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독서가의 세상 읽기
아버지는 삶을 망가뜨리는 위태로운 것들을 사랑했다. 술, 도박, 담배, 쉽게 타올라 금방 사그라드는 순간의 떨림과 사랑까지. 그 탓에 가정은 깨졌다. 아버지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누추한 일상,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10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지리산 피아골로 내려오기까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와 나는 피아골은커녕, 지리산과 아무 연고가 없다.
아버지 덕에 유년을 청계산 깊은 곳에서 보냈다. 사계절 모습을 바꾸는 산은 아름다웠고, 집 앞의 냇물은 계절이 바뀌어도 늘 맑았다. 십대의 삶이 끝났을 때, 청계산 생활도 끝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청계산을 떠나 도시의 삶을 시작했다.
도시의 나는 자주 배낭을 꾸렸다. 간단한 식량을 챙겨 조용한 산을 자주 찾았다. 물 맑은 계곡도 좋아했다. 내가 자주 찾은 곳은 지리산이었다. 구례구역에 내려 섬진강을 건너 구례읍과 들판을 넘어 지리산에 들 때면 자주 생각했다.
'여기서 살고 싶다.'
피아골에 처음 둥지를 튼 집은 마을 꼭대기, 산과 맞닿은 곳에 있었다. 집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맑은 계곡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청계산 시절, 아버지와 살던 집과 많이 비슷했다. 결국 나는 돌고 돌아 유년시절의 환경을 다시 찾아온 셈이다.
아버지에게 고마운 게 많다. 산골에서 키워줘서,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게 해줘서 고맙다. 물론 아버지가 의도한 일은 아닐 거다. 아버지는 단지 도박을 위해 집을 비웠을 뿐이고, 그래서 나 혼자 산골에 남은 게 불편의 팩트다. 그때는 분명 외로웠지만, 혼자 보낸 그 시간이 지금의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살아가는 일은, 특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수학이 아니어서,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1999년 4월 20일 발생한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 그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 2016년)는 삶의 복잡함과 육아의 어려움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우선, 책에 나오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수 클리볼드가 상담했던 한 여학생의 이야기다.
이 여학생은 학교에서 자주 점심을 굶었다. 같은 반 아이가 점심값을 계속 훔쳐갔기 때문이다. 계속 밥을 굶다 지쳐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빈 욕조에 던진 후 더 못 버틸 때까지 허리띠로 때렸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 문제를 네가 해결 못 하고 나한테 들고 오지 마라!"
여학생은 다음 날 갈퀴 손잡이를 들고 학교에 가서 자기 돈을 훔친 아이를 때렸다. 그 뒤에는 아무도 여학생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 학생이 수 클리볼드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버지가 저한테 준 최대의 도움이에요."
이 일화를 읽고 순간 머리가 띵했다. 아버지의 폭력, 학대가 자신의 독립심을 키운 '최대의 도움'이라고 말하는 학생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모의 일상 삶으로 예의범절, 교양, 도덕을 가르치고, 좋은 것을 보여주며,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가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육아에서 '투입 대비 산출'은 자주 기대를 빗나간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볼 때면 여러 부모들은 말한다.
"저 아이가 도대체 왜 저럴까?"
"어떤 나쁜 기운이 저 아이를 망치고 있는 걸까?"
자신 포함 15명의 사망자와 24명의 부상자를 낸 콜롬바인 총기난사 가해자 딜런의 엄마도 역시 같은 생각과 질문을 한다. 엄마는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같은 질문 속에서 살아간다.
딜런은 착하고, 예의 바르고, 똑똑한 아이였다. 그는 사랑, 화목, 배려, 종교적 믿음이 충만한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이런 딜런이 친구들과 선생님을 죽인 총기난사 범인이라니. 그의 엄마가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지금까지 이어오는 사정이 이해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니까.
딜런은 우울한 자신의 내면과 자살 충동을 부모에게까지 철저히 숨겼다. 부모가 안심하도록 연기를 한 셈이다. '착한 아이'여서 가능했고, 그래서 모두가 속았다. 부모는 사랑 때문에 아이의 속마음을 못 본다.
오늘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내일 저녁 약속을 잡거나 주말에 여행 예약을 하는 사례가 많다. 죽음이 그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통의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사람의 행복한 얼굴과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얼굴은 때로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래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이가 없는 내 가슴이 다 답답해진다.
"아이에 대한 맹목적 사랑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걱정스러운 행동을 보지 못하거나 나름대로 납득하고 넘어가려고 하기 쉽다. 문제의 아이가 ‘착한 아이’이고 부모와 사이가 좋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행동들을 또렷이 직시하고, 무언가를 감지했을 때 행동으로 옮기기는 무척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회가 닥칠 것이다."
"당연히 딜런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우리를 속였는지 수도 없이 생각해보았다. 자살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다수가 그러듯 딜런은 (자살과 학살) 계획을 세우면서 태연하게 지낼 수 있었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고 우리가 착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정말로 우울에서 벗어나고 있는 사람과 죽음을 생각하며 위안을 느끼는 사람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부모를 감쪽같이 속이는 아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부모와 어른들을 속이며 성장한다. 내 아이는 안 그럴 거라고? 천만의 말씀!
책에서는 거짓말 하는 아이를 어른들이 얼만큼 알아낼 수 있는지 연구한 결과가 짧게 나온다. 이 연구에 따르면 밀수범 적발 경험이 풍부한 세관 직원은 겨우 49%, 진실을 숨기는 범죄자를 많이 다뤄 본 경찰은 고작 41%만이 ‘거짓말 하는 아이’를 찾아냈다. 어른을 속이는 데 탁월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바로 어린이다.
딜런도 마찬가지다. 딜런은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돌에 시달렸지만 그를 상담한 전문가는 딜런에 대해 이런 평가서를 남겼다.
'전망 좋음. 딜런은 영리한 젊은이이고,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
이 평가서가 나오고 약 2개월 뒤, 딜런은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한다. 상담 전문가, 교사, 부모, 친구들을 모두 속였다. 심지어 경찰까지. 딜런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폭력 성향이 없는 아이’로 여겨졌다.
이런 걸 감안하면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말과 "좋은 가정에서 자랐으니 착한 아이겠지" 하는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가슴이 미어지고, 여러 믿음과 편견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나온다.
"사람은 가정에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십대의 경우에는 더더구나 그렇다. '양육'이란 한 사람이 접하는 모든 환경적 요소를 가리킨다."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되겠지 하는 소망은 얼마나 부질 없는가. 최선의 방식으로 길러도, 부모가 모르는 존재가 되는 게 바로 이 세상 모든 자식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부모만이 키운 존재가 아니어서 더욱 그럴 수도 있다.
내 아버지가 도박하러 떠나 며칠씩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때, 이웃의 어른들이 나를 보살폈다. 그 덕에 나는 오늘도 '고독의 시간'과 이웃의 소중함을 알려준 아버지에게 고마워하며 살아간다. 이웃이 나를 키웠다.
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