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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20. 2016

"박근혜가 있는 지금!" 김진명의 예언은 적중했다

<사드>



2년 전에 나온 소설책 한 권이 베스트셀러 랭킹을 ‘역주행’하고 있다. 2014년 8월에 출간돼 당시 인기를 끈 이 책은 그 뒤로 한동안 베스트셀러 랭킹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운명의’ 7월 13일 이후 이 책은 베스트셀러 랭킹에 다시 등장했다(7월 20일 현재 소설 주간 랭킹 : 인터파크 12위, 교보문고 18위, 예스24 26위). 최근 인터넷상에서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은 작가, 김진명의 소설 <싸드>(새움) 말이다.


7월 13일 정부는 경상북도 성주군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를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사드는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의 핵심 무기체계.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사드의 한국 배치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이후 미국은 노골적으로 한국을 압박해왔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한반도 내 실용성 논란과 대당 2조 원에 육박하는 예산 문제, 중국과의 외교관계 등 때문에 결정을 미뤄왔다. 하지만 2016년 초부터 사드의 한국 배치는 급물살을 탔고, 결국 7월 13일 배치 지역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성주는 현 대통령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정부 여당에 배타적인 지지를 보여온 지역이다.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피해가 우려되고 지역 자체가 적국의 군사적 타격 목표가 된다는 점에서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은 당연히 예상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절대 성주 주민들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가상의 적’ 중국을 막기 위한 미국의 ‘미사일 방패’를 한국에 배치했다는 사실은 한국 국민 전체의 운명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2년 전 김진명의 ‘경고’를 다시 찾아 읽는 이유도 바로 그것 아닐까.


어민은 이미 싸드 배치가 한국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어 있는 걸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싸드가 이렇게 조용히 한국의 턱밑에 디밀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민은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기사 내용이란 고작 한미연합사령관의 물타기식 인터뷰나,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마찰 정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싸드가, 그리고 싸드가 이끌어올 미래의 결과가 한국인들에게는 지극히 축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었다. - <싸드> 278쪽


주인공 ‘최어민’의 입을 빌려, 김진명 작가가 <싸드>의 집필 배경을 설명한 대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성주냐 아니냐, 폭력시위냐 아니냐, 외부세력이냐 성주 주민이냐, 레이더 전자파 피해가 있냐 없냐 하는 이야기로만 논쟁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도 “싸드가 이끌어올 미래의 결과가 한국인들에게는 지극히 축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싸드가 이끌어올 미래의 결과가 한국인들에게는 지극히 축소 인식되고 있다”


<싸드>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최어민은 변호사다. 하지만 3년째 취직을 못해 주머니에 택시비조차 없고, 잘나가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망신이나 당한다. 그런 그가 단골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김윤후 변호사를 만나게 되고, 얼떨결에 그의 사무실에 ‘더부살이’를 시작한 최어민은 첫 의뢰인인 ‘리처드 김’을 만난다. 대학 교수 출신으로 세계은행에서 일하는 리처드 김. 그는 곧 의문을 죽임을 당하고,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최어민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으로 갈등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대체 누가, 왜 리처드 김을 죽였을까?’ 이야기는 리처드 김의 죽음을 파헤치는 최어민을 따라 진행된다. 작품 초반 최어민은 이 사건을 ‘치정사건’으로 오인하기도 하고, 오리무중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한다. 소설의 제목은 “싸드”인데도 작품 중반까지는 “싸드”라는 단어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전체 352쪽의 책 가운데 206쪽에 이르러서야 “싸드”는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리처드 김의 부인 ‘수전 김’의 입에서 “워싱턴의 태프트!”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209쪽), 수수께끼는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MD, 평택, 달러, 국채, 중국, 김정은, 집단자위권, 센카쿠, 독도 등 쉼 없이 등장하는 퍼즐의 조각들을 꼼꼼히 주워 모아야 한다. 한 남자의 죽음에 이토록 어마어마한(?) 단서들이 계속 등장하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쫓아갈 수밖에 없다.


단서를 하나하나 모아가는 재미, 얼마나 큰 진실이 저 뒤에 숨어 있을지 긴장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살인사건의 원인을 밝혀나가는 추리소설과 비슷한 이야기지만, 단서들의 ‘스케일’만큼이나 뒷부분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서평을 쓰려면 군데군데 메모도 하고 의심도 하고 반론도 하며 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싸드>를 읽으며 궁금했던 것은 오직 ‘이 다음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것뿐이었다.


수전 김의 입에서 나온 ‘태프트’라는 단서는 이 수수께끼를 푸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열쇠다. “태프트!”라는 대사는 작품의 첫머리에도 등장한다. 작품의 첫 장면은 미군 수송기 C-130 허큘리스가 본토에서 ‘주요 인사’들을 태우고 한국에 착륙하는 모습이다. 거대한 군 수송기를 타고 극비리에 한국에 온 세 사람의 민간인은 한국의 주요 정치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워싱턴으로 보낸다. 채동욱,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김문수, 윤상현. 그들에 대한 보고서 ‘태프트 리포트’는 작품 중간 중간에 삽입돼 있다.


2016년 현실이 김진명의 장점을 극대화... <싸드>는 진정한 공포소설


어떤 독자의 리뷰를 보니, 태프트 리포트가 왜 작품 중간 중간에 나오는지 알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왜 그것이 중요한지, 왜 이야기 중간 중간에 삽입돼야 했는지는 결말 부분(338~339쪽)에 등장하는 아래 대화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바로 ‘왜 지금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 그건 한국인들에게 달렸어. 당신 말대로 ‘딜’이란 말이지. 한국이 진정한 우방의 모습을 보이면 미국은 한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는 철수하는 거고 한반도는 핵폭풍 아래 놓이겠지.
- 다시 묻지. 그래서 그게 언제라는 건가?
- 바로 지금, 박근혜가 있는 지금.


소름이 돋는다. 작품 속에는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미국-중국-북한에서 일어난 정치·외교적 사건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센카쿠 열도 분쟁, 일본의 집단자위권 재검토, 북한 핵개발,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 등. 그 모든 사건들은 지금 위에서 인용한 대화를 통해 모두 하나로 이어졌다. 한반도 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 북한의 핵전쟁 시나리오로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이다. 리처드 김의 죽음에 대한 최어민의 수사는 숨 막힐 듯 거대한 진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힘든 압도적인 현실감. 특히 사드의 한국 배치가 결정된 지금 다시 읽는 이 ‘핵전쟁 시나리오’는 섬뜩하리만큼 공포스럽다. <싸드>야말로 진정한 공포소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2016년 7월의 현실이 <싸드>를 진정한 공포소설로 만든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이어져온 김진명 특유의 ‘선 굵은’ 소설. 대하소설 <고구려>를 집필하는 가운데 급하게 썼다는 <싸드>는 그만큼 더 높아진 현실감 덕분에 김진명의 장점이 극대화된 소설이다. 시든 소설이든, 예술 전반에 ‘개인의 내면’에 몰두하는 경향이 주류가 됐다. 하지만 역사라는 집단적 경험과 압도적인 현실의 힘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김진명의 힘을 <싸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진명 작가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싸드>) 책이 차라리 안 팔렸으면 좋겠다"면서 "이 책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한반도에 어려운 일들이 닥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7월 17일 뉴스1). 자신의 책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웃지 못할 현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마음이다. 그의 책을 그저 흥미진진한 한 권의 정치소설쯤으로 읽어 넘길 수 있게 되기를, 그의 ‘예언’이 허무맹랑한 소설적 상상에 그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 최규화(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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