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민음사 문예지 <릿터> 창간
민음사가 새 문예지 <릿터>를 창간했다. 민음사는 지난해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세계의 문학>을 40년 만에 종간하고 새 문예지 창간을 선언한 바 있다.
8월 2일, 민음사는 세종문화회관 지하 1층에서 열린 <릿터> 창간 기자 간담회를 통해 "<릿터>가 문학을 읽어왔던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읽을거리. 문학을 읽지 않았던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즐길 거리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민음사 박상준 공동 대표이사는 간담회 전 인사말을 통해 "작년부터 한국문학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민음사에게는 그것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았다"라며 "한국문학과 출판에 힘이 있다고 믿으며 좋은 작품을 독자에게 더 잘 전달하는 책무를 다 하고 싶다. 이에 <세계의 문학>의 전통을 잇고 혁신을 가하는 잡지를 기획했다."라고 <릿터>의 창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독자와 작가를 잇는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서 <릿터>를 작가와 민음사를 잇는 믿을 만한 베이스캠프로 삼을 요량"이라고 밝혔다.
<릿터>는 민음사의 모든 편집자들이 잡지 기획에 참여하며, 편집장과 편집위원을 두지 않고 두 명의 책임편집자를 중심으로 기획해나간다. 릿터(Littor)는 'literature(문학)'과 '–tor(-하는) 사람'을 합친 조어다.
서효인 책임편집자는 "'lit'에 의미를 부여해 '릿하다'라는 말이 최근 사용되고 있는 '힙하다', '시크하다'라는 표현처럼 '문학에 대한', '문학을 읽는 습관', '문학을 한다'라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더불어 "<릿터>는 읽는 습관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문예지가 훌륭한 역할을 해왔고 문학에 이바지를 했지만, 릿터는 보다 더 읽는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으면 한다"라는 말을 전했다.
<릿터>의 구성은 크게 소설, 에세이, 인터뷰, 리뷰 코너로 구분된다. 소설 코너에는 외국 작가의 작품과 국내 작가의 작품이 매호 한 편씩 실리게 된다. 창간호에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으로 유명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작품 '매우 엄격한 조사'와 김애란 작가의 '노찬성과 에반'이 실렸다. '매우 엄격한 조사'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2001년 미국 잡지 <뉴요커>를 통해 발표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최초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작품이다.
박혜진 책임 편집자는 다음 호에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가 지난 2월 발표한 소설을 게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미국의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정치 팬픽션 스타일로 풀어낸 작품이다.
에세이 코너에는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이영훈, 프리랜서 편집자 박태하, 소설가 이응준, 서경식 교수의 글이 실렸다. 다섯 편의 글은 동시 연재에 들어간다. 인터뷰는 쓰는 존재와 읽는 당신이라는 두 개의 코너로 나뉜다. 문학 장르와 타 장르의 아티스트까지도 조명하는 인터뷰를 기획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문학장 안으로 초대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창간호 인터뷰에는 소설가 구병모와 샤이니의 멤버 종현의 인터뷰가 실렸다.
<릿터>는 매호 메인 주제를 모티브로 한 시각 장르 아티스트의 작품을 표지로 싣는다. 창간호에는 '뉴 노멀'이라는 주제로 작업된 이재민 아티스트의 작품이 실렸다. 서효인 책임편집자는 "너무 디자인에 치중하지 않으면서도 그간 문학잡지가 하지 않았던 표지를 만들고 싶었다. 오랜 회의와 섬세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표지 형태가 결정되었다며"라며 시각 장르와의 협업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릿터>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아래는 질의응답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Q 새로운 문학잡지의 중심에 '편집자'가 있다고 했는데, 기존과는 달리 편집자의 역할이 왜 중요한가?
서효인 : 잡지의 외형이 아닌 구성이나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편집자가 직접 만든다는 것이 다른 잡지, 문예지와의 차별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타 잡지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하기보다 다양한 주체가 문학 매체의 기획자로 등장하는 것이 문학의 다양성 측면에도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Q 편집위원 중심의 문단권력 논란이 있었는데, 편집자가 주체가 됐을 때 그 논란에서 비켜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효인 : 문예지 편집위원이 권력을 갖고 있다고는 단언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저희 또한 이것으로 어떤 권력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잘 만들고 독자에게 잘 전달하고 싶은 작업인의 윤리로 만들었다.
박혜진 : 문단권력을 말할 때 그 권력이 향하는 곳이 작가였다면, <릿터>를 만들면서는 독자들에게 초점을 이동시켰다. 편집자들이 시작부터 글, 기획, 디자인, 마케팅까지 한꺼번에 기획했기 때문에 그 트렌드에 더 맞춰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편집위원들과는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원고를 요청할 때 필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서효인 : 지면이 생긴 것 자체에 소설가로서 고마움을 표했고, 흔쾌히 원고를 주시며 응원해주었다. 에세이 필자는 일일이, 그리고 수차례 만나면서 잡지에 대한 기획도 함께했다. 그분들이 모두 잡지 기획에 참여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시인들에게는 타이포그래피 협업을 말씀드릴 때 시의 전통적인 독서 감상을 해칠까 하여 조심스럽게 만들었는데, 오히려 김언희 시인 같은 경우에는 더욱 파격적인 것으로 해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이 변화와 혁신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반가워해주었다.
Q <세계의 문학>의 전통을 잇는다고 했는데, <릿터>는 대중적 콘텐츠로 이목을 끄는 것 같다. 어떤 점이 전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는지.
서효인 : 기획을 하고 구성할 때 내부에서는 <세계의 문학>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릿터>의 구성 자체는 문예지의 뼈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예지가 수십 년간 그런 방식으로 운영이 되어왔던 것은 그것이 문학을 알리는 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이 바로 <세계의 문학>을 잇는 전통이라고 볼 수 있다. <릿터>에 들어간 인터뷰나 에세이는 문학을 읽지 않았던 분들도 문학장 안으로 들어오셨으면 하고 보내는 초대장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다.
사진 : 민음사 제공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