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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04. 2016

칫솔 살균기가 내뿜는 강렬한 UV광선

사이언스 하우스



대학에서 제대로 만들어진 광학현미경을 처음 접했다. 생명공학부 동기가 실험실에서 40배 대물렌즈로 대장균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박테리아의 크기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터라 '40배 확대로 박테리아를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세균은 전자현미경으로만 보일 것이라는 생각했던 터라 눈앞에 펼쳐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박테리아의 크기에 무척 놀랐다. 당시 취미가 천문관측이었기 때문에 커다란 우주만 보다가 작은 마이크로 우주 속 또 다른 신비함과 미지의 세계를 처음 접했기 때문인 탓도 있었다. 그때부터 마이크로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때 본 박테리아의 크기 때문에 후폭풍이 몰려왔다. 박테리아는 평균 1~2㎛(1,000분의 1mm)이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저배율의 대물렌즈로도 관찰 가능한 크기였다. 음식물, 손, 늘 만지작거리는 휴대전화,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 주변의 물건에서 박테리아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후 박테리아 박사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유난을 떨었던 나를 친구들이 결벽증 환자처럼 대했던 기억이 있다.

박테리아는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분명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자체적으로 무한급수로 증식도 가능하다. 박테리아도 세포이므로 세포막, DNA 중합 효소, 리보솜 등을 가지고 있어 독립적으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다. 또 우리가 밥을 먹는 것처럼 외부에서 영양을 공급받거나 스스로 합성해 생장과 번식에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효소나 세포벽 등 다양한 생명 장치를 없앤다. 그러면 항생제가 사람 세포에도 손상을 입힐까? 사람의 세포벽과 박테리아의 세포벽은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람의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박테리아만 없애는 것이 항생제이다.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은 박테리아 세포벽 생성을 막아 세포를 터뜨려서 박테리아 증식을 제어한다.

빛에 관해 아들에게 설명하면서 이런 항생제같이 박테리아만 죽이는 빛이 있다고 알려줬다. 칫솔 살균기가 내는 빛, 즉 자외선(UV광선)이며 이 빛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빛이라 설명해줬다. 


"에이~ 아니에요. 자외선도 사람 눈에 보이는데요. 칫솔 살균기에 푸르스름한 불이 들어와요."

이번에는 UV(Ultra Violet, 紫外線), 자외선에 대해 공부해보자. '노을' 이야기를 할 때 대기층도 설명했지?(관련기사 : ‘붉은 노을’에 숨어 있는 대기의 비밀) 이 대기층과 자외선은 관련이 아주 많아. 세상은 사람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빛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지? 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정도는 알아요. 태양이잖아요!"

그래. 지구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빛의 형태로 받고 있고, 태양빛은 방사선에서 전자기파까지 다양한 종류가 '열복사'의 형태로 지구로 쏟아지고 있어. '열복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이야기해줄게.

여름에 '자외선 지수'에 대한 뉴스를 들은 적이 있지? 네가 외출할 때 엄마가 선크림을  발라주잖아. 그런데 자외선을 눈으로 본 적 있니? 봤다면 거짓말이야. 자외선은 가시광선이 아니라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파장이란 것을 배웠지? 자외선은 대략 100nm~400nm 파장의 빛이야. 자외선이 가시광선의 보라 바깥 영역의 빛이라서 'Ultra Violet'이라고 하고 약자로 UV로 표기한다고 했지? 사람은 자외선이 해롭다며 차단하려 하지만 사실 자외선은 해로운 빛만은 아니야. 자외선은 몸의 비타민D 합성을 촉진하고, 살균이나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줘. 실내에서만 지낸 아이보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아이가 감기도 잘 안 걸린단다. 하지만 과하면 피부암을 일으키는 유해한 면도 가지고 있지. 

자외선도 가시광선처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 대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영역별 이름을 ABC로 표시해. 먼저 가시광선의 근처에 있는 근자외선(UV-A)은 315nm~400nm의 파장 영역이야. 지상에서 15km~50km인 성층권(Stratosphere)에는 오존 양이 많아 대부분의 자외선을 차단해주는데, 이 성층권에서 투과되어 나오는 대부분의 자외선이 바로 근자외선이야. 자외선 중에서 상대적으로 파장이 길어 잘 투과된단다. 한여름에 피부를 검게 태우는 범인이지. 선탠샵이라고 들어봤니? 건강미를 돋보이려 태닝을 하곤 하는데, 옷을 벗고 기계 안에 들어가면 형광등처럼 생긴 자외선 방전램프에서 빛이 나와 피부를 강제로 그을리게 해. 이 램프가 바로 이 근자외선 파장을 발산하는 거야. 

다음으로 290nm~315nm 의 파장 영역인 중자외선(UV-B)은 오존층에 거의 흡수되어 지표에는 미량이 도달해. 근자외선보다 피부 깊숙이 투과되지는 않지만, 진피 혈관과 피부에 화상을 일으키기도 하지.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놀다가 피부가 허물을 벗겨지듯 화상을 입은 적이 있지? 이 중자외선 때문이야. 자외선주의보에 영향을 주는 자외선도 바로 중자외선이란다. 

중자외선보다 파장이 더 짧은 100nm~290nm인 원자외선(UV-C)은 지표에 거의 도달하지 못하고 성층권에서 흡수돼. 파장이 짧아서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단다. 아마도 이 원자외선이 지표에 도달하면 인류는 멸종할 거야. 그래서 생명체에게 대기층은 중요하고, 이런 대기층이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중력을 가질 수 있는 크기의 행성이어야 하지. 중력이 없는 행성은 자외선 같은 엄청난 에너지를 막아줄 대기를 잡아둘 수가 없기 때문에 생명체가 살 수가 없어. 달에 생명체가 없는 이유는 중력이 작아 대기권이 없어서 강력한 자외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되기 때문이기도 해. 그래서 천문학자들이 생명체가 있는 천체를 찾을 때 대기를 잡아둘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중력을 가진 크기의 행성들을 찾는 거야.

"목성이나 토성같이 큰 행성에도 생명체가 없잖아요?"

목성이나 토성만큼 큰 행성은 대부분 가스로 이뤄졌어. 멀리서 보면 마치 단단한 행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98%가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됐고 표면은 액체 수소의 바다얼음이야. 심지어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는 얼음알갱이와 먼지란다. 지구나 화성처럼 지표면도 없어. 그래서 우주선이 목성이나 토성에 착륙할 수는 없지. 

자외선의 색깔이 푸른색이라고? 그건 거짓말이야!

다시 칫솔 살균기 이야기를 해줄게. 칫솔 살균기는 원자외선 중 235.7nm의 파장을 램프로 만들어 칫솔에 있는 박테리아의 DNA에 손상을 입혀. 2~7초면 살균이 가능하지. 이 파장의 빛은 박테리아의 DNA가 흡수하게 되고 DNA를 변형시켜 번식과정에서 죽게 만들지. 칫솔 살균기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효과가 꽤나 막강하단다.

칫솔 살균기 빛이 푸른색을 띠는 건 형광램프를 사용하기 때문인데 이 램프의 구조를 잠깐 살펴볼게. 투명관 안에는 벽에 형광물질이 발려 있고 방전을 쉽게 하기 위해 200~400파스칼 압력의 아르곤가스와 소량의 수은이 들어 있지. 양쪽 끝 텅스텐 코일로 된 전극이 있고 그 코일에는 전자를 방출하는 전자방사물질이 붙어 있어.

자 이제 투명관에 전기를 넣어볼까? 전기를 텅스텐 전극(음극)에 가하면 전자방사물질로부터 열전자가 투명관 내로 방출된단다. 그 열전자(-)가 반대측의 전극(양극)으로 이동하면서 방전되는 거지. 흐르는 전자는 투명관 안 수은과 충돌하고 수은은 자외선(235.7nm)을 발생시켜. 그 자외선 빛은 투명관 안쪽 벽에 발린 형광물질에 부딪히고 그 형광물질이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발생시킨단다. 네가 본 푸른 빛은 형광에 의한 가시광선이야. 이 가시광선과 자외선이 동시에 방출되는 것이지. 가시광선은 칫솔 살균기 램프가 이상 없이 동작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고,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 박테리아를 죽이는 것이란다.

"형광이요? 그러면 집에 있는 형광등은요? 형광도 가시광선처럼 빛인가요? 형광등에서 자외선이 나오면 사람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하하 질문이 많구나? 네 말이 맞단다. 방금 설명한 원리가 형광등의 원리와 같아. 그런데 왜 칫솔 살균기와 달리 형광등에서 자외선은 방출이 안 되고 형광빛인 가시광선만 방출이 되는지 다음에 이야기해줄게. 지금은 자외선이 무엇인지, 어떻게 박테리아가 자외선에 의해 죽게 되는지만 알고 있으렴. 

"가끔 공부하다 보면, 차라리 형광등이나 칫솔 살균기 같은 물리나 화학이 더 쉬운 것 같아요. 솔직히 박테리아 같은 생물체는 너무 복잡해요."

물리나 화학은 가장 근본이 되는 입자나 요소들의 운동과 반응을 이야기하니까 간단하게 느껴지지. 하지만 생명체는 그 모든 것들이 집합된 커다란 시스템이야. 컴퓨터도 시스템이지만 아직 생명체보다 덜 복잡한 이유는 그 원리가 아직 물리 화학적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지. 

생물체가 복잡해진 이유는 자연현상의 '최소 작용의 법칙' 때문이야. 무슨 뜻이냐면 ‘자연은 필요 이상의 일을 하지 않는다’란다. 예를 들어 물리에서 모든 물체는 운동을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외부로부터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자신의 운동 상태를 바꾸지 않아. 어쩌면 정지해 있는 것도 계속 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지. 운동장에서 멈춰 있는 공을 굴리려면 네가 발로 차야 다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물체의 운동은 외부에서 운동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그 운동을 지속하려는 성질을 가졌어 

화학반응은 원자가 전자를 이용해서 안정한 상태가 되기 위해 다른 원자와 결합하는 것을 말해. 18족 원소라는 말을 기억하렴.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거야. 18족 원소는 가장 안정적인 원소거든. 원소들은 이 안정적인 18족 원소의 모습이 그리워서 전자를 뺏고 뺏기는 전쟁을 치른단다. 생명체도 마찬가지야. 이런 물리 화학적 원칙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된 상태로 바뀌려고 노력하는데, 가끔 이 원칙을 거스를 때가 있어. 

그것이 바로 '진화'야.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노출되면 내성이 생기면서 슈퍼 박테리아로 변이가 되는 것처럼, 어떤 외부로부터의 변화는 생물을 완전히 멸절시켜 완전히 다른 생명체를 등장시키지 않고, 기존의 유전자를 조금씩 변형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해. 유전자 변이로 모습과 성질이 변화하고, 그 중에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면 진화라는 이름으로 보존이 되는 것이지. 진화는 안정된 상태가 되려고, 우리가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구조에 더 복잡한 것들을 계속 붙이는 거란다. 그래서 생명체가 아주 복잡해진 것이지. 

나중에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공부하게 될 거야. 복잡해 보이지만 생명체 나름대로의 규칙과 성질이 있고, 과학은 그것을 이해해서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용해야 해. 그리고 생명체도 모두 화학과 물리를 기반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 과학은 분야별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걸 명심하렴. 

위 일러스트는 책 속 배경을 가상의 공간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각각의 공간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 속 과학원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병민·김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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