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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25. 2016

아이의 경험을 뺏는 부모가 되지 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아이를 키워라.


이건 내 초등학교 때 얘기다. 부모님이 급히 외출하시면서 나한테 연탄불을 맡기셨다. 혹시 연탄불을 갈아봤는가? 활활 타는 빨간 연탄을 아래쪽에 두고, 까만 새 연탄을 위로 올려야 불이 옮겨 붙는다. 그런데 난 반대로 놨다. 어떻게 되었을까? 새벽에 부모님이 오셨을 땐 방이 냉골이 됐다. 칭찬받을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그 후로 엄마는 아예 주말에 연탄 관리를 내게 맡기셨다. 그다음부턴 잘했냐고? 당연하다. 동네서 소문난 ‘연갈신’이 됐다. 연탄불 갈기의 신! 실패한 게 속상했던지라 나는 그 많은 연탄구멍을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혼자 열심히 연습했었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기회를 주셨을 때 잘 해냈다.

아이들은 어릴 적 작은 실패들을 통해 경험하면서 성장한다. 그 경험이 어른이 됐을 때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원동력이 된다. 아이들 어릴 때 작은 것부터 책임지게 하자. 미리미리 해주고, 아이들의 경험을 뺏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서너 살 때부터 동생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것부터 시켰다. 서너 살짜리가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보다 잘한다. 다섯 살이 되면 집 앞 슈퍼에서 간단한 장보기도 시켰다. 사올 물건들을 적어주면 처음엔 잘못 사오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같은 물건이라도 여러 회사 제품을 비교분석하며 사는 능력까지 생겼다. 유통기한도 알아서 살핀다. 아이들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생각보다 꼼꼼하다.

혹시 아이 실내화를 세탁해주는가? 앞으로는 아이가 스스로 세탁하게 해라.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겠냐고? 처음 하면 당연히 깨끗하지는 않다. 그런데 좀 더러우면 어떤가! 부모가 신을 것도 아닌데! 부모가 이런 배짱을 좀 가져야 한다. 사실, 아이들도 세탁이 잘됐는지 잘 안 됐는지를 잘 안다.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점점 깨끗이 세탁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설거지도 시켜라. "나는 우리 애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키웠어요"라고 자랑하는 부모가 있는데, 그건 자랑이 아니다. 설거지한다고 험하게 키우는 건가? 할 줄 알면서 안 하는 것과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건 다르다. 무슨 일이든 경험하게 해야 한다. 집은 경험 쌓는 최적의 장소다

내 친구 이야기다. 아들 녀석을 금지옥엽 키웠다. 체구도 작은 내 친구는 자기 덩치 두 배는 되는 아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자기는 옷 한 벌 못 사 입고 아끼면서 아들을 공부시켰다. 그런데 모범생이던 아들 녀석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혹독하게! 그때 친구는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는데, 고통의 시간들을 잘 견뎌냈다. 여러 일을 겪은 사람답게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이 주말마다 나가길래 "뭐 하러 다니냐?"고 물었더니 "예식장 주말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다녀요" 했단다. 친구는 너무 허탈해하며 내게 말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키우면 뭐하니? 다 키워놓으니 스스로 구정물에 손 담그고 다니는데. 차라리 집에서 설거지라도 시키고 했으면 덜 억울할 텐데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집에서 좀 시킬걸. 설거지 못한다고 구박은 안 받나 모르겠다."

이게 부모 마음이다.


뭐든 경험하게 해라. 나중에 설거지하러 다닐 걸 대비해서 시키라는 게 아니다. 분리수거도 시켜라. 처음엔 헷갈려서 시간이 좀 걸린다. 걱정 말고 시켜라. 몇 번만 하다 보면 눈감고도 잘한다.

부모가 할 일은 딱 한 가지다. 뭐든 엉터리로 해라. 아이 앞에서 일부러 동생 기저귀를 거꾸로 갈아보고, 분리수거도 플라스틱을 캔에, 종이를 비닐에 아무데나 막 집어넣어라. 그러면 아이가 막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부모를 아주 한심하게 쳐다보며 이렇게 외칠 것이다.

"제가 할게요!"

그리고 정말 똑 부러지게 잘 해낼 것이다. 그때 부모는 속으로 웃으면 된다.

"흐흐흐. 작전 성공이군."

물론 겉으로는 깜짝 놀라는 표정과 “정말 잘한다!”는 칭찬을 마구 해주면 된다.

※ 본 연재는 <말만 하는 부모, 상처받는 아이>(김은미, 서숙원/ 별글/ 2016)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은미, 서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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