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938년은 또한 결별의 해.
샬로테의 마지막 희망도 산산조각이 날 터.
끔찍스런 수모受侮가 그녀를 기다린다.
매년 봄 예술대학교에선 시합이 열린다.
정해진 주제로 각자 한 점씩 작품을 만드는 학생들.
그 해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여러 가지 상과 영광이 베풀어지는 자리.
루트비히 바트닝은 샬로테에 대해 갈수록 경탄한다.
그녀를 입학시키려고 싸웠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몇 달 동안 샬로테는 눈부신 진척을 이루었다.
그건 기교가 더 좋아진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그녀의 데생은 세련되고 정교하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건 애제자의 여유 있는 터치.
그녀는 모든 과제를 에두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독특하고, 기이하며, 시적이고, 뜨겁기까지 하다.
샬로테의 데생은 그녀의 본질을 말해준다.
그녀의 힘은 얼핏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의 독특함은 색채를 피해 어딘가에 숨어 있다.
루트비히의 시선을 꽉 사로잡는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이런 것을 보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걸 모른다, 단지 그만이 알 뿐.
학생들 중에 천재가 있다는 것을.
시합은 언제나 익명으로 진행된다.
수상작이 결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가 알려진다.
교수들이 탁자를 둘러싸고 모여 있다.
만장일치로 하나의 그림을 선정한다.
이번만큼은 논의가 신속히 이루어졌다.
매번 흥분되지 않을 수 없는 순간.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름대로 예측해본다.
여기저기 몇몇 이름이 거론된다.
그러나 사실은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승자가 누군지, 일대 혼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 한 학생의 특성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이제 그림의 주인을 찾아내야 할 때.
데생과 더불어 하나의 봉투가 있다.
그 봉투를 막 열어본 교수는 입을 열지 못한다.
다른 교수들이 그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누구요
마치 무슨 효과를 내려는 듯, 그는 동료들을 바라본다.
그리곤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발표한다.
최우수상의 주인공은 샬로테 잘로몬입니다!
곧바로 불편함이 좌중을 사로잡는다.
샬로테가 이 상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잖아.
모두 다 지나칠 정도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데.
다들 학교의 유대인 학생에 대해 입방아를 찧을 텐데.
수상자인 그 여학생도 심하게 노출될 거야.
샬로테는 순식간에 과녁이 되고 말 걸.
그뿐인가, 체포될 위험까지 무릅써야 할 걸.
루트비히 바트닝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누군가가 묻는다, 새로 투표를 하면 어떨까
안 돼, 그건 너무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지.
상을 뺏을 순 있어도, 승리를 빼앗지는 못해.
샬로테를 가장 열렬히 옹호하는 이가 그렇게 말한다.
그는 샬로테를 위해 힘자라는 데까지 투쟁한다.
그녀에 대한 지지는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모든 게 밝혀지고, 잠잠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용기는 마침내 보상을 받는다.
샬로테의 수상이 확정된 것이다.
한 시간 뒤 그는 메인 홀에서 샬로테를 기다린다.
그는 손짓으로 그녀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녀가 다가온다, 언제나처럼 수줍은 걸음걸이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망설인다.
환희의 순간이어야 마땅하건만.
그의 얼굴은 그러나 초췌하기만 하다.
마침내 그는 그녀가 영예의 수상자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샬로테가 기뻐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교수들의 결정을 알림으로써 그 소식을 누그러뜨린다.
하지만 자넨 트로피를 받으러 갈 수가 없을 거네.
상반되는 두 감정이 샬로테에게 충격을 안긴다.
기쁨이요, 동시에 괴로움이다.
자신이 모습을 나타낼 수 없음을 그녀도 인정한다.
그림자처럼 살아온 게 벌써 2년 아닌가.
그러나 오늘은… 너무도 부당하다.
그는 설명한다, 상이 주어지는 것은 자네의 작품이야.
하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서 그 상을 받을 거야.
누가요? 샬로테가 묻는다.
글쎄, 나도 몰라, 루트비히의 대답.
바바라.
그래, 샬로테가 제안한 이름이다.
바바라.
바바라? 정말 그 친구가 받기를 원해? 그가 묻는다.
네, 정말이에요.
왜 하필 그 학생이지
이미 다 가진 애니까 더 줘야지요, 샬로테가 답한다.
사흘 뒤 바바라는 연단에 선다.
샬로테에겐 눈물의 사흘.
금발의 우승자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것도 아닌 상을 받는다.
거북해 보이지도 않는다.
정말로 자기가 우승했다고 믿는 것만 같다.
그녀는 부모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조국에도 감사해야 할 테지, 샬로테는 생각한다.
모멸감을 참으며 그 어릿광대 극을 바라보고 있는 샬로테.
시상식이 한창일 때, 샬로테는 자리를 뜬다.
그런 그녀를 좇는 루트비히의 시선.
그런 그녀를 붙들어 다시 보듬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학교를 빠져나가는 그녀의 귀에는
그저 요란한 박수소리만 들릴 뿐이다.
샬로테는 집까지 내쳐달린다.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꼼짝 않고 침대 위에 앉아 있다.
그러더니 일어서 자신의 그림을 마구 구긴다.
몇 장은 찢어발긴다.
웬 소란일까, 궁금해진 파울라가 올라온다.
아니, 뭘 하고 있는 거니
무슨 일이냐니까
샬로테는 싸늘하게 말한다,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