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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2. 2016

반듯하게 계획된 도시, 캔버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주 Top10

                                                     

캔버라Canberra는 참 반듯한 도시이다. 1901년, 영국연방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치권을 얻은 호주 정부는 새로운 수도를 어디에 정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대도시인 시드니와 멜버른은 서로 자기가 더 수도에 걸맞다며 치열하게 싸웠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말이다. 그 오랜 싸움 끝에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뜬금없게도 시드니와 멜버른 둘 다 아닌 캔버라였다. 

캔버라는 그렇게 수도가 되었으나,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보통 여행을 갈 때 필수 코스로 넣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곳을 대표하는 두 가지 축제를 접하면 그 생각은 달라진다. 첫 번째는 봄에 열리는 '플로리에이드Floriade'라는 꽃 축제이다. 호주의 봄은 9월부터인데, 매해 달라지는 테마에 따라 벌리 그리핀 호수Lake Burley Griffin를 끼고 있는 코먼웰스 공원Commonwealth Park에서 100만 송이 이상의 꽃이 가득한 화려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세계 4대 열기구 축제 중 하나인 ‘캔버라 열기구 축제Canberra Balloon Festival’이다. 3월부터 시작하는 호주의 가을에는 국회의사당 잔디밭에서 떠오르는 열기구를 볼 수 있는데 아침 동틀 무렵 열기구들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화려한 색색의 열기구가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아등바등 악에 받쳐 살아온 세월이 순간, 무의미해지기까지 한다. 

이처럼 매력적인 도시 캔버라는 캐피털 힐Capital Hill을 중심으로 육각형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곧고 넓은 길과 구석구석 마련된 공원으로 계획도시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끔, 캔버라를 갈 때면 구획별로 정확히 나뉜 길과 공간을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는 것도 이렇게 정확한 방향과 길이 제시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여태껏 셀 수 없이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하며 살아왔다. 아마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수많은 결심과 계획 중에 처음에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결심과 계획은 직전에 세웠던 것들을 보완하고 변명하기 위한 것일 뿐,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호주에 왔는데, 3개월이라는 연수 과정이 끝나자 나는 건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막막했다. 그때부터 길을 닦고 벽돌을 날라 손수 집을 짓는 심정으로 코앞의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유학원의 문을 두드렸고, 이곳에 남아야 하는 이유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려고 수십 번씩 생각을 고치고 또 고쳤다. 

내가 호주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당장의 방법은 공부를 계속하며 학생비자를 유지하는 것이었기에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물색하며 몇 주간 나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공부를 하자.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학과를 선택하자.' 이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하나의 전문 분야도 좋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그림을 그리며 길을 내고, 터를 닦아나가며 캔버라 대학교University of Canberra에서 경영·마케팅 공부를 시작했다. 

솔직히 공부를 시작할 당시에는 졸업하고 나면 꽤 안정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살면서 점점 깨달았다. 도시는 계획할 수 있지만, 삶은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을. 다만 의지와 꿈이라는 청사진을 가지고 끊임없이 최선의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 완벽하게 짜인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을 얻고 나니 불안감과 조급증이 줄어들었고 계획에 대한 강박관념도 사그라졌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현재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늘 자신의 미래를 완벽하게 계획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느끼면 그때부터 아름답고 풍성한 현재를 전혀 즐기지 못한다. 

인정하자. 삶은 계획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대신 멀리 보자. 길 끝에 분명, 또 다른 길이 있다. 


about: Canberra 

호주의 수도 캔버라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를 대여하거나 대중교통인 액션버스 또는 투어버스인 '시티 사이트싱 캔버라City Sightseeing Canberra'를 이용하는 것이다. 계획도시인 만큼 도로들이 반듯해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알맞지만 안전을 위해 헬멧을 꼭 써야 한다. 또한 호주는 차량 통행 방향이 한국과는 반대이기 때문에 길을 건너거나 차를 타고 다닐 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투어버스의 경우 캔버라 시내의 주요 명소에서 '홉온홉오프Hop-On Hop-Off' 즉, 내렸다 탔다 하며 즐길 수 있어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여정으로 캔버라에 들렀을 때 이용하기 적당하다.


글 : 칼럼니스트 앨리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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