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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09. 2016

달콤한 '통증'의 맛... 아포가토 같은 인생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 순수하고 기발한 아이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메시지, 아이 그림을 명화처럼 감상하며 ‘아이 그림 읽어주는 여자’ 권정은의 해설을 들어봅니다.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 내 자신, 그리고 세상과 다시 나누는 이야기. 이 연재는 권정은 ‘Art Centre 아이’ 원장의 책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편집자 말


니콜라 드 스탈(Nicolas de Stael)의 그림을 본 순간 내 가슴에는 이상한 통증이 밀려왔다. 듣고 있던 음악의 비장함 때문이라고 돌리기에는 그의 그림에서 묻어나는 비통함이 너무도 강렬하다. 

화려한 빨강, 파랑, 노랑들이 그의 그림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도 그 강렬한 색채로 위장한 듯한 슬픔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왔다. 무엇이 한 화가의 작품을 이렇듯 비장한 슬픔으로 뒤범벅해 놓았을까. 그에 대한 기록을 뒤져보니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 삶의 힘든 역사가 그의 색채를 통해 내 가슴에 전달되어 온다.

 

'피에졸레'(Fiesole, 1953) 니콜라 드 스탈(Stael, Nicolas de) 작품
'태양'(The Sun) 니콜라 드 스탈 작품


왜 우리의 삶은 비통할 수밖에 없을까. 우리는 왜 이 짧은 인생을 통증 없이 지나갈 수 없는 것일까.


가끔은 이유도 없이 가슴이 무너진 것처럼 강한 슬픔이 몰려올 때도 있다. 살면서 겪어왔던 힘들었던 기억들이 문득 수제비 반죽처럼 뭉쳐져 있다가 정확한 형태도 없이 울컥하고 올라오곤 한다. 잊고 있었다고, 이젠 이겨냈다고 생각한 고통의 시간들이 사실은 아직 생생히 살아 있는 세포로 자리 잡아 누군가 같은 모습을 토해내는 걸 보면 가라앉아 있던 세포들이 세포 분열을 해가며 증식되는 것 같다. 타인의 예술에서 표현된 슬픔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 나를 아프게 한다. 

내가 힘들 때는 함께 힘든 사람을 보며 이겨내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을 보면서 위로받듯, 비장하리만큼 선과 색에서 슬픔이 묻어나는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기도 했다가 다시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공감되는 아픔은 아이의 그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시원이가 그린 '고통스러운 인간'은 아이 혼자 그린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한 사람의 고통과 표현력이 강렬하게 전해온다.

 

'고통스러운 인간' 박시원 작품

사실 이 그림은 고통스런 사람을 그리려던 게 아니었다. 친구들이 서로 포즈를 취해가며 모델을 서주고 그렇게 서로를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고개 숙인 모델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 집중했는데 시원이는 물, 불, 상어 등을 더 그려 넣었다. 그리고 옷이며 신발이며 색도 모두 사실과 다르게 자기 원하는 대로 바꿔 넣었다. 왜 그렇게 그렸을까?

 
아이는 자신의 그림 제목을 '고통스러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모델인 친구가 고개 숙이고 웅크린 포즈 자체가 자기 눈에는 너무 절망적인 인간의 모습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린 절망을 떠올렸다고 한다. 시원이에게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기에 그보다 더한 절망은 없단다. 그 절망의 고통을 물리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것이 쓰나미를 연상시키는 물, 지옥의 뜨거운 불, 그리고 가장 무서운 상어였다. 그리고 옷의 색깔을 다양한 색으로 모두 다르게 표현한 것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고 그것을 여러 가지 색으로 나타내고 싶었다고 한다. 즉, 옷에 표현된 여러 가지 다양한 색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고통들이라고 한다. 

시원이가 수줍은 목소리로 천천히 자기 그림을 설명하는데, 듣고 있자니 가슴이 아렸다. 단지 고개 숙인 모델을 보고 겨우 열 살 된 아이가 이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게 대단했고 그것은 기쁨을 넘은 감동으로 와닿았다. 그리고 아이가 표현하려고 했던 고통이 하나하나 모두 느껴져 가슴이 욱신거렸다(그러나 다행히 시원이는 엄마한테 혼날 때 빼고는 슬픈 일이 없었다고 하는 행복한 어린이다). 

그러고 보면 슬픔을 갖고 경험하는 게 우리 삶의 기본조건인가 보다. 태어나면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겪는다. 인간이 되는 조건으로 마늘을 먹어야 했던 우리 신화 속의 웅녀처럼 아마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서 그런 슬픔과 고통을 겪는 조건으로 우리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준 것은 아닐까. 

눈물을 참고 참다가 결국 작은 건드림 하나에 울음을 터뜨려버리는 아이처럼 가끔은 그렇게 통곡을 하며 큰 소리로 울더라도 그 울음과 함께 우리는 또 삶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더 발전된 삶을 위해서 고통이라는 재료도 함께 버무려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사람들' 백강우 작품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쓰디쓴 커피의 맛과 함께 어우러져 더 맛있는 아포가토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행복과 삶의 보람도 그런 통증의 시간들 때문에 더 달콤해지기도 한다.

 
지금의 삶이 힘들다면, 그 통증으로 가슴이 너무 아프다면 조금만 더 힘을 내어 견뎌보자. 지금은 이게 전부인 것 같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가끔씩 아프고 아린 순간들을 견디고 나면 강우가 그린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다 함께 백 년을 먹고 남을 달콤한 행복의 아이스크림을 빚게 될지도 모른다.


글 : 칼럼니스트 권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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