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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21. 2016

메뉴를 달달 외우는 웨이터에게 얻은 암기 비법

공부 멘탈 만들기

        



제가 간단한 질문 두 가지만 던져볼게요. 


1. 기말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어요. 시험과목은 모두 일곱 가지. 과목은 많고 시간은 촉박하지요. 하루에 한 과목씩 마무리 짓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하루에 1시간씩 여러 과목을 번갈아 공부하는 게 나을까요? 

2. 보검이와 유정이에게 각각 3시간의 공부시간이 주어졌어요. 보검이는 3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했고, 유정이는 50분간 공부하고, 10분씩 휴식시간을 가졌어요. 짧은 휴식시간 동안 누워있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산책도 했어요. 그럼 누가 더 시험에서 많은 것을 기억해냈을까요?

 
헷갈린다고요? 이에 대한 답은 오래전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이 알아냈어요. 어느 날 그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어요. 커피숍 웨이터들이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 걸 보고는 입이 딱 벌어졌지요.

'아니, 저럴 수가! 손님 20명의 주문 내용을 종이에 받아 적지 않고도 척척 외우다니!'

아마 모두 음식점에서 직원이 한꺼번에 여러 명의 주문을 쉽게 외는 걸 보았을 거예요. 어떤 직원은 무려 50명의 주문을 정확하게 기억해낸다니 정말 신기하지요?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바로 그다음에 벌어졌어요. 

경이로운 기억력을 발휘하던 웨이터들이 일단 주문을 받아 주방에 넘기고 나면 주문 내용을 거의 깡그리 잊어버리는 거예요. 또 주문한 음식을 틀리지 않고 손님 테이블에 놓자마자 그 손님에게 어떤 음식을 갖다 줬는지조차 가물가물한 거예요. 

'거 참, 아리송하기 짝이 없네. 주문 내용을 척척 기억할 때는 언제고, 주문 업무가 끝나자마자 언제 외웠느냐는 듯 싹 잊어버리다니!'

웨이터들은 임무를 완료하기 직전까지 어떻게 어마어마한 기억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심리학자 자이가르닉은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업무를 끝내지 않으면 마음이 긴장되기 마련인데, 그 때문에 잘 기억하게 되는 걸까?'

자이가르닉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실험을 해보았어요.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구슬을 꿰거나 화분을 그리는 일을 시켜본 거예요.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업무를 완료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지요. 반면 나머지 절반에게는 업무 수행 중에 갑자기 말을 걸거나 엉뚱한 일을 시켜서 업무를 끝내지 못하도록 방해했어요. 마침내 주어진 실험시간이 끝났어요. 자이가르닉은 사람들이 업무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질문해보았어요. 

"꿰던 구슬은 대략 몇 개쯤 됐죠?" 
"그리던 화분의 꽃잎 모양은 어떤 것이었죠?"

실험결과는 어땠을까요? 아무 방해 없이 업무를 완료한 사람들은 업무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어요. 웨이터들이 주문을 받아 주방에 넘겨버린 뒤 손을 탁탁 털고 나면 싹 잊어버리는 현상과 흡사했지요. 

반대로 업무 수행 중 방해를 받아 일을 끝까지 못한 사람들은 업무내용을 2배나 더 정확하게 기억해냈어요. 이 역시 웨이터들이 주방에 주문을 넘기기 직전까지 생생한 기억력을 발휘하는 것과 비슷했어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궁금하지요? 

'사람들은 하던 일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하면 어째서 기억을 잘하게 되는 거지?'

자이가르닉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일일이 분석해보았어요. 그러고는 이런 결론을 내렸지요. 

"하던 일을 끝마치지 않고 중간에서 멈추면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다. 못 마친 일이 마음에 걸려 뭔가 불편하고 찜찜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자연히 '심리적 긴장' 상태가 되고, 그러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는 일이 잊혀지지 않고 생생히 기억될 수밖에 없다."


시험 본 직후의 기분을 생각해보세요. 잘 푼 문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끙끙대다가 못 푼 문제는 머리에 꽉 차올라 마음을 괴롭히며 너무나도 생생히 기억되지 않나요?

시험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공부하던 내용을 완전히 마무리 짓는 것보다는 마무리 짓지 않고 중간에 갑자기 멈춰버리면 기억이 훨씬 더 잘 나지요. 이런 현상을 자이가르닉의 이름을 따서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불러요. 러시아 사람의 이름을 따서 발음이 좀 어려워요. 이제 제가 던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겠죠?

시험과목이 많을 땐 한 과목씩 완전히 마무리 지어가며 공부하는 것보다는 여러 과목을 각각 1시간 정도씩 번갈아 가며 공부하는 게 훨씬 잘 기억되지요. 마무리된 과목에 대해서는 두뇌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 과목은 개운하게 마무리됐어. 그러니까 일단 잊어버려도 좋아.'

또 보검이처럼 3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유정이처럼 50분간 공부하고 10분씩 휴식하는 게 더 나은 성적을 올리는 비결이에요. 왜냐하면 휴식 횟수가 많아지면 마무리 짓지 못한 횟수도 늘어나서 그만큼 생생하게 기억되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해보았더니 실제로 사람들은 맨 처음 본 것과 맨 나중에 본 것을 가장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공부하면서 휴식을 자주 취할수록 잘 기억되는 첫 부분과 끝부분도 많아지는 거예요. 반면 장시간 쉬지 않고 공부하면 아무리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무작정 몇 시간씩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보다 사이사이 자주 쉴수록 공부 내용이 제자리에 탁탁 들어가 저장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휴식을 취할 때는 하던 공부를 아무 미련 없이 갑자기 멈춰야 기억효과가 더 크답니다. 

'그래도 공부하던 내용을 다 마무리 짓고 쉬어야지.' 

이렇게 쉬는 건 기억효과를 높이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쉴 때는 산책, 스트레칭, 가벼운 운동, 음악감상 등 공부와는 전혀 다른 걸 하는 게 좋답니다. 단, TV 시청은 금물. TV 시청은 지극히 수동적인 두뇌 활동이기 때문이에요. 휴식이 끝난 다음에는 가급적 가장 취약한 과목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게 좋아요. 누구나 쉬고 난 후에는 뇌의 컨디션이 가장 좋기 때문이지요.


※ 본 연재는 <흔들리지 않는 공부 멘탈 만들기>(김상운/ 움직이는서재/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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