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세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빙하만이 둥둥 떠다니는 극지. 남극 망망대해 한복판에 뎅그러니 떠 있는 커다란 배 한 척.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없다. 그 위에서 두 달간 먹고 자며 생활해야 한다면?
한번 상상해보세요. 어떨 것 같아요? 저는 실제로 이런 생활을 해봤답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남극 세종기지를 건설할 때 생방송 팀으로 차출되어 남극으로 출장을 갔었거든요. 처음 한 달은 기지 건설 준비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배 안에 갇혀 지내야 했거든요.
'아, 정말 답답하네. 빙하 감상도 하루 이틀이지. 온종일 잠만 잘 수도 없고….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지루함에 점점 지쳐갔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가져갔던 책을 다 읽고, 다른 사람들 책까지 모조리 빌려 읽었어요. 그래도 심심하다 싶으면 갑판에 나가 줄넘기를 했는데, 하루는 빙하를 보면서 줄넘기를 하다 이런 상상을 했답니다.
'만일 내가 보트를 타고 가다가 난파를 당한다면?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제가 그냥 느닷없이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에요. 이것은 현재 상황이 견디기 어려울 때 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는 방법을 한번 실행해본 거예요.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대조효과(contrast effect)'라고 하지요.
저는 그때 대서양을 홀로 항해하다 난파를 당한 스티브 캘러핸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어요. 그는 난파를 당한 후 손바닥만 한 구명보트 하나에 의지해 망망대해를 무려 76일간 3900km나 표류했던 사람이지요.
'먹을 거라곤 절망밖에 없군.' '곧 죽을지도 몰라. 그냥 지금 확 고기밥이나 될까?' '아, 너무 외로워. 짜증 나게 만들던 사람까지 그리워질 지경이야.' '나는 과연 구조될 수 있을까?'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둥둥 떠다니면서 이처럼 온갖 부정적 마음들과 대면해야 했어요. 그러다 문득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생존의욕을 잃지 않기 위해 하루 일과를 아주 빡빡하게 정해놓았지요.
그는 우선 해가 뜨면 무조건 보트에 쪼그려 앉아 체조를 시작했어요. 그런 다음 보트 뒤를 바짝 따르는 만새기(최대 몸길이 2.1m, 몸무게 40kg까지 나가는 바닷물고기) 떼들과 아침 인사를 한 뒤, 날마다 새로운 주제를 정해 끝없이 대화를 나눴어요. 만새기 떼는 그가 표류하는 내내 친구가 되기도 했고, 식량이 되기도 했지요.
"만새기 떼는 진정한 친구가 돼주었어요. 제 먹이가 되기도 하고, 저를 죽일 뻔하기도 했죠. 어쨌든 매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대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어 저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만새기 떼를 보고 몰려든 새 떼 덕분에 작은 어선을 만나 구조되었답니다.
그런데 신기했어요. 제가 이렇게 상상에 빠져 줄넘기를 하다 선실에 돌아가 보면 시간이 한 시간도 넘게 흘러 있는 거예요. 줄넘기만 할 때는 20분도 지루했는데,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줄넘기를 하니 한 시간이 넘어도 지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온종일 줄넘기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까지 생기더군요. 몸에 있는 지루하고 따분한 에너지가 희망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이런 상상을 할 땐 마음의 공간을 최대한 크게 확대하는 게 좋습니다. 마음의 공간이 넓어질수록 상상이 자유로워지고, 마음도 시원해지거든요.
입시 준비 때문에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게 때론 너무 지루할 거예요. 당연한 일이에요. 반복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고 있으니 마음은 자꾸 답답해지고 '멘탈이 부서지는' 상태가 오지요. 그럴 땐 이런 상상이 필요합니다. '나는 내 마음속에 들어 있다.', '학교도 지구도 내 마음속에 들어 있다.'
좁아졌던 내 마음의 공간이 확 넓어지게 되면 지루하다는 생각이 자유롭게 풀려납니다. 더불어 공부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불행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옵니다.
※ 본 연재는 <흔들리지 않는 공부 멘탈 만들기>(김상운/ 움직이는서재/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상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