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의 마지막 '괴짜'는 '보미로'라 불리는 주인이었다. 키가 큰 데다 몸집 역시 비대한 그는, 일명 '털보'로 불릴 만큼 온몸에 털이 돋아 있었다. 구레나룻은 그렇다 치더라도 손등에까지 수북하게 자라난 털을 보고 있노라면, 뽕잎 위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누에가 연상되었다. 한국말을 몰라서 그런지 사람들과 별반 접촉이 없었던 그에 대해, 기중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야! 태민아. 너 보미로라고 알지? 그 새끼가 작은 방에 사는 석영이 엄마허고, 대낮에 그 짓을 허다가..."
"...그 짓?"
"아따! 새끼야. 뺑꼬 몰르냐, 뺑코? 그런디 느닷웂이 들어온 어뜬 사람한테 딜캐 버렀넌 디, 을마나 놀래 버렀는고, 그것이 안 빠지드란다."
"...뭇이 안 빠져야?"
"아따! 미런헌 놈. 거시기가 안 빠지제, 뭇이 안 빠져야?"
"..."
"둘이가 한참 그 짓거리를 했을 것 아니냐? 그런디 사람이 들어와 버린 게, 을마나 놀랬겄냐? 그래 갖고 인자 니아까에 둘이를 같이 실어 갖고, 읍에까정 나갔넌 디... 그 뒤로는 어쭈코 되얐는가, 나도 잘 모르겄다."
"..........?"
태민의 미심쩍어하는 얼굴에 대고 그가 한마디 더 보탰다.
"으런들이 고로코 말허드란 게. 진짜여 임마. 내가 그짓말허먼 니 새끼다. 근디 니아까에 실래 가는 디, 둘이 막 머리끄덩을 잡어 댕김시로 쌈 허드란다."
"쌈을 해야?"
"그 새끼허고 그년이 첨에는 좋아 갖고 그 짓꺼리 해놓고는 빠지든 않고 언칸 아픈 게, 서로 낯바닥 쳐다봄시로 욕을 허드란다. 그래데이 손톱으로 낯바닥을 끄서 버리고, 그랬단다."
비 오는 날, 돼지우리 앞에 엎질러져 있던 밥알이 생각났다. 역시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날, 큰집 마당을 맨발로 가로질러 가다가 아이가 퍼질러 싸 놓은 노란 똥을 밟은 적이 있었다. 발가락 사이, 사이로 비집어 나오는 그 노란 똥, 똥들. 제 자리를 벗어난 것들의 더러움이란. 하지만 뱃속을 매스껍게 하는 그 이야기 속에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묘한 구석이 들어있었다.
똥과 오줌, 진흙으로 질펀해진 돼지우리의 바닥처럼, '쇠똥이'와 '보미로'는 한없이 지저분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팔위에 느닷없이 떨어진 쐐기처럼 소름을 돋게 하는 보미로의 수북한 종아리 털, 그 막되어먹은 인간성보다는 차라리 공포감을 자아내는 '길선'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지저분한 사건은 또 있었다. 어느 날 방과 후, 흥식은 학교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 외에는 모든 것이 숨을 죽이는 시간. 교무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서쪽의 교실 문 앞을 스쳐 지나다가,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들었다. 녀석은 무심코 유리창에 눈을 갖다 댔다. 네모난 나무틀과 창호지 사이의 벌어진 틈 사이로 드러난 교실 안의 풍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여러 개의 책상을 끌어 모아 급조된 '간이침대' 위에, 담임 진길중과 여선생이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아랫도리를 벗어젖힌 그들은 마치 밀폐된 공간에라도 들어있다 여기는 듯, 거리낌 없이 '그 짓'을 해대고 있었다. 녀석은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그 장면들을 감상했다. 정신이 몽롱했다.
그러나 하얗게 드러난 여체를 탐하며 무아지경을 헤매던 그가 느닷없이 고개를 들어, 창 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거짓말처럼 딱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의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와 눈에 박혔다. 평소 온화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 당혹스러움과 증오감이 스쳐갔다. 그리고 분노와 경멸, 뻔뻔스러움이 겹치는가 싶더니 급기야 인간이 지을 수 있는 한, 가장 무서운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너, 이 새끼. 꼼짝 말고, 거그 깍 서 있어."
그 와중에도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바리톤 음성이 녀석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엄포를 놓은 다음에도, 그는 계속 그 짓을 해댔다. 아래에 깔린 남영순 역시 '어린 아이' 하나 정도는 안중에 없다는 듯, 몸을 뒤틀며 괴성을 질러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평소 '춘향이' 별명이 붙을 만큼 조신(操身)하다고 소문난 여선생님이 눈을 내리깐 채, 주섬주섬 옷을 꿰기 시작했다. 새까만 머리카락 아래에 하얗게 드러난 어깨와 등을 보는 순간, 느닷없이 욕정이 일었다. 녀석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느긋하게 일을 마친 진길중이 책상까지 가지런히 정돈하고 바지를 들어 올리는 순간, 녀석은 비로소 화들짝 놀래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벼락'을 맞은 후부터 제자리에 붙박이가 되어버린 녀석의 귓전에,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발자국 소리.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열에 들뜬 듯 흔들리는 그의 시선 가운데에, 바지의 마지막 단추를 꿰는 담임선생님의 손이 들어왔다. 그 손가락들은 가볍게 떨고 있었다.
"너, 이런 상렬어 새끼가..."
사시나무 떨 듯 하는 흥식의 멱살을 틀어쥔 다음, 그는 교실 안으로 힘껏 밀쳐 넣었다. '춘향이'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김소월의 시를 낭송해 주고, 산수 문제를 풀어주던 선생님.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양의 탈을 벗어던진 늑대에 불과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살 속 깊숙이 와 박혔다. 다짜고짜 주먹이 날아오고, 발길질이 난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노모 새끼가 선생님을 엿보고 있어야? 누가 너보고 그러라고 가르치디야? 엉? 아나! 이 노모 새끼야. 또 엿볼래? 또 엿봐?"
"...아니여라우. 그것이 아니고라우..."
"아니기는 뭇이 아니여? 이 새끼야!"
여자의 몸에 뱉어내지 못한 정액이 지금도 남아있는가? 그는 에너지가 철철 넘쳐났고, 아이는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혹시 내가 대낮 도깨비를 만났을까? 아니면 악몽을 꾸고 있을까? 꿈인지 생시인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판단이 서질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들겨 맞는 샌드백보다 때리는 몸이 더 지친 듯,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너, 이 새끼. 헉헉... 내가 환장허겄구만 이. 만약에 오늘 일을... 헉헉... 다른 사람들한테 말했다가는, 그날로 너는 죽을 줄 알아. 그날이 헉헉... 바로 니 제삿날이라고 임마! 내 말 알아 듣겄냐?"
"..........예..."
"너, 분명히 나 허고 약속했다 이. 만약에 이 선생님 말을 어겼다가는... 너, 알지?"
"..........예."
"짜식이 학교 파했으면, 싸게 집에나 기어가서 부모님 일이나 도와주든지 헉헉... 숙제를 허든지 해야제. 엉뚱헌 짓만 허고 자빠졌어. 아무튼 내가 한 번 더 강조하는데, 니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 또 식구들한테도 절대 말허먼 안 돼야. 만약 그랬다가는, 이 선생님이 너를 절대로 가만히 안 둔다. 알겄냐? 특히 느그 부모님한테는 절대로 말허지 말어. 말이 나올락 허먼, 입을 깍 깨물르란 마다. 피가 나도 갠찮은 게. 그러고 내일, 학교 꼭 나오고. 알겄냐?"
"...예..."
문을 닫고 나오는 녀석의 두 다리는 완전히 풀려 있었다. 머릿속이 텅 빈 듯, 어지러웠다. 휑하니 비어있는 운동장을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솔밭 사이로 난 길을 가로질러 서촌동네로 향했다. 길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도 없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세상에! 이렇게도 재수 없는 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내일 학교에 가서 '그'와 마주칠 일이 더욱 꿈만 같았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홍역을 앓아야 했던 녀석은,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말이 부쩍 줄어든 데다, 사람들 만나기를 꺼려했다. 꿈을 꾸다가 깜짝깜짝 놀라 깨어났고, 그때마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곤 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 마침내 그는 발작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갑자기 땅바닥에 꼬꾸라져 거품을 문 채,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흔들어 댔다. 집에서는 '당골래'를 불러 굿을 한다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하지만 그 이상한 증세는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 무렵. 태민은 우연히 작은방 앞을 지나다가, 이씨 부부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태민이 아부지. 그 흥식인가 누군가 허는 애기, 소식 들었습디요?"
"굿도 허고, 밸 짓을 다 해도 안 낫는답시로? 어뜬 사람은 '귀신들렸다'고도 허고, 또 어뜬 사람은 '몸이 허해져서 그런다'고도 허는 디, 째깐헌 것이 어째서 그러까?"
"그런 게 말이요. 그러고 요새 소문이 이상허게 납디다마는..."
"..........?"
"그 백여시 같은 여선생허고, 진길중 선생 허고 눈이 맞었담시로라우?"
"애팬네가 쓰잘데기 웂는 소리는.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즈그덜이 두 눈으로 봤간디? 그러고 또 막상 말로 그랬닥 허먼 어찔 것이여? 한창 젊은 나이에 촌구석에 맻 년씩 쳐백해 있다 보먼, 치마만 둘러도 이쁘게 보일 턴 디 오직허겄냐고? 그러고 막상 말로 둘이다 총각, 처녀 아니여? 유부남, 유부녀도 아니고."
"아따! 당신은. 꼭 당신 같은 소리만 허고 있소 이. 그러먼 그것이 시방 잘했단 말이요?"
서른 명도 넘는 교사들 가운데, 그녀는 유일한 '홍일점'이었다. 까만 머리채를 궁둥이까지 늘어뜨리고 다니는 폼이나 하얀 얼굴, 조심조심 걷는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기품 있어 보였다. 때문에 남자 선생님들은 물론, 고학년 사내아이들까지 그녀 앞에서는 괜스레 생글거렸다.
어느 날 오후 수업을 받던 중, 태민은 갑자기 배탈이 나고 말았다. 초여름의 햇살이 내리쬐는 재래식 변소의 주위는 모든 것이 정지된 듯, 고즈넉하기만 했다. 옆에 딸린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서는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급한 태민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력을 다한 끝에 겨우 목적지에 당도한 후, 무심코 첫 번째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춘향이'가 앉아 있었다. 문고리를 잡지도 않은 채 용변을 보다가 순식간에 들키고 만 그녀는, 멍한 눈길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
"..........?"
태민 역시 진한 그늘 속에 드러난 하얀 엉덩이만 언뜻 보았을 뿐, 더 이상 기억에도 없다. 한동안 넋을 잃은 채 서 있다가 화들짝 놀래어 돌아섰고, 등 뒤에서 '꽝'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용변이 마려운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엉덩이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이 황급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태민은 놀라움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노크도 없이 선생님의 전용칸을 열어 젖혔다는 무례함이 아니라, 그토록 청순하고 고고하게만 보였던 '춘향이'가 아이들과 똑같이 변소에 드나들어야 하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 그 확인에서 오는 충격이었다. 정숙한 이미지로만 각인된 홍일점은, 당연히 더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어야 했다.
"어메. 나 오늘... 밴소에서 남영순 선생 봤다. 근디 여선생도 밴소에를 댕긴 단가?"
"너도 속창아리 되게 웂다 이. 여선생은 안 먹어도 산다고 누가 그러디야? 먹었은 게, 쌌을 것 아니냐? 하다! 안 먹어도 살 것 같으먼, 사람이 아니제에."
그러나 그날의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눈으로 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었다. 그런데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씨 부부의 '이상한' 대화까지 듣고 나니 머릿속은 뒤죽박죽. 이듬해 '춘향이'가 학교를 떠났고, 그 반년 후에 그 '늑대'마저 어디론가 전근해 갔다. 언젠가 미술 시간에 진길중 선생은 그랬었다.
"에. 아름다운 수채화 속에는, 밝고 환한 색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에... 어둡고 칙칙한 색깔도 섞여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왜 무라리의 사랑에는 어둡고 칙칙한 색깔만 있을까? 왜 이곳의 성(性)에는 밝고 환한 색깔이 없을까?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