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칼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Oct 18. 2016

시험에 꼭 필요한 대박 공부법

공부 멘탈 만들기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아마도 시험기간일 거예요. 물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건 공부를 몰아서 하는 습관이 낳는 부작용 때문이었어요.

오래된 이야기 하나 할게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에요. 제가 살던 곳은 워낙 시골 깡촌이라 전기도 제대로 안 들어오던 곳이었어요. 학교에 가려면 큰 고개를 넘어 40~50분은 족히 걸어야 했거든요. 

하루는 영어 선생님께서 영어단어 시험을 치르겠다고 하셨어요.

"일주일 후 영어단어 시험을 볼 테니까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세요."

외워야 할 영어단어는 100개. 1년 동안 배운 단어를 총정리하는 시험이었어요.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아이가 말했어요.


"나는 그냥 실컷 놀다가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해치울 거야. 5시간만 달달 외우면 충분할 테니까."

철우라는 아이였지요. 철우는 시장터 빵가게집 아들이었어요. 시장터 주변에는 꽤 잘사는 집들이 많았는데, 그 동네 사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로부터 무척이나 부러움을 사고 있었거든요.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지요. 저처럼 농사짓는 집 아이들은 평소 수업이 끝나서 집에 돌아오면 책가방을 던져 놓고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지만, 걔네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요.

놀고 싶으면 놀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어요. 저처럼 농사짓는 집 아이들은 닭, 돼지, 소, 염소 등 가축들 돌보랴 이것저것 농사 심부름하랴, 자유시간이 거의 없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시장터 아이들은 대개 공부도 잘했어요. 철우도 우리 반 우등생 중 한 명이었거든요. 그러니 영어단어 시험쯤이야 만만하게 보았던 거지요. 

저는 걱정이었어요. 철우는 시험 전날 5시간 동안 벼락치기로 외우면 된다지만 저는 그게 불가능했거든요. 집안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기 때문에 5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어요.

'그럼 앞으로 7일간 매일 10분씩 영어단어를 외워볼까?'

저는 종이를 길게 잘라 밥풀로 이어 붙이고, 그 위에 단어 100개를 깨알같이 썼어요. 그런 다음 종이를 필름처럼 돌돌 말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남들이 안 볼 때 슬쩍슬쩍 돌려보며 외웠지요. 주로 호젓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외웠어요.

드디어 일주일이 지났어요. 시험 보는 날 아침, 등굣길에 철우를 만났지요. 

"철우야. 영어단어 다 외웠니?"
"물론이지. 어제 5시간 동안 바짝 다 외워버렸어. 넌?"
"난 7일간 하루 10분씩밖에 공부 못했어."
"에게? 그럼 겨우 70분밖에 못했네? 그래 가지고서야 시험 잘 볼 수 있겠니?"

철우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어요. 그럴 만도 했지요. 철우는 5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외웠고, 저는 7일간 하루 10분씩, 그러니까 총 70분밖에 외우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과연 누가 시험을 잘 보았을까요? 

"에잇! 이번 시험은 망쳤어! 겨우 80점밖에 안 되다니!"

이렇게 소리친 아이는 바로 철우였답니다. 그럼 저는 몇 점 받았을까요? 와우, 대박! 100점이었어요!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제 머리가 철우보다 좋았기 때문일까요? 결코 아니지요. 해답은 ‘공부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투자했느냐’에 있어요. 

저는 시험 하루 전날 집중적으로 5시간을 공부한 철우와는 달리 10분이라는 적은 시간을 7일 동안 꾸준히 투자했어요. 즉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최고의 결과를 얻은 것이지요. 

저는 그때부터 아주 쉽게 단어를 외우게 됐어요. 책상 앞에 달라붙어 누런 연습장에 까맣게 써가며 외우는 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지금도 책을 보다가 생소한 단어와 만나면 쪽지나 달력 귀퉁이에 간단하게 메모해뒀다가 며칠 후 한 번, 일주일 후 한 번, 그리고 한 달쯤 후 또 한 번, 이렇게 쓱 훑어보는 방식으로 외우고 있어요. 그러면 대개 영구적으로 암기되거든요.

제가 보도국 경제부 기자로 일하던 시절, 미국 대학원으로 연수를 가기 위해 대학원 자격시험 격인 GRE를 쳐본 적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험을 위해 따로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영어독해와 문법, 단어 부분에서는 최상위 1%에 들었거든요. 물론 미국 학생들의 점수까지 포함해서였어요. 궁금하지 않나요? 어떻게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지? 사실 저도 그때까진 체험적으로만 그 효과를 알고 있을 뿐이었어요.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과학적 이유를 알게 됐지요.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라는 독일의 심리학자가 있어요. 그는 시험에 자주 실패하곤 했지요. 중요한 시험에서는 평소 시험 때보다 점수가 더 안 나오곤 했대요. 소문난 노력파였는데도 그랬다네요. 속상하고 억울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시험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답니다. 

에빙하우스는 나중에 심리학자가 된 뒤에도 이런 궁금증을 계속 품고 있었어요. 

"아무리 달달 외웠던 것도 왜 시험 보는 순간엔 깜빡하는 걸까?"

그는 스스로 무수한 암기시험을 치러가며 연구한 끝에 마침내 이런 결과를 얻었어요.


"사람들은 아무리 달달 암기했던 것이라도 1시간만 지나면 55%, 하루 지나면 67%, 한 달쯤 지나면 90%를 망각하게 된다."

이것이 에빙하우스가 발견한 이른바 ‘망각의 곡선’이에요. 이 곡선이 말해주듯 무엇이든 완벽하게 기억하려면 단번에 몰아서 외우는 건 큰 소용없다는 거예요. 한 달쯤 지나면 어차피 90%는 까먹게 되니까요.   

제가 철우보다 영어단어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었던 것도 하루 10분씩 며칠에 거쳐 수차례 반복해서 암기했기 때문이지요. 

에빙하우스는 전혀 생소한 단어 100개를 만들어놓고, 하루 동안 완벽하게 외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반복해야 하는지 실험해보았어요. 벼락치기를 했던 거예요.

 
'와! 무려 예순여덟 번이나 반복해서 외워야 겨우 완전히 암기되네!'

 
이번엔 하루 만에 벼락치기로 암기하는 대신, 3일에 걸쳐 암기해보았어요. 나누어 암기했더니 총 서른여덟 번 반복만으로도 완벽하게 암기되었답니다. 이제 나눠서 하는 게 노력과 시간이 훨씬 덜 든다는 것을 알겠지요? 이처럼 한꺼번에 암기하는 것보다 시간적 간격을 두고 나누어 암기했을 때 암기 효과가 더 좋아지는 현상을 ‘간격효과’라고 하지요. 

1981년 프랑스 심리학자 블룸(Kristine Bloom)과 슈엘(Thomas Shuell)도 비슷한 실험을 했어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프랑스 단어 20개를 외우도록 했지요.
첫 번째 그룹에게는 이렇게 말했어요.

"딱 한 번의 기회입니다. 30분간 열심히 암기해보세요."

두 번째 그룹에게는 달리 말했어요.

"3일간 하루 10분씩의 시간을 드릴게요. 열심히 암기해보세요."


수업이 끝난 직후 실시한 시험성적은 두 그룹 간에 별 차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4일 후 또 한 차례의 시험을 치르도록 했지요. 이번에는 결과가 달랐어요. 3일에 걸쳐 나눠 암기한 학생들은 15개를 기억한 반면, 30분간 집중적으로 한 번에 암기한 학생들은 겨우 11개만 기억해냈던 거예요. 

바릭(Harry Bahrick)과 펠프스(Elizabeth Phelps)라는 또 다른 심리학자들은 1987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어요. 스페인 단어 50개를 각각 A, B, C반으로 나눠 일고여덟 번씩 암기하도록 한 거예요. A반은 10분 간격으로 암기와 복습을 반복하도록 하고, B반은 하루 간격으로, C반은 30일 간격으로 암기와 복습을 되풀이하게 했어요.

암기 직후의 성적은 각 반 모두가 평균 100점에 가까웠지요. 하지만 8년 후에 다시 시험을 쳤더니 어마어마한 차이가 벌어졌어요. 10분 간격으로 암기했던 A반은 고작 6%, 하루 간격으로 암기했던 B반은 8%만 기억해냈답니다. 반면 30일 간격으로 암기한 C반 학생들은 놀랍게도 83%나 기억하고 있었대요. 놀랍지 않나요?

암기 간격을 더 크게 벌리면 결과가 어떨까요? 바릭과 동료학자들은 이번에는 사람들의 암기 간격을 14일, 28일, 56일로 활짝 늘려 보았대요. 암기 횟수도 열세 번에서 스물여섯 번으로 늘리고요. 그런 다음 1년 후, 2년 후, 3년 후, 그리고 5년 후 과연 얼마나 기억해내는지 추적해보았답니다. 결과는 예상 적중! 역시 암기 간격이 벌어질수록 성적도 좋아졌대요.

14일 간격으로 암기했던 사람들이 56일 간격으로 암기했던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성적을 거두려면 두 배나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거든요. 어떤가요? 이제 간격 효과를 분명히 알겠죠? 

벼락치기로 한꺼번에 왕창 외우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는 겁니다. 생각만큼 또 노력만큼 점수가 안 나온다는 거예요. 그보다는 시험 몇 주 전부터 미리 조금씩 나누어 외우면 훨씬 더 많은 것을, 훨씬 더 수월하게, 훨씬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요.

※ 본 연재는 <흔들리지 않는 공부 멘탈 만들기>(김상운/ 움직이는서재/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상운



매거진의 이전글 고전을 면치 못할 땐 고전을 펼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