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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1. 2016

[루터의 도시를 가다 4] "지옥이 있다면 바로 로마"

종교개혁 500년 우리는 지금

            

※ 내년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해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십 년 전부터 기념행사들을 시행해 왔고, 세계 여러 나라들도 종교개혁을 기념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속화가 거센 오늘날, 종교개혁의 슬로건처럼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루터가 걸어간 개혁 발자취를 따라가 보며, 기독교, 교회, 신앙인이 먼저 믿음과 생활의 개혁으로 그 본질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글쓴이 말

중세 시대, 교황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다. 교황은 하늘의 권세를 상징하고, 군주는 세속 권세의 대리자로서 교황의 신임을 받아야 직위를 인정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노사의 굴욕은 교황의 절대적 권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중세 교황의 지위는 어느새 절대권력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교황이 내리는 성경 해석은 오류가 없다는 신념이 그것이었다.


어거스틴 사제인 루터는 자연스럽게 교황을 존숭하였다. 게다가 로마는 유럽 최고의 성지로서 수많은 신앙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 아니었던가. 초대교회 신앙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었기에 로마 순례는 신앙인들에게 필생의 염원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께서 빌라도 법정에 서기 위해 오르셨다는 계단도 예루살렘에서 가져다 놓았고, 바울과 베드로의 유적, 카타콤베, 원형경기장 등이 있어 기독교 신앙을 되새겨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드디어 1510년 겨울 루터는 로마로 향한다.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당연히 도보였다. 어림잡아 1500Km나 되는 거리였다. 하지만 거리는 문제 되지 않았다. 교회 역사와 교황의 도시 로마를 간다는 데 방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믿음과 열정, 기대를 가지고 당도한 로마였다. 하지만 루터가 체험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루터 연구가들은 이렇게 지목할 수 있으리라. 종교개혁지는 95개 조항을 공표하였던 비텐베르크가 아니라, 정작 로마였다고.


루터의 로마 순례는 대실망이었다. 그는 나중에 정리하여 발표한 95개조 반박문 제88조항에서 이렇게 교황을 비판한다.


교황이 지금 하루에 한 번 모든 신자들에게 베풀고 있는 사면과 축복을 하루에 백 번을 한다고 하여 얼마나 더 큰 축복이 교회에 임하겠는가?


바티칸은 기초 공사 중이었고, 사제들은 면죄부를 팔았다. 무엇보다 루터를 실망시켰던 것은 사제들의 도덕적 문란과 타락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는 말뿐이지 무가치하게 취급되었다. 미사는 경건하지 못했다. 심지어 미사를 짧게 진행하는 사제도 있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사창가에 가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루터는 후에 이렇게 썼다.


지상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로마일 것이다.


루터의 마음에 의분(義憤)이 솟아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런 실상을 보게 하시려고 루터를 로마로 보내신 것은 아니었을까? 바울 사도의 경탄이 귓가에 울린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롬 11:33)


 글쓴이 : 추태화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 교수로 문학과 문화 비평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고 우리 사회가 건강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맑고 풍요로워지기를 꿈꾸는 기독교문화운동가이다.

※ 본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세계관월간지 <월드뷰> 2016년 6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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