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제는 과거사 아닌 현재의 쟁점...책에서 답을 구한다
0.09%. 무슨 숫자일까? '친일파' 이완용의 토지 가운데 국고로 환수된 것의 비율이다. 1만 평 가운데 9평만이 환수된 셈. 2010년 정부는 친일파 168명의 토지 2475필지를 환수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들의 후손들이 100건에 가까운 소송을 내며 저항한 까닭에 아직도 환수되지 못했다. 이들 토지의 경제적 가치는 약 1300억 원이다.
8월 15일 71주년 광복절이 지났지만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연일 새로운 이슈를 낳고 있다. 지난해 말 양국 정부 간의 합의로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위안부 재단’ 문제는 일본 정부의 10억 엔(약 108억 원) 출연 문제로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8월 17일, 광복절 이후 처음 열린 1244차 수요집회에서는 "친일정부"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왔다.(데일리한국 8월 17일 보도)
'여전히 진정한 광복을 이루지 못했다'는 쓰라린 자기평가가 여기저기서 반복된다. 많은 이들은 그 출발점을 친일 청산에 두고 있다. 지나가버린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의 쟁점으로 살아 있는 친일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지 책 속에서 찾아보자.
해직 언론인들이 중심이 돼 만든 탐사보도 전문 독립언론 '뉴스타파'. <친일과 망각>은 2015년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으로 뉴스타파가 방송한 동명의 4부작 특집방송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다. 방송에 다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 생생한 취재과정과 방송 뒷이야기들을 엮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 발표한 친일파 1006명을 기준으로 그 후손들을 추적했다. 모두 1777명의 후손들을 찾아내 그들의 학력, 직업, 거주지, 재산 등을 인구사회학적으로 분석했으며, 그들에게 '친일문제'와 '반민족 문제', 또 친일 행적이 드러난 선대에 대한 생각 등을 물었다.
외세 협력자들의 문제는 결코 일제 강점기 시기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근현대사 전체에 걸쳐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공동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친일 행위가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다시는 이런 행위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내부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친일 문제'의 '현재성'을 의미한다. 또한 친일 문제는 상당수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사회적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영역이기도하다. - <친일과 망각> 중에서
언론인 출신의 '친일파 저격수' 정운현의 책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때려잡은 매국노 44인 이야기"라는 부제가 직설적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친일파' 이완용부터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친일파 제1호' 김인승이나 '일본신을 섬긴 조선인' 이산연까지, 정계, 재계, 문화계, 종교계 등 각 방면을 대표하는 친일 인사 44명의 친일 행적을 기록했다. "읽다보면 이 지저분한 인물들의 무덤에 침을 뱉어주고 싶어질 것"(출판사 서평)이라는 이 책은 역사와 개인의 상관관계에 대한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책이다.
문제는 연구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들의 반역사적 행태와 역사 왜곡 음모다. (줄임) 이대로라면 장차 친일문제를 둘러싸고 거짓 역사, 뒤틀린 역사가 판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친일문제 하나를 반듯하게 기록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대서야 무슨 역사 교육을 입에 올릴 것인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부산을 떨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냄비 끓듯 하는 언론, '친일망동 처벌법' 등 관련 법 하나 제정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하는 정치권,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국민성까지, 어느 하나 미덥지 못하다. -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중에서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은 우선 흥미로운 구성이 눈에 띄는 책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14명의 사람들. 광복을 염원한 항일 투사 7명과, 기회를 좇아 조국을 배신한 친일파 7명의 삶을 둘씩 짝지어 나란히 대비시켰다. 비슷해 보이는 분야에서 너무도 다른 삶을 산 두 사람의 '극한' 대비가 큰 울림을 준다. 저자는 아동문학가 선안나. 청소년 대상으로 기획된 이 책은, 두 사람의 삶 사이에서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한다. 내용은 묵직하고 뜨겁지만, 쉬운 문체로 부담을 덜어준다. 역사적 지식이 필요한 부분에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
만주, 간도, 상하이 등을 오가며 밀정 활동을 계속하던 배정자는 1924년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총독부에서는 배정자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600여 평의 토지를 주었고, 은퇴 후에도 계속 월급을 주어 넉넉한 생활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줄임) 배정자는, 1940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민간업자와 손잡고 조선 여성 백여 명을 '군인 위문대'라는 이름으로 남양군도까지 끌고 갔습니다. "나의 조국 일본 장병들이 고생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배정자는 어린 여성들에게 성노예 노릇을 강요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금품을 챙겼습니다. -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중에서
조선인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조선인만으로 구성된 '친일토벌부대'. 간도특설대의 진실은 오랜 세월 동안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간도특설대>는 '친일토벌부대'의 진상이 무엇이었는지, 간도특설대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한때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간도에 간도특설대가 어떻게 등장해 활동할 수 있었는지 넓은 시각에서 펼쳐 보였다. 한겨레 신문 대기자 출신의 저자 김효순은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간도특설대 복무자 조사 문서, 관동군헌병대와 노조에토벌대 자료, 간도특설대 창설에 참여한 일본인 장교의 회고록 등을 통해 간도특설대를 추적했다.
일제의 폭압적 통치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항일의 잣대를 일률적으로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항일 행위는 당사자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몰락을 초래했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런 고난의 길을 걷지 않았다고 모든 사람에게 따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항일운동의 반대쪽에 섰던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파렴치한 짓은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 - <간도특설대> 중에서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