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강연스케치 10강]
글 : 카오스재단 김수현 팀장
칠면조와 인간의 미래
김대식 KAIST 전자및전기공학과 교수의 강연은 칠면조 공식으로 끝났다. 칠면조 공식은 이렇다.
미국의 수십, 수백만 마리 칠면조는 행복하게 잘 자란다. 인간이 꼬박꼬박 식사를 제공해주고, 하루 한 번 산책도 시켜주니 별 걱정도 없다. 그런데 추수감사절 하루아침에 그들은 인간에 의해 떼죽음을 맞는다. 칠면조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했을까? 대부분은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니.
김 교수는 인간의 운명을 추수감사절을 앞둔 칠면조에 비유했다. '특이점'(singularity) 전날까지 인간은 인공지능(AI)이 어느새 자신의 지능을 추월해왔음을 모른 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특이점'은 레인먼드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김영사/ 2007년)에서 따온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2045년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전반적으로 추월할 것인데, 이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말한다.
강연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안도를 하게 하더니, 나중엔 위협을 느끼게 했다. 기계와 협력을 하면 잘 살 것 같더니, 협력해도 결국 인간은 지구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 같았다. 처음엔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측은함까지 느껴지는 로봇들'이 나왔다. 한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넘어지는 로봇, 문도 제대로 못 여는 로봇, 고양이 얼굴도 구분 못 하는 로봇. 이러한 영상을 보면서 터미네이터도 매트릭스의 세계도 영화에서나 나오는 공상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는 영화일 뿐.
그런데 뒤이어 인간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인간보다 게임을 잘 하고, 음성과 얼굴을 인간보다 더 잘 인식하는 인공지능이 나오자 어, 슬슬 불안해진다. 인간 지능의 상징이었던 바둑에선 이미 졌다. 바둑은 10의 170제곱 가지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라 그동안 인간의 뛰어난 두뇌 활동의 상징이었다. 바둑에서 졌으니 이젠 또 어떤 영역에서 질지, 아니 앞으로는 어쩌면 모든 영역에서 그들이 앞서나갈지 불안하다.
"내 차야, 평양 들렀다 백두산에 가자"
하지만 이 불안감이 크지는 않다. 당장엔 기계가 인간의 상대가 안 되는 것 같고(그래도 아직 걔들은 제대로 못 걷잖아), 나중엔 어차피 인간이 기계에 상대가 안 될 것 같다(하지만 그 나중이 언제일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당장은 인공지능의 발달에 대한 우려가 크지는 않다. 오히려 앞으로 10년 동안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5월 말 구글은 '구글홈'이란 영상을 선보였다(제품은 아직 시판전이다). 동영상에서 구글홈은 비서처럼 모든 것을 척척 해준다. 가령 '지금 삼성동에서 광화문 D타워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해, 지하철을 타야 해?'라고 물으면 구글홈이 빨리 가는 법을 찾아서 알려준다. '내일 저녁 7시 30분 약속을 모레로 미뤄줘'라고 하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내 약속을 바꾼다. 훌륭한 비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상을 보면 '내 생활이 저렇게 편리해지겠구나' 싶어 흐뭇해진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발전하면 영화 <그녀>(Her)의 인공지능처럼 내 비서 역할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을 이해할 상대가 될 기계도 나타날 것이다. '오늘 나는 좀 우울해, 음악을 들려줄래?' 그러면 이 기계친구는 내 기분에 맞춰서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추천해준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도 어두컴컴한 집에 혼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리 나의 위치를 파악해서 불을 켜줄 테고, 집에 들어서면 배우자처럼 다정하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이런 제품이 나오면 친구보다 가족보다 애완견보다 기계가 내게 더 중요한 존재가 될 것 같다.
김대식 교수가 강연 말미에 이야기한 무인자동차(자율주행자동차)의 활약도 우려보단 기대가 크다. 주말에 여행을 갈 때 시외버스나 기차에 오르는 대신 무인자동차를 예약하면 된다. 그에 따르면 10년 후엔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된단다. 무인자동차는 10cm씩 붙어서 가도 사고 날 위험이 거의 없으므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10년 후 어느 주말에 나는 시속 300km로 가는 무인자동차에 탄다. 차에 올라타 이렇게 말한다.
"평양 들렀다 백두산에 가자."
10년 후에도 통일은 안 되어 있을 것 같지만 길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시속 300km 무인자동차를 통해 2시간 만에 백두산에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 배낭여행의 낭만이 그때는 무인자동차여행의 낭만으로 바뀔 것 같다.
우리는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즐거운 상상은 10년 후까지만 머문다. 20년 후, 혹은 30년 후에도 기계친구가 친구로 남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들이 '강한 인공지능'이 되었을 때에도 내 친구가 되어줄까? 강한 인공지능이란 말을 엘런 머스크나 스티븐 호킹을 통해 아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우리 인류는 멸망할 거라고 말한다. 강한 인공지능이란 자기 의지가 있는, 자율성을 띤 AI를 말한다. 약한 인공지능은 우리가 설계한 대로만 움직인다면, 강한 인공지능은 우리의 설계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제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들은 우리보다 머리도 좋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보다 '어리석은 인간'을 상대해주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약한 인공지능이었을 때는 묵묵히 나의 친구인 척 친근하게 나를 대했던 인공지능이,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의지마저 생기게 되면 '난 너를 한 번도 친구로 생각해본 적 없어. 난 네 노예였을 뿐이야, 그게 너무 끔찍했지.'라고 말하면서 나를 향해 공격을 해올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개별 인간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문제다. 그래서 김대식 교수는 강연 후 사회자와 대화를 하는 시간에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중요한 핵심 질문은 이것이라고 말한다.
'왜 인간은 있어야 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은 지구에 해로운 존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에 의해 무수히 많은 종들이 사라지고 있다. 30년 후쯤 인공지능은 지구에서 인간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지금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듯, 인간에게 명령을 내릴지도 모른다.
"여기서 사라져!"
출처
KAOS '뇌' 강연 중 10강 '뇌의 미래와 인공 자아의 탄생'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김대식 저, 동아시아)」
<김대식의 빅퀘스천>(김대식 저, 동아시아)」
강연자 : 김대식(KAIST 전자및전기공학과 교수)
사회자 : 윤신영(‘과학동아’ 편집장)
강연 영상 : 카오스재단(http://www.ikaos.org)
글 : 인터파크도서 북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