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스스로를 불사르던 태양이 잠시 몸이라도 식히려는 듯, 광백사 염전 쪽 칠산 바다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간 지 벌써 두어 시간이 지났다. 아이들은 산지떵에 그냥 누워있었다. 서촌의 북쪽을 병풍처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언덕배기의 서쪽 자락에 위치한 산지떵은 계절마다 그 얼굴이 바뀌었다.
봄에는 바구니를 든 처녀들이 쑥 캐러 나왔다가 총각들과 히히거리는 곳이었고, 여름철에는 더위에 지친 소들이 시원한 칠산 바람을 쐬며 풀을 뜯는 푸른 목장이었으며,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에는 동네에서 가장 긴 스키 활주로가 되어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어렸을 적. 태민은 이곳에서 가끔 병정놀이를 했었다. 또래보다 대여섯 살이 많은 '대장' 덕호는 장군 역할을 실감나게 해 보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동작도 날랬지만, 무엇보다 대나무를 베어 만든 검이 두 뼘쯤은 족히 더 길었을 뿐 아니라 끝에 손잡이까지 달려 있었다. 거기에다가 무예를 가르칠 때에 발휘하는 탁월한 리더십 때문에 영웅대접을 받았다. 시범을 보일 적에 그 건장한 몸을 살짝 숙이기도 하고 훌쩍 날아오르기도 하는 동작들이 나오면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태민 역시 그가 장차 이순신이나 강감찬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때문에 그가 중학교 진학도 못한 채 쇠꼴을 베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아그덜아. 우리 참외나 따 먹으로 가끄나?"
훠이 훠이 모기를 쫓던 태준이 또 하나의 기발한 제안을 하고 나선다.
"어디로 갈라고?"
"보미로네 땅콩 집으로 가제, 어디기는 어디여야?"
태민의 경우, 서리하는 데에는 별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하릴없이 모기만 뜯기고 있는 판국에 마냥 거절할 기분도 아니었다. 태준이 굳이 ‘보미로’의 참외밭을 털자는 데에는, 간밤의 태풍에 땅콩집 블록 담이 허물어졌다는 따끈따끈한 정보가 입수된 데다 평소 보미로가 동네사람들로부터 별로 인심을 얻지 못했던 사실이 작용한 것 같았다. 중국인이라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데다 무뚝뚝하고 인색했다. 특히 '그 사건' 이후 더더욱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으니.
"성! 차말로 그랬으까?"
"차말이제 그러먼. 놀래 갖고 여자 몸이 굳어지먼, 세맨트보당 더 단단해진닥 안 허디야?"
"그것도 함부로 못허겄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간 디. 그런게 거시기를 잘 놀려야 헌다고 안 허디야?"
"그러먼 성은 어찌간디? 히히."
킥킥. 천하의 도덕가라도 된 양, 성인군자 흉내를 내어 내뱉는 준엄한 교훈이 평소 그의 모습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나왔다.
"째깐한 새끼가 칵 안! 좌우간 여그서 옷을 벗어야 해."
땅콩집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배수로의 둑길 위 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태준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오랜 세월 동안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땅, 물둠벙. 서촌 동네와 땅콩집 사이에 놓여있는 이 벌판은 본래 생겨난 대로 널브러져 있었던 탓에 가물 때에는 높은 지대의 작물이 타 죽고, 홍수가 질 때에는 낮은 곳의 곡식들이 떠내려갔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가는 길의 양편에 있던 이 땅들을 경지정리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국에서 최초로 관정까지 파도록 앞장선 사람은 바로 이씨였다.
"당신은 뭇헐라 욕 먹어감시로 그런 일을 허요? 내 돈 들여감시로 해도 잘했단 사람은 웂고, 못했단 사람만 있지 않소."
"애팬네가 쓰잘 데기 웂는 소리는. 밭들이 빤뜻빤뜻허게 되고 농로가 뚫린 게, 경운기 들어가기도 좋고 쪼끔 있으먼 트랙터 들어가기도 좋을 것이고. 막상 말로 쟁기질허기도 좋고, 우 아래가 고른 게 가물 때 양수허기도 좋고, 홍수 날 때 물 빼기도 좋고. 비 안 왔을 때, 관정에서 펑펑 쏟아지는 지하수 물 있겄다. 뭇이 성가셔?"
"당신 혼자 생각이제, 어뜬 사람은 자기네들 땅 한 평인가 두 평인가 먹어 들어갔다고 구시렁구시렁 안 헙디요?” “그것이사 몰라서 허는 소리제에. 관정 자리 땜에 두어 평 농사 못 짓는 것 허고, 밭 전체가 타 죽는 것 허고 뭇이 더 낫겄어? 일 년만 농사 지어보락 해. 그러먼 내 말 헐 것인 게. 그러고 설사 시방은 모른닥 해도, 내 새끼들 대에는 알아줄 것 아니여? 내가 사심(私心) 먹고 그런 일을 했겄어? 내 땅은 앨라 더 들어갔어."
"그런게 뭇헐라, 내 것 손해 봄시로 그런 일을 허냐고라우?"
"저런 저런, 말허는 뽄대 허고는. 그러먼 다른 사람보당 많이 배와 갖고, 나 혼자만 배 불르게 먹고 죽어 버리먼 끝이란 말이여어, 뭇이여?"
"우리 식구 잘 먹고 잘 살고, 내 속으로 난 내 새끼들 잘 가르치먼 되제, 당신같이 그런다고 누가 상을 준답디요? 비석을 세워준답디요?"
"누가 비석 세워주라고 그러간디? 내가 내 좋을라고 내 돈 들여 뻐쓰 끌어오고, 전기, 전화 끌어오고, 아침저녁으로 군수 만나 차 사주고, 장관 만나서 밥 사줌시로 사정사정 허간디? 애팬네가 무식해 갖고는..."
대학까지 졸업한 이씨와 견줄 바는 아니지만, 김씨라고 하여 아주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제법 영리했고,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며 친정아버지를 조르다가 전라북도 이리까지 가서 5년제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했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대학'이라는 말의 위세에 눌렸는지, 학벌 말만 나오면 입을 다물었다.
태준의 충직한 졸병들은 반듯하게 난 둑길 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에 죽은 듯 누워있는 땅콩집을 바라보며, 태민은 이제 막 상여집에서 빠져나오는 마귀할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집도, 달빛도 음산하게만 느껴졌다. 겁쟁이 티를 내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지만, 막상 옷을 벗으려고 하니 몸이 으스스 떨렸다. 달이 구름 뒤에 숨어 엿보는 것 같고, 바람이 소리쳐 고발할 것 같고,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로 덮칠 것만 같았다.
거름지게를 지고 가며 무수히 흘렸을 농부의 땀과 장마철을 지나면서 훌쩍 커버린 풀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져 왔다. 악동들의 출현에 놀라 팔짝팔짝 뛰어가는 메뚜기, 그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다. 이 숨 막히는 순간에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느냐? 둥글게 만 손바닥을 작은 몸뚱이 위로 사뿐 덮어 보았다. 발버둥치는 대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녀석, 그 장면이 또 너무나 귀여워 곧 방면하고 말았다.
굳이 옷까지 벗고 싶진 않았다. 서리에 가담은 하되, 풍덩 빠지기는 싫었다.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한 발만 들여놓고 싶었다. 그러나 이쪽 방면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태준의 말인지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윗도리를 벗고 나니 러닝셔츠도 마저 벗으란다. 하얀 색은 절대금물이라며. 달빛에 반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얼굴과 가슴, 팔뚝 그리고 배에까지 잔뜩 모래를 입혔다.
"아랫도리도 벗어."
"...왜?"
"외를 따먼 어디다 담어 올래?"
"...? 알았어."
바지의 양쪽 발목 근처를 질끈 동여매니, 운반하기에 안성맞춤인 포대가 완성되었다. 태준은 팬티마저 훌렁 벗어던지며 따라 하기를 강요했다. 어이! 시원허다. 그러나 그것마저 벗어던질 만한 숫기가 태민에겐 없었다. 대신 모래를 한 움큼 사타구니에 쑤셔 넣고는 한참 동안 문질러 댔다. 모기 물린 자국이 가려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높은 포복, 낮은 포복을 번갈아가며 앞장서던 태준이 뒤를 돌아보며 태민과 광호를 단속한다. 아따! 새끼들. 궁데이 조까 더 낮치란 마다. 목표 지점은 아직도 요원한데, 오른쪽 어깨에 걸친 ‘바지 포대’가 자꾸 거치적거렸다.
"아이고! 내 좇도. 깝깝해서 못 가겄다. 전부 일어 나그라 이. 그냥 걸어가는 것이 낫겄다."
그거야말로 심히 바라던 바. 망지기 석형을 제외하고 벌거숭이 셋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 어떻든 오늘은 참 기분이 좋은 날이다. 항상 망을 보거나 보초만 서다가, 난생 처음으로 공격조에 가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구름 속에 숨었던 달이 낯을 내밀며, 세상을 대낮처럼 비추었다. 도둑놈들에겐 어두움이 더 좋은 법인데. 태준이 무너져 내린 담 벽에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한참 뒤로 쳐져 살금살금 걸어가는 둘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멈추라는 신호. 비상사태라도 발생한 걸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의 진중함일까.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달이 구름 속에 숨어들며 다시 사방이 캄캄해졌다. 아하! 하늘도 우리를 돕는구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는 저벅저벅 담 안으로 들어섰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바심이 났다.
'이러다가 무용담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내 인생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하는 이 순간, 눈앞에서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주인한테 붙들릴지언정,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실패하는 것보다 가담하지 않은 일이 더 부끄러울 텐데. 아하! 이래서 비상식적인 범죄가 일어나는 거로구나. 이래서 죄짓는 사람들에게 이력이 붙는 거로구나.'
애초의 출발선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심리, 이상한 욕구가 끓어올랐다. 신호가 없었음에도, 둘은 앞을 향해 나아갔다. 설령 정지 명령이 떨어질지라도 따르지 않을 요량으로. 대책 없이 무너진 담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깨어있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부터 허리를 펴고 걸었다. 마치 밭주인이라도 된 듯 걸음은 당당했고, 마음 또한 여유로웠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명령 불복종의 죄를 짓는 부하들 앞에서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류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아니면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혼자만의 공훈으로 돌리고 싶었던 욕망이 들켜버린 데 대해 당황해하고 있었는지.
앞가슴을 풀어헤친 채 잠이 든 미인처럼, 노란 참외는 그야말로 무방비. 아니, 애무의 손길을 애타하는 양, 달빛의 조명을 받으며 한껏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눈이 부시었다. 너무 황홀하여 정신이 아득했다. 이렇듯 아름다운 여인을 내팽개친 저 주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일까.
에라이! 멍청한 놈. 애지중지 키워놓고, 이제 와 잠을 퍼 자고 있어? 네 것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것은 왜 탐을 내니?
스스로 죄를 짓고 있다거나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둑놈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무죄다! 그래서 보미로가 잠들어있을 안채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황금빛 미녀를 맞아들이는 일이 급선무다. 바삐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셋은 가을걷이를 하는 주인처럼, 그렇게 당당해져 있었다. 망을 보던 석형까지 가세했다.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서, 잔인무도한 군화발 아래에서 참외들은 무저항으로 일관했다. 순결한 육체가 능욕을 당하는 데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유난히 먹음직스러운 한 육신을 골라 우두둑 한입 베어 물었다. 껍질도 벗기지 않은 통째로. 특유의 향기는 코를 찌르고, 달콤한 진액은 혀끝을 타고 침입해 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갈증 나는 손을 뻗어 안으로, 안으로만 담아두었던 물, 땀, 눈물, 피, 피, 피.
"야이! 개새끼들아. 허천병 났냐? 쪼끔 있다 가서 먹제. 여그서 다 어작내 버리냐? 빨리빨리 담으란 마다."
역시 태준은 남의 행복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정(性情) 같다. 한껏 부풀어 오른 바지포대의 허리 부분을, 혁대로 꽁꽁 묶었다. 모두 한 자루씩 들쳐 메고 나오는데, 태준은 두 자루를 업기 위해 낑낑대고 있었다. 그 순간을 포착한 석형이 포대를 내려놓고 양손에 참외를 하나씩 치켜든 채로 우적우적 씹다가 몽땅 내동댕이치고, 또 다른 하나를 집어 든다. 태민네 땅콩밭이 서리를 당했을 때, 김씨는 그랬었다.
"아이고! 새끼들도. 도독질을 허러 왔으먼, 즈그덜 따 먹을만치만 가져가먼 오죽이나 좋겄냐. 그런디 먹도 안 헐람시로 주인도 못 먹게 막 볿고 댕기는 통에, 속이 더 상헌단 마다. 시상에! 땅에서 나는 곡식을 고로코 절단 내 버리고, 하늘이 무섭도 않으끄나?"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던가. 누구든지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면, 차마 나쁜 짓은 하지 못할 텐데. 김씨가 비난했던 그 도둑놈이 바로 오늘의 나로구나.
사정권을 벗어난 뒤, 아이들은 개선하는 졸병마냥 걸었다. 애초의 출발지점에 돌아와 풀 섶에 숨겨둔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걷는 동안에도 포획물을 꺼내어 손으로 쓱싹 문지른 다음, 껍질째 우적우적 씹어 댔다. 간섭하기 좋아하는 태준이 가만있을 리 없다.
"느그덜, 껍딱이라고 암 디나 내뻐리지 말어라 이. 내일 땅콩집 사람들이 쪼르르 요것 따라 쫓아오먼, 다 뽀록 나버린 게."
먹다 남은 반 토막을 도랑 속으로 집어던졌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일단 옆 동네로 가는 것이 어떨까 궁리했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가 그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더 일이 꼬인다는 의견에 따라, 결국 산지떵으로 향했다.
악동들은 넉넉히 폼을 잡고 앉아 입술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씹어 댔다. 그러나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참외를 두세 개 먹고 나니, 더 이상 들어갈 배가 없었다. 그렇다고 여분을 내일까지 보관할 데도, 어디에 내다팔 수도, 누구에게 선물할 수도 없는 노릇.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듯, 태준이 벌떡 일어선다.
"우리 심심헌 디, 팬 싸움이나 허까?"
"...?"
"양쪽으로 갈라 서갖고 눈싸움 허득끼 허는 디, 눈 대신에 참외를 갖고 맞치기 허는 거여."
"맞어. 암만해도 더는 안 들어가네. 징허게도 크구마 이. 여그서 더 먹다가는, 짜구 나 디지게 생갰네."
두 명씩 갈라선 다음, 상대편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겨우 몇 발짝 앞에서 추락하기를 거듭했다. 이번에는 주먹으로 몸통을 가격하여 여러 개의 파편을 만들었고, 서서히 거리를 좁혀 나갔다. 바로 그때, 눈두덩에 큰 충격이 와 박혔다. 도둑 펀치를 맞은 것처럼, 혼백이 날아갈 지경. 석형의 던진 포탄이 정통으로 얼굴을 명중시킨 것.
"이 개새끼. 아무리 그렇다고 면상을 조준해야?"
녀석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한쪽 눈이 감긴 상태인지라, 방향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림짐작으로 포탄 하나를 발사했다. '퍽' 소리를 내며 포탄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고, 전사해 마땅할 녀석은 시퍼렇게 살아 몸을 돌렸다. 질겁하여 도망치다가 붙잡혔고, 포로의 등 안으로 쪼개어진 파편들이 밀어 넣어졌다. 결국 둘은 박장대소를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태준이 숨을 몰아쉬며, 또 단속을 시작한다.
"인자부터 느그덜, 집 소막간에다는 절대 똥 싸지 말어라 이."
"어째서?"
"땅콩집 보미로가 낼부터 온 동네를 갈고 댕길턴 디, 너 같으먼 어디부터 보겄냐?"
"맞어. 그러먼 우리보고 똥도 누지 말으라고?"
“아따! 똥 구먹 맥히먼 어쭈고 살겄냐? 다지금 집이서만 누지 말고, 난장판에다 누든지 다른 집 소막간에 가서 보든지 각자 알아서 허란 소리제에.”
이튿날. 일의 진행상황이 궁금하기도 하여 정보사령부 격인 큰집으로 달려갔다. 해가 중천에 떴건만, 태준은 쿨쿨 자고 있었다. 그 베짱이 부러웠다.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백모가 부엌 쪽에서 고개를 내민다.
"느그덜이 땅콩집 외, 따먹었냐?"
"...안 했어요."
"그래? 그러먼 어째서 보미로가 식전(食前)부터 여그를 왔으끄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려는데, 태준이 눈을 비비며 문을 밀친다.
"뭇이라고? 하이칸! 엄니도. 그런 일 있으먼, 사람을 깨우던지 허제마는."
"니가 코 곯고 자고 있길래 그랬지야. 그러고 너허고는 상관 웂는 줄 알았고. 그러먼 느그덜이 차말로 갔단 말이냐. 시방?"
"아따! 엄니는 안 했닥 허먼 안 헌 줄 알제마는, 고냔시 사람 의심허고 그러네 이."
"야이 놈아! 안 했으먼 그만이제, 어째 에미 보고 눈깔질을 허고 난리냐?"
"맬급시 쌩사람 잡은 게 그러제에..."
그러나 아무리 발뺌을 해도 범행의 전모(全貌)는 밝혀지고야 말았다. 고발자도, 검사의 심문도, 변호사의 변론도, 피의자의 자백도, 뚜렷한 증거도 없이 그냥 그렇게 아이들은 범인으로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범죄자들의 집에서는 배상금으로 보리 한 말씩이 거두어졌고,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