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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05. 2016

 종교개혁을 전하는 또 하나의 관문

종교개혁 500년 우리는 지금 [루터의 도시를 가다 5]

              

※ 내년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해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십 년 전부터 기념행사들을 시행해 왔고, 세계 여러 나라들도 종교개혁을 기념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속화가 거센 오늘날, 종교개혁의 슬로건처럼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루터가 걸어간 개혁 발자취를 따라가 보며, 기독교, 교회, 신앙인이 먼저 믿음과 생활의 개혁으로 그 본질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글쓴이 말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1517년 10월 31일 내걸었던 95개조 논박문은 유럽 곳곳으로 배달되어나갔다. 때로는 지식호사가들이, 때로는 종교지도자들이, 때로는 학자들이 루터의 저술을 목이 타게 기다리고 있던 중 독일 최고(最古)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교(1386년 설립)에서 루터를 공개청문회를 열어 초청하였다. 그는 이 초청에 순순히 응했다. 1518년 4월 26일 루터는 청문회에 섰다. 

청문회는 찬반 양쪽으로 나눠졌다. 회의는 소란스러웠다. 면죄부 논박문에 반대하는 이들은 루터의 생각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고, 젊은 학자와 학생들은 루터의 입장에서 쟁론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청문회에 모인 이들 중 열 명가량의 학자들이 루터의 주장을 옹호하였다. 그들 가운데 마틴 부처(M. Bucer)도 있었다. 그는 이후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칼빈을 만나는 과정에서 루터의 개혁 사상과 교육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 청문회가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은 여기에 참가한 학자들이 루터 사상을 동서남북으로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이델베르크는 종교개혁 사상을 전하는 또 하나의 관문이 되었다. 

반면 청문회는 루터로 하여금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과 칭의론이 그것이다. 십자가 신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인도하실 때 고난을 통해 영광에 참여하게 하신다. 고난 없는 영광은 존재할 수 없다. 구원은 고난을 전제로 한다. 고난은 성도의 영적 싸움의 한 과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을 바라볼 때 성도들은 환란을 극복할 수 있다. 

루터는 또 이렇게 고백한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더구나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없다. 사람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로 가능하다. 구원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인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청문회는 루터의 사상을 더욱 깊게, 더욱 든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종교개혁은 분명 하나님이 이끄시는 역사였던 것이다.

글쓴이 : 추태화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 교수로 문학과 문화 비평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고 우리 사회가 건강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맑고 풍요로워지기를 꿈꾸는 기독교문화운동가이다.


※ 본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세계관월간지 <월드뷰> 2016년 7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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