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by 인터파크 북DB

태민의 경우, 3학년까지는 건성으로 학교를 다녔다. 공부에는 당연히 취미가 없었고, 담임선생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4학년 때에 이씨가 기성 회장을 맡게 되자 담임교사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그에 따라 공부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초, '호랑이' 선생님이 부임해 오면서 성적은 급상승했고, 마침내 학년 전체에서 선두를 내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동급생들보다 한 살 어린 데다 세상물정에도 어두웠던 태민은 말수 또한 적었다. 숫기도 모자라 책을 읽어보라거나 산수 문제를 풀라고 하면 얼굴이 금세 홍당무로 변했다. 리더십이니 통솔력 같은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눈치나 요령도 없었다. 키나 몸집이 크지 않은 데다 겁이 많아 복도에서 덩치 큰 여학생과 마주칠 때면 한쪽으로 비켜서 걸었다. 여자아이들이 놀릴라치면 울상이 되어 눈물까지 삐쭉거렸고, 그 덕분에 학교에서 누구와 다투거나 싸워본 일이 없었다. 반장으로부터 적어도 맞을 염려는 없을 것이라는 여학생들의 믿음 때문인지 선거 때마다 몰표가 쏟아졌고, 그 때문에 늘 반장 후보 순위에는 1위로 올랐었다. 그리고 실제로 당선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임명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차렷 경례' 구령조차 하지 못하는 자에게 중책을 맡길 수 없는 것이 담임의 입장이었을 터, 여러 정황을 감안한 사려 깊은 배려를 내심 고마워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던 중, 올봄 5학년 초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사라져버렸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나중에 들은 바로는 광주로 전근을 갔다나 어쨌다나. 마침 교실도 부족하여 2부 수업을 하는 중이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오후반 아이들까지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에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갑자기 수업이 시작될지 알 수 없었던 데다, 동네에서 딱히 즐길 만한 놀이도 없었던 까닭이 아닌가 싶다.

부반장의 직책을 맡고 있던 태민은 그날도 학급 간부들과 함께 뒷동산에 올랐다. 열아홉 살 처녀의 허벅지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를 머금은 언덕에는 드문드문 '뗏창'이 덮여 있었고, 그 위에 칠산의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때 이른 점심을 먹고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려는데, 종소리가 들렸다. 늙은 소사가 치는 종은 듣는 사람을 늘 헷갈리게 했다. '땡땡' 두 번이 시작종인가, 끝날 종인가. 변소로 향하는 반장의 등에서 시선을 거두어 건물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 순간, 철봉대 아래에서 손짓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플러 나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맨땅에 풀죽은 아이들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누런 외투를 걸친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널따란 이마는 햇빛에 번쩍거렸고, 위로 치켜 올려진 눈은 폐부를 찌르는 듯 날카로웠다. 오만하게 벌려진 두 다리 위에, 그리 길지 않은 몸뚱이와 다부진 어깨가 얹혀 있었다.

"에!... 내가 오늘부터 여러분을 맡게 된 담임선생님이다. 앞으로 똑바로 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

바람처럼 사라진 선생님, 폭풍처럼 들이닥친 이상한 사내. 대타(代打)치고는 최악의 선수를 만난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그 예감은 비수처럼 적중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책상의 앞줄은 물론 옆줄, 대각선까지 정확하게 맞추도록 훈련을 시켰다. 정면에서 바라보던 그가 옆으로 비켜 서 실눈을 뜰 때, 아이들은 줄을 맞추느라, 아니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 꾸부정하게 앉는 자세 또한 용납되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눈은 정면을 응시하되, 고개는 반듯이 들고 턱은 뒤로 바짝 잡아당기도록 강요받았다. 글씨를 쓸 때에 연필의 각도는 항상 90도 직각을 유지하되, 그때 몸이 틀어져서도 안 되었다. 물론 잡담은 일체 금지되었고, 고개를 돌린다거나 심지어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가 칠판에 글씨를 쓰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에도, 아이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재빨리 몸을 뒤집는 그의 시선에 흐트러진 자세가 포착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기침이나 재채기, 딸꾹질, 방귀 등의 생리적인 현상도 전심전력,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방지되어야 했다.

그는 장군이나 제왕처럼 군림하였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사열 받는 병사인 양, 어전회의에 참석한 신하들인 양 부동자세와 절대복종을 강요받았다. 자유롭고 평화로웠던 교실은 삽시간에 '창살 없는 감옥'으로 둔갑했고, 학교에 머무는 시간들은 온통 회색빛으로 채색되었다. '황야의 무법자'를 맞이한 아이들은 미처 총을 뺄 겨를도 없이, '벌집'이 된 몸을 부여잡고 비틀거려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패거나, 매를 때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구태여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 같은 고약한 인상에 심장을 꿰뚫는 눈빛, 작은 마음의 움직임까지 포착할 줄 아는 영악함, 어쩌다 한 번씩 질러대는 고함만으로도 '촌닭'들을 요리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그의 교육목표는 학습의 수월성(秀越性) 제고라든가, 인격도야, 덕성함양과는 전혀 무관한 것 같았다. 발등에 떨어진 불, 중학교 입시와도 한참이나 동떨어져 보였다. 명령 한 마디에 척척 움직이는 정예병으로, 군주에게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하는 신하로 아이들을 육성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여겨졌다. 교육현장의 주인공은 아이들이 아니라 그 자신이라 믿는 것이 틀림없었다. 병정놀이의 리더로서 유감없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그를 바라보며, 어쩌면 아이들을 화풀이의 대상, 대리만족의 소모품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감도는 야릇한 미소를 응시하며, 태민은 틀림없이 그가 아이들의 고통을 즐기고 있다는 엉뚱한(?) 확신을 품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하루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직한 태양으로 말미암아 간신히 마감되고 나면, 고통과 공포의 시간을 버텨낸 아이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며 귀가를 서둘렀다. 그러나 얼굴에는 수심(愁心)이 가득한 채,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악몽은 오늘로써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내일의 태양이 또다시 떠오른다는 엄연한 현실이 끔찍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통 잠이 오지 않았다. 삶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어떻게 해야만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이마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순간, 가위 눌렸을 때처럼 목이 답답했다. 결석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혹시 지각하는 불상사가 발생할까 봐, 자다가도 몇 번 씩 깨야 했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화들짝 깨어 보면 오밤중, 선잠이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보면 여전히 밖은 어두운 채였다.

금자를 졸라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내팽개치고 집을 나섰다. 전쟁이 터지든지, 지진이 일어나든지, 아니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길이 막히든지 간에 어떻게든 학교에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현실은 엄혹했다. 연필과 공책, 색종이를 사기 위해 가게 앞에 몰려서 있는 조무래기들,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한 어머니 김씨, 소를 앞세우고 쟁기를 등에 업은 채 들로 향하는 동네아저씨,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호미를 든 채 그 뒤를 부리나케 좇아가는 아낙네 등, 모든 것이 이상무, 정상이었다.

아이들은 그에게 '호랑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맹수의 제왕'처럼, '정글의 폭군'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수업 중에도 엉뚱하게 노래를 시켰고, 화가 났다 하면 느닷없이 운동장으로 불러내 몇 바퀴씩 뛰게 했다.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한 시간 내내 신빙성이 떨어지는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 중학교 시절 밴드부장으로서 고적대의 최선두에 서서 광주 시내를 행진했다느니, 축구부 주장으로서 센터포드를 맡았는데 공을 잡으면 빼앗을 사람이 없었다느니, 어린 시절 고향집의 전답(田畓)이 삼백 마지기가 넘었고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하여 떨어졌다느니. 별 흥미도 없고 알아듣기도 어려운 이야기들을 침을 튀기며 늘어놓을 때, 아이들은 잠시 행복할 수 있었다.

태민은 전임(前任) 담임선생님처럼 그 역시 바람처럼 사라지는 일은 없을까 공상해 보았다. 맞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모두가 행복할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5학년도 다 끝나갈 무렵, 그가 태민을 불렀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 앞에 섰을 때.

"이태민! 너는 나의 첫 제자고 또 수제자다. 내가 비록 촌구석에서 선생질을 시작했다마는, 너를 보고 장래성이 있는 놈으로 판단했다. 회장님 교육열도 그렇고, 가정형편도 그만허먼 뒷바라지허는 디 지장 웂을 것 같고. 다만 사내자식이 숫기가 없는 것이 흠 아니냐 싶어서... 에! 너를 훈련시킬라고 웅변이랑 이것저것 시키고 그랬제에. 내가 6학년까지 너를 데꼬 올라가면 좋겄제마는 그럴 형편이 못 된 게, 내가 담임한테 미리 말해 놓았다. 아무쪼록 열심히 해서 일류 중학교 들어 가그라. 넓은 세상 나가서 큰 인물 되아야 헐 것 아니냐? 내 말 알아 듣겄냐?"

법대를 나와 7년 동안 사법고시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임시로 설치된 광주 교원양성소에서 3개월 교육을 받아 초등학교 교사가 된 사람, 풍금도 못 치고 구구법도 서툰 데다 모음조화나 두음법칙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분. 그 분이 나를 수제자로 여겼다니. 김씨의 말마따나 그는 태민에게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집중했었다.

"혹시 느그 담임선생이 무시락 않디야? 느그 아부지가 그 전에 진 선생이랑 젊은 선생들을 좋아했넌 디, 이참에 심 선생한테도 너를 계속 맡어주라고 했는 갑이여. 그런디 문 속인고, 거절허드라고 허드라."

".........."

"그래도 니가 그 심 선생 만나 갖고 이만이라도 허제, 안 그러냐?"

기어이 웅변연습을 시켜 학예회 때 내보내지를 않나, 거의 매일처럼 아이들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도록 하지를 않나. 그런데 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건전가요나 동요를 아주 싫어한다는 사실, 반드시 유행가만 '정식' 음악으로 쳐주었고, 특히 태민에게는 '고향무정'이란 노래를 불렀을 때에만 제자리에 가 앉도록 허락했다.

언젠가 그가 장래 포부를 물었을 때, 처음에는 '초등학교만 나와 농사를 짓겠다!'고 장난삼아 말했었다. 하지만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발견하고 곧바로 '미국유학을 다녀와 박사가 되겠노라'고 정정했었다. 미국유학을 학벌 중 최고로, 박사를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으로 생각한 것인데, 허무맹랑하게까지 들렸을 법한 이 말에 뜻밖에도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었다. 네 명이 달리기 시합을 하면 태민이 1등 할 때까지 계속 반복하도록 했고, 시험문제 가운데 하나라도 틀리는 날이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물론 태민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가 싫었다. 귀찮았고 미웠다. 마냥 벗어나고 싶었던 존재, 그가 여러 아이들 가운데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니. 그 사연이 궁금했다. 발령을 받자마자 교장이 그를 불렀단다.

"심 선생! 5학년 1반에는 기성 회장 아들도 있고, 자모회장 딸도 있소. 말허자면 무라리의 유지들 자식들이 다 몰려있단 말이요. 지금까지 여러 선생들이 달려 들었제마는, 다 떨어져나갔소. 어째 당신이 맡어서 한번 해 볼라요? 자신 웂으먼 일찌감치 포기허든지..."

호랑이는 무조건 맡겨달라고 했단다. 내가 그 놈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제대로 한 번 가르쳐보겠노라고. 그래서 오자마자 기합을 주고 닦달을 해 대고 했단다. 6학년까지 데리고 올라가려 했단다. 보란 듯이 일류 중학교에 합격시키고 싶었단다. 하지만 포기했단다. 중학교 입시가 치열한 마당에 정식으로 교육대학을 나오지 못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단다. 차마 6학년 담임을 맡겠다고 나서지 못했단다.


겨울철 내내 그 길은 하얀색이었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돋아날 때면, 대기는 코끝에 상큼하게 와 닿았다. 이런 날,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길을 먼저 지나가려고 기를 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앞사람 발자국만 밟고 졸졸 따라가는 아이도 있었다. 태민에게 눈길을 걷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었다. 한 발 뗄 때마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뽀드득'소리가 너무나 상쾌하고 또 재미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쉬이'를 하면, 오줌발은 용감무쌍하게 눈 속을 뚫고 들어가 맨땅까지 헤집어놓았다. 흙이 튀어 바지에 박히는 일이 께름칙하여 어떤 아이의 흉내를 내며 고추를 좌우로 돌려대며 걷기도 하고, 미술시간에 배운 꽃 모양이나 집 모양을 그려 보기도 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눈밭 위에 뿌려진 노란색 물감은 도화지 위에 칠해진 색보다 더 선명했다. 그림을 미처 완성하기도 전에 오줌발이 그칠 것 같아 끝까지 용을 써 보지만, 대개 미완성의 작품으로 남기 마련.

칠산 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올 때면, 일부러 정면을 향해 돌진해 보곤 했었다. 북풍은 사정없이 귓불을 때리고 숨은 막혀 오는데, 힘껏 달리면 달릴수록 도리어 몸뚱이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심영진 선생님을 만난 때부터 '강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다.

귀밑까지 내려오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턱에 끈을 맨 다음, 벙어리장갑을 낀 후로는 달리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제 바람도 문제없다. 칠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고 매서울수록, 그것을 극복한 다음의 희열 역시 더 크다는 사실도 알았음에야.

'신발이 헐떡거려도 허리를 굽히지 말자. 등 뒤에 맨 책보 속에서 밥과 김치가 뒤엉켜 덜거덕거려도 뒤돌아보지 말자. 밭 가운데의 땅콩이 나를 유혹해도, 쇠똥이가 개지랄을 해도 옆을 힐끔거리지 말자. 물둠벙은 용감히 건너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은 온몸으로 받아들이자. 앞만 보고 달리자. 피 맺힌 무라리의 한을 안고, 칠산의 해풍을 들이마시며 나는 달려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극복해야 한다. 나에게 닥칠 운명, 다가올 세파(世波)가 아무리 거세어도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가난하고 어둡고 칙칙한 무라리를 벗어나야 한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처럼, 장원급제하고 암행어사로 내려오는 이몽룡처럼,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처럼 나는 그렇게 무라리로 다시 와야 한다!


by 강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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