이 파장인지∙∙∙."
그건 나중에 전자기파를 공부할 때 자세히 알려줄게. 빛이 전자기파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거야. 모든 빛은 파장으로 구별할 수가 있어. 빛이 입자이지만 파동의 성질도 있단다. 파장을 쉽게 이해하려면 바다를 떠올리면 되는데, '파동'은 바다 위 파도, 물결 같은 거야. '파장'은 길이의 단위로, 파도가 한 번 오고 다음에 도착하는 파도까지 길이를 '파장'이라고 생각하면 돼. 다음 파도가 빨리 오면 파장이 짧고, 다음 파도가 늦게 오면 파장이 긴 것이지.
파장이 짧으면 파도가 자주 온다고 했지? 바닷가 모래밭에서 네가 모래성을 만들었는데 파도가 자주 오면 그만큼 빨리 부서질 거야. 결국 파장이 짧으면 힘이 세진단다. 빛도 힘이 있어. 아주 간단한 공식인데 앞으로 자주 활용하게 되니 어려워도 기억해두렴.
E=hc/λ (E : 에너지, h : 플랑크 상수, c: 빛의 속도, λ:파장)
지금은 플랑크 상수를 기억하지 않아도 돼. 에너지는 파장이 클수록 작아지고, 파장이 작아질 수록 커지는 반비례 관계만 알면 된단다. 나중에 '진동수'나 '주파수'를 공부할 텐데, 진동수나 주파수는 파장과 반비례하지. 나중에 진동수는 힘, 즉 에너지에 비례한다는 식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진동수가 크면 힘도 커지는 것이지. 위에서 파도 이야기를 할 때 파장이 짧으면 파도가 자주 온다고 했지? 이렇게 파도가 일정 시간 안에 도달하는 횟수를 '진동수'라고 해. 지금은 파장과 진동수와 힘의 관계만 기억하고 있으면 된단다.
빛의 파장은 길이의 단위로 표시하는데, 길이가 작게는 10의 -3제곱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미터)부터 수 밀리미터, 수백 미터까지 있어.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수십 센티미터보다 더 긴 파장의 빛은 우리가 빛이라고 부르지 않고 '전파'라고 부른단다. 빛은 참 별명이 많아.
사람의 눈은 모든 파장의 빛을 볼 수가 없다고 했지? 무지개 빛인 가시광선은 파장이 380나노미터에서 780나노미터까지의 빛으로, 보라색(violet)으로 보이는 부분이 380나노미터 파장 근처의 빛이고 붉은색(red)으로 보이는 부분이 780나노미터 근처 파장의 빛이야. 그러니까 붉은색의 빛은 한 번 출렁거리며 780나노미터를 진행하는 거야.
파장이 짧은 쪽이 긴 쪽보다 에너지가 크다고 했지? 가시광선 중에는 보라(violet)색이 파장이 짧기 때문에 에너지가 가장 크단다. 이 보라색보다 더 짧은 파장, 즉 보라색 바깥의 빛이라서 한자로 자외선(紫外線)이라고 불러. 영어로는 UltraViolet, 약자로 UV라고 하지. 화장품 광고에서 많이 들어봤지? 에너지가 세다 보니 사람 피부도 검게 태울 수 있어. 여름에 살갗이 타는 이유는 대부분 UV 때문이야.
"아하! 그래서 선글라스에 UV 코팅이 있는 거군요? 자외선에 눈이 손상되는 것을 보호한다는 거죠? 여름에 엄마가 선크림을 발라주시는데, 용기에서 'UV차단'이란 글자를 본 적이 있어요."
잘 알고 있구나? 자~ 이제 가시광선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알려줄게.
빛은 파동의 성질도 있어서 어딘가에 부딪히면 원래 진행하던 운동에 변화가 생겨. 에너지 크기가 세면 그만큼 물체에 부딪힌 후 더 잘 튕기는데, 마치 공을 세게 바닥에 튕기면 살살 튕긴 것 보다 높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지.
하늘은 파랗지? 태양에서 오는 빛은 모든 빛이 섞인 백색인데, 왜 낮엔 하늘이 파랗게 보일까?
파란 하늘은 옛날 사람들에게도 궁금증의 대상이었어.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들은 하늘에 떠 있는 무언가 작고 혼탁한 물체들이 파란색을 만들어낸다고 믿었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빛의 반사와 굴절로 푸른 하늘을 설명했지만, 푸른 하늘이 빛의 산란(Scattering) 때문이라는 것은 19세기 말에 와서야 밝혀졌어. '산란'은 빛이 물체에 충돌해서 운동방향이 바뀌어 사방으로 빛이 흩어지는 것을 말한단다. 사실 우리 지구 위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기체로 존재하는 여러 분자들이 모여 '대기(atmosphere)'를 이루고 있지.
태양광도 대기를 통과하면서 대기 중 공기를 이루는 작은 분자나 먼지 같은 큰 입자들과 부딪히고 산란해서 온갖 방향으로 퍼지는 거야. 태양광을 산란시키는 범인은 대기를 구성하는 질소, 산소 등의 기체 분자들과 미세한 먼지야. 태양광은 미약한 감마선에서부터 밀리파까지 골고루 들어있는 백색광이야. 이 태양빛이 대기의 물질에 의해 골고루 산란된다면, 하늘이 흰색으로 보이겠지? 구름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야.
한낮에 머리 위 하늘보다 지평선 근처의 푸른 하늘이 흰색을 더 많이 띠는 이유는 빛이 많은 대기를 통과하면서 모든 파장이 산란하는 다중산란(multiple scattering) 때문이란다. 이런 산란광의 밝기는 시선 방향에 있는 공기 중 입자의 수와 관련이 깊어.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자세히 보면 어떤 구름은 밝은 흰색이고 어떤 것은 회색 빛인데, 수증기 입자가 많은 두꺼운 구름은 밝게 보이고 얇은 구름은 더 어두워 보이는 거야.
19세기 말 영국의 과학자인 레일레이(Rayleigh)는 파장이 짧은 파란 빛이 붉은 빛에 비해 더 많이 산란됨을 이론적으로 밝혀냈단다.
파장이 450나노미터 정도인 파란색이나 532나노미터인 녹색이, 파장이 780나노미터인 붉은색보다 많게는 3배 더 산란이 잘 돼. 산란의 세기가 파장의 4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해냈지. 레이저쇼 봤던 걸 기억하니? 안개가 뿌려진 무대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만든 멋진 빛을 떠올려보렴. 그때 사용하는 레이저는 대부분 녹색 레이저란다. 붉은색 레이저는 안개 입자에 적게 산란돼 레이저를 제대로 보기 힘들어. 하지만 녹색 레이저는 안개 입자와 충돌해서 많이 산란되기 때문에 안개 속에서도 빛을 잘 볼 수 있지.
구름은 빛의 파장과 큰 상관이 없어. 레일레이 산란의 경우 입자의 크기가 빛의 파장의 10분의 1 미만일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이지. 구름은 수증기나 얼음 알갱이가 엉긴 것인데, 수백 나노미터에서 수백 마이크로미터라서 미산란(Mie scattering)을 해. 구름 내에서는 파장에 관계없이 모든 빛이 다중산란을 하기 때문에 백색으로 보여.
결국 푸른 하늘은 대기에 의한 태양빛의 산란 결과인데, 달은 중력이 약해서 대기를 붙잡을 힘이 없어서 대부분 우주로 날아가 버려. 대기가 거의 없지. 그러면 낮에는 태양 빛이 산란되지 않고 투과돼 그대로 보이겠지? 자, 그럼 낮에 달에서 보는 하늘은 무슨 색일까?
"아하 그냥 지구의 밤처럼 우주가 보이겠네요?"
그렇지. 지구의 파란 하늘은 산란이 잘 되는 파란색이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야. 나머지는 통과하면서 조금씩 흩어지지. 붉은색이 잘 산란하지 않는다는 특징은 그만큼 멀리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자동차 브레이크등 색깔을 붉게 정했단다.
브레이크등의 붉은색 빛은 잘 흩어지지 않고 통과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여서 뒤따르는 운전자에게 정지신호를 잘 전달할 수가 있지. 방향지시등과 안개등이 약간 노란색인 것 역시도 파장과 관계가 있어. 노란색 역시 붉은색 계열처럼 산란이 적고 광선을 멀리까지 전달한단다. 그럼 안개등도 붉게 하면 좋지 않을까? 안개등은 전조등이기 때문에 운전자가 앞의 사물을 확인을 도와줄 수 있는 밝은 색을 사용하는 거야.
안개는 수분과 같은 미세입자가 많지? 아마 안개등이나 브레이크등을 파란색으로 한다면 거의 대부분 산란돼서 멀리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앞 차가 정지했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 쉽지 않아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어.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과학적인 이유를 근거를 가진 것이 많단다.
글 : 칼럼니스트 김병민·김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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