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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6. 2016

우리에게는 더 많은 '세월호' 이야기가 필요하다

<거짓말이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해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 대부분이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었던 점,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은 제 목숨 지키기에 바빴던 점은 안타까움을 낳았다. 정부의 사후 대처는 의뭉스러웠다. 수많은 의문만을 남기고 끝맺었다. 이로써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정부의 대응에 실망한 유족들은 상실감을 이겨내기도 전에 집회 장소로 나섰다가 물대포를 맞는 일까지 발생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세월호 사건에 대한 태도는 보수와 진보 간 정치 대립 구도로 비화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갈등의 골은 깊어졌으며 의혹은 더 불어남으로써 전국민적인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 트라우마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TV 화면 속 세월호 보도를 지켜만 보면서 무력감밖에 느낄 수 없었던, 또 저마다의 생활이 바빠 작은 노란 리본을 다는 것으로 밖엔 유감을 표출할 수 없었던 이들. 그런 이들에게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표방한 김탁환 작가의 <거짓말이다>는 한 걸음 다가서서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거짓말이다>는 실제 세월호 수습에 참여했던 고 김관홍 잠수사를 모델로 한 민간 잠수사 나경수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김 잠수사가 재판장에 바치는 탄원서를 통하여 열악한 현장 상황에서도 수습에 나서야 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상황, 그들이 맞닥드린 심해 속 사건사고 현장, 온몸 바치며 실종자 수색에 앞장선 민간 잠수사들에 대한 국가의 형편없는 대우를 밝힌다. 왜 그들이 '잠수사는 말이 없다'는 불문율을 깨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는지의 이유도 여기에 드러난다. 고 김관홍 잠수사는 지난 6월 17일 오전 자택 비닐하우스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후 결국 숨을 거둬 안타까움을 남긴 바 있다.


'이 작품은 왜 민간 잠수사의 목소리를 택했을까?' 소설을 읽으며 여러 차례 이런 궁금증을 갖기도 했다. 이 소설을 쓴 김탁환 작가는 주간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김관홍 잠수사의 육성을 들으며 어떤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땅 위가 아닌 해저 공간에서 있었던 일들을 써야 온전한 서사가 되겠다고 느꼈다고도 했다. 그의 말처럼 소설이 잠수사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은 바닷속에서 세월호 사고로 고인이 된 학생들을 '최초로' 만나고, 구조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잠수사들이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각종 집기류가 굴러다니는 위험한 선실에서 온갖 장애물들을 처치하고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 있던 실종 피해자들을 구출해 내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이며 치유의 경험을 주는 대목이다. 독자들은 잠수사와 함께 학생들의 시신을 끌고 나오면서 수많은 뉴스와 각종 루머에 가려졌던 원초적인 비극과 대면하게 된다.


사회파 소설의 매력은 이처럼 사회를 반영하고 또 그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준다는 점이다. 20세기 기억이론의 대가 알라이다 아스만은 그의 책 <기억의 공간>에서 "트라우마는 몸에 직접 각인되어 그 경험을 언어적으로 작업하여 해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경험은 서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형상화한 소설처럼 서사화를 통해 공유된 기억을 만들어 나가는 행위는 트라우마 치유의 첫걸음일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수의 공유된 기억들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극심한 공포와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마지막 순간일수록, 그 사람은 오롯이 그 사람인 겁니다. 그 차이를, 그 유일무이한 특별함을, 잠수사는 만지고 안고 함께 헤엄쳐 나오며 아는 겁니다. 인간은 결코 숫자로 바뀔 수 없습니다. 바지선에서 철수한 뒤 제가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은, 너는 몇 명이나 수습했느냐는 겁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수습한 숫자가 아니라 선내에 남아 있는 숫자였습니다. - <거짓말이다> p.113


이 책을 읽는 장소는 내내 바뀌었다. 지하철 안, 버스 정류장, 방구석, 카페 테이블 등 각기 다른 풍경과 장소 속에서 책을 읽어나갔다. 일부러 신파적인 느낌은 배제하고 담담한 문체로 쓰여진 소설임에도 여러 번 읽기를 중단하고 울음을 참기 위해 책장을 덮어야 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세월호 선내를 유영하고 고인들을 마주한 경험은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구성원으로서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우리에겐 더 많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글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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