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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01. 2016

체납자 실명까지... '지리산 빅브라더'의 힘

산골독서가의 세상읽기


마을 이장의 힘과 권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리산 피아골로 이사 온 바로 다음 날, 그 힘의 실체를 깨달았다.


“마을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저희 OO마을로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주민 여러분께 점심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낮 12시에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십시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확성기에 실린 이장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이 산 저 산이 주고받으며 널리 퍼져나갔다. 지리산을 흔드는 이 메아리, 얼마만인가. 휴대전화기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5시 30분.’


모든 게 꿈인 줄 알았다. 방바닥에 누워 흐린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 새벽에 확성기 방송을 할 수 있는 마을 이장의 힘은 얼마나 막강한가. 모두의 잠을 깨우는 이장의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마을 어르신 한 분과 마주쳤다. 귀촌자에게 90도 인사는 정착과 생존에 많은 영향을 준다.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 오늘 밥을 산다는 그 양반이구만요! 오늘 고맙게 잘 먹겠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아닌데요.”


어르신과 나는 서로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서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시원한 새벽 공기가 싸하게 느껴졌다. 냇가에서 세수를 하며 사태를 파악했다. 나도 곧 마을 주민에게 밥을 사야 했다. 며칠 뒤, 더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 새벽 5시 30분, 그때까지 나만 자고 있었다. 

일이 한창 바쁜 봄날의 그 시간은 이곳 주민에겐 대낮이었다. 이장의 목소리는 한동안 알람처럼 새벽 5시 30분이면 지리산을 흔들었다. 친환경 비료가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고, OO교육이 곧 실시된다고, 이장은 여러 공지를 마을 방송으로 발표했다. 하루는 이런 방송까지 했다. 


“아직도 XX회비를 납부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김OO씨 2만 원, 이OO씨 3만2000원, 장OO씨 5만 원!”


체납자의 실명을 확성기를 통해 발표하고, 미납액 액수가 큰 사람의 이름은 힘주어 크게 외치는 이장의 센스라니! 지리산 메아리가 된 체납자의 이름은 이장의 힘과 권위를 다시 한 번 내게 각인시켰다. 


단체 카톡방이나 밴드 따위는 70~80대 노인이 주류이자 대세인 마을에선 무용지물이다. 확성기 방송 한 번이면 알려지고 퍼지는 건 일도 아니다. 경로당을 매개로 한 산골의 그물망 네트워크는 예상보다 촘촘해서 몇 마디 주고받으면 사실, 루머, 스캔들은 삽시간에 공동체를 장악한다.


최근 이사한 마을에선 복날 행사가 열렸다. 신실한 마을 젊은이(60대)가 돈을 내 어르신들과 주민에게 삼계탕을 대접했다. 마을 신입생인 나도 그 자리에 끼어 인사하고 함께 뜨거운 삼계탕을 먹었다. 한 엄니가 내게 물었다. 


“한동안 안 뵈던디?”


나는 뜨거운 닭 국물을 떠먹으며 ‘헉, 요 며칠 서울에 다녀온 걸 어떻게 아셨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다른 아버님이 물었다. 


“전에 낚시할 때 꺽지는 좀 잡았어?”


닭가슴살을 씹으며 나는 ‘계곡에서 마주쳤던 사람은 없었는데…’라는 생각을 곱씹었다. 옆의 다른 엄니가 말을 받았다. 


“졸졸 따라댕기며 같이 낚시하던 각시가 이쁘던디?”


이때부터 복날의 화두는 ‘피아골 계곡을 휘젓는 박상규와 수수께끼의 여인’으로 정리됐다. 엄니와 아버님들은 트위터 이용자들의 재잘거림처럼 짧은 단문을 주고받았다. 


“각시 아녀! 야는 아직 장개도 안 들었어.”
“그럼 갸는 누겨?”
“애인!”
“머리를 다 빠졌는데, 아즉도 장개 안 갔어?”
“머리만 읎지, 젊어!”
“오늘은 왜 각시 안 델구 왔어?”
“낚시할 때만 델구 다니나 부지!”
“아녀! 서울에 있어!”
“서울에 숨겨두고, 낚시할 때면 몰래 델구 다니나?”


이쯤 되면, 마을 어르신들이 지리산에 비트(비밀 아지트)를 설치해놓고 나를 감시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마주친 기억이 없는 어르신마저 나의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공유’나 ‘리트윗’ 버튼만큼 편리한 확산장치가 있는 듯했다.



일부의 사람은 “시골에는 개인생활이 없다”거나 “시골 사람들은 말이 많고, 소문이 빠르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글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이웃의 관심은 간섭이나 사생활 침해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최근까지 산 서울의 내 집 대문 2m 앞엔 이웃의 대문이 있었다. 나의 집 방바닥은 아랫집의 천장이고, 내방의 천장은 윗집의 방바닥일 만큼 우린 다닥다닥 붙어 살았다. 여름날 창문을 열어놓으면 이웃의 우렁찬 방귀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종종 ‘카톡왔숑~’ 하는 메시지 수신음까지 내 귀에 닿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웃의 이름을 단 한 명도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도시의 삶은 각박하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방식이 다른 걸 두고 실체가 없는 ‘인간미’라는 척도로 평가하는 건 좀 과해 보인다. 도시의 삶에는 ‘익명’이 필요하고, 여기 산골에선 실명이 요구될 뿐이다. 각자 원하는 삶을 선택하면 된다. 


단, “시골에는 사생활이 없다” 혹은 “시골은 소문이 빠르다”는 말에는 딴지를 걸고 싶다. 오늘 내가 어디에서 누구랑 무얼 먹는다는 걸 인증샷까지 찍어 실시간으로 SNS에 올리고, 이걸 공유하고 리트윗하며 세상에 퍼트리는 사람은 대개 도시에 몰려 있다. 자기 스스로 사생활을 공개해 ‘프라이버시 영역’ 자체가 희미해진 시대, 시골 사람들에게만 “말이 많다”고 지적질 하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통해 감시사회와 전체주의 국가의 위험을 경고했다. 소설에서 ‘빅브라더’는 남녀의 은밀한 사랑의 대화를 엿듣고 성관계까지 지켜보고 감시하다. 비밀은 없고, 다른 생각은 허용되지 않는다.

 

조지 오웰이 한국의 지리산에서 메아리로 퍼지는 ‘이장님 확성기 방송’을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지, 문득 궁금하다. 많은 사람의 우려대로, 오늘날 빅브라더가 존재한다면 그분은 참 편할 것 같다. 애써 감시 장치를 설치할 필요도 없이, 많은 시민이 각자의 돈으로 구입한 장비로 경쟁적으로 사생활과 생각을 공개하는 시대인데 ‘큰 형님’은 얼마나 쉽게 일하겠는가. 


휴가철,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많은 시민은 누가 누가 시원한 곳에서 맛있는 거 먹나 경쟁적으로 알리고 퍼 나른다. 감시가 필요 없는 자발적 공개의 장. 그리하여 ‘큰 형님’이 실업자가 될지도 모르는 시대. <1984>는 서늘하다 못해 오싹한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피서 가실 때 <1984> 한 권 챙겨 가시길.


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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