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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04. 2016

플루오르가 지나간 흔적들

사이언스 하우스

         

나는 어릴 적부터 전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꼬마전구란 것을 처음 접했을 때, 늦은 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나만의 동굴을 만들어 꼬마전구에 불을 켜면 그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곤 했다. 꼬마전구에서 나오는 빛은 또 다른 세상에서의 태양이 되어 장난감 피겨(figure)(당시에는 아톰과 군인 모형이 대부분이었다)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것은 이불 안 세상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말도 했다. 


이후 조금 더 큰 전구를 갖게 되었지만, 건전지로는 그 전구에 불을 켤 수 없었다. 전류와 전압이 맞아야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중학교에 가서야 제대로 알게 됐고, 외삼촌에게 전선을 다루는 것을 배운 후 특이한 모양의 전구를 모으는 것은 학창 시절 취미였다. 진줏빛이 감도는 불투명 전구보다 투명한 전구를 좋아했는데, 투명한 전구 위에 유성매직으로 그림을 그려 성당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색이 비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 돋보기로 퍼진 빛과 색을 모으는 것에 흠뻑 빠져 있었고 전류가 약할 때에 주황빛이 힘겹게 깜박이며 타오르던 텅스텐 필라멘트의 빛을 보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진줏빛 불투명 전구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빛의 확산 때문에 이런 놀이들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전구를 공부하면서 ‘플루오르화수소산’으로 유리전구 내부를 뿌옇게 만들어 불투명한 전구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플루오르화수소산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빠 플루오르수소산이란 것이 대체 유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요? 유리를 녹인다면서요? 어떻게 얇은 전구의 모양을 해치지 않고 안쪽만 녹일 수 있죠?" 


플루오르화수소의 수용액이라고도 하지. '플루오린(fluorine)'이란 원소는 원자번호 9번, 원소기호는 ‘F’인 주기율표 17족 할로겐족 원소야.  




자! 처음 본 원소가 나오면 당황하지 말고 차근히 주기율표에서 그 원소의 종류와 그룹을 보면 돼. 그러면 대충 그 원소가 어떤 성질인지 짐작할 수 있지. 지난번에 할로겐족 원소에 대해 알려준 적 있지? 모든 원소는 가장 바깥 궤도에 전자 8개를 둔 18족 원소가 로망이기 때문에 전자 하나가 모자란 17족의 할로겐족 원소들은 전자 하나를 얻기 위해 반응하려는 성질을 많이 가지잖니. 1족 원소 나트륨(Na)과 17족 원소 염소(Cl)가 만나면 강렬하게 반응해서 소금을 만든 것처럼 말이야. 플루오린도 강한 반응성 때문에 원소 하나로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아. 보통 형석(CaF)이나 빙정석(NaAlF) 등 광물 형태로 존재하는데, 지각에 꽤 풍부하게 존재하는 원소임에도 플루오린을 추출해내기 쉽지 않아.  


형석 가루에 진한 황산을 넣었을 때 발생하는 플루오르화수소 기체를 냉각하여 액체 상태인 플루오르화수소에 플루오르화칼륨(KF)을 녹인 후 생성된 플루오르화수소칼륨(KHF2)을 전기분해 하여 플루오린을 추출해. 지난번에 알려줬던 염화나트륨(NaCl)을 순수한 나트륨과 염소로 분리하기 위해 전기분해 했던 것처럼 말이야. 


 

18세기 말 화학자들은 플루오린과 반응성이 비슷한 염소(Cl)를 염산에서 분리했지만, 반응성이 더 강한 플루오린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았어. 초기의 몇몇 화학자들은 플루오르화수소산 중독으로 사망하기도 했지. 강한 반응성은 인체에도 영향을 주는데, 이 플루오린이 바로 네가 흔하게 들었던 ‘불소(弗素)’란다. 치약에 들어 있는 성분이지. 플루오르화수소산은 ‘불산’이라고 부르는데, 무색의 자극성 액체란다. 쉽게 기화되지.


우리에게 친숙한 이 원소는 충치를 예방하는 불소치약의 성분이야. 치아를 약하게 연마시키는 역할을 해. 그래서 어린이 치약에는 불소성분이 들어 있지 않단다. 그리고 음식이 눌어붙지 않게 만든 프라이팬, 등산복에 사용하는 고어텍스(Gore-tex), 그리고 지금은 사용 금지된 에어컨이나 냉장고의 냉매로 사용되었던 프레온가스 등에 불소 성분이 있어. 네가 물었던 진줏빛 전구를 만든 것도 불소란다. 게다가 스마트폰에도 불소의 흔적이 있어.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사용되네요? 치약에 사용되는 건 배웠는데, 프라이팬에도 불소를 쓰나요?"


프라이팬과 관련한 불소 이야기는 화학자들에게 꽤 흥미로운 이야기야. '세렌디피티' 중 하나거든, 


"이야기해주세요. 저 그런 이야기 좋아해요"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지? 테팔(Tefal)은 프랑스의 조리 기구 및 주방 가전 제조회사 이름이야. 테팔이란 이름은 '테프론(teflon'‘과 '알루미늄(aluminum)'을 조합해서 만들었는데 알루미늄 프라이팬에 테프론을 입힌 기술에서 따온 것이지. 눌어붙지 않는 이유는 불소가 들어 있는 이 ‘테프론’이라는 물질 때문이란다. 



이 ‘테프론’은 일부러 만들려고 하다 발명된 것이 아니야. 1930년 초 미국의 GM이라는 회사가 냉장고에 사용할 효율적인 냉매를 개발하기 위해 듀퐁(Dupont)사와 합작회사를 만들었고, 책임자는 27세의 화학자 로이 플렁켓(Roy J. Plunkett)이었어.  


플렁켓 박사는 조수인 잭 리복(Jack Rebok)과 함께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Tetrafluoroethylene, TFE)(C2F4)을 염산(HCl)과 반응시키면 새로운 냉매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보관을 위해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TFE)을 실린더에 넣고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낮은 온도를 유지시켰어. 근데 나중에 실린더를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던 거야. 사라져버렸지. 처음에는 실린더가 새서 다 날아간 줄 알았는데 무게도 변화 없고 밸브가 막힌 것도 아니라서 밸브를 열고 흔들어보았더니, 작고 하얀 매끄러운 왁스코팅 조각이 나왔어.  


특정한 압력과 온도에서 고분자처럼 중합체가 만들어졌지. 하얀색 플라스틱 같은 물질이야. 이 고분자화 된 물질은 아주 흥미로운 성질을 지녔는데 거의 모든 용매에도 녹지 않고, 불에 타지도 않고, 썩지도 분해되지도 않았어. 이 불소수지(Poly Tetra Fluoro Ethylene, PTFE)를 최초로 합성하여 상용화한 상품명이 ‘테프론(TEFLON)’이야. 전기밥솥, 전기 프라이팬, 프라이팬, 전기 포트 등이 녹스는 것과 음식이 눌어붙는 걸 막기 위한 코팅제로 사용되고 있단다. 


"와~ 이런 이야기 재미있어요. 불소가 아주 유용하군요? 그런데 고분자가 정확히 뭐죠? 전에도 얼핏 고분자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그리고 테트라(tetra)는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어떤 원소죠?" 


고분자는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지금은 플라스틱이나 합성수지 같은 물질이라고만 알아둬. 그리고 테트라는…. 아! 이참에 숫자에 대해 알려줄게. 과학이나 수학을 배우다 보면 알겠지만 숫자를 나타내는 접두어를 알면 좋아. 영어에서 그 어원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예를 들면 자전거와 문어가 영어로 뭐지?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바이씨클(bicycle)! 그리고 옥토퍼스(octopus)죠! 요즘 초등생들 수준을 뭐로 보시고…." 


오~ 발음 좋은데? 그런데 bicycle에서 bi- (또는 di-)는 자전거 바퀴가 두 개이기 때문에 붙은 접두어야. 이외에도 bi-로 시작하는 영어 대부분이 비슷한 의미를 가졌지. 쌍안경(binoculars)도, 분자 두 개란 뜻의 다이머(Dimer)도 마찬가지야. Octopus, 8월(October)의 Oct-는 숫자 8을 의미해. 거의 대부분의 숫자로 사용하는 접두어 명칭(numerical prefixes)은 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온 것이 많아. 그리스어에서 온 숫자 접두어는 1부터 10까지 다음과 같아. 


1 - 모노 mon(o)-, 2 - 다이 di-, 3 - 트라이 tri-, 4 –테트라 tetra- 
5 - 펜타 pent(a)-, 6 - 헥사 hex(a)-, 7 - 헵타 hept(a)-, 8 –옥타 oct(a)- 
9 -엔나 ennea- , 10 - 데카 dec(a) 


여기서 테트라는 숫자 4를 의미해.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C2F4)은 네 개의 플루오린(F)과 에틸렌(C2)이 합쳐진 것이란다. 나중에 탄소화합물을 배우면서 왜 탄소(C) 두 개를 에틸렌이라 부르는지도 알게 될 거야. 이건 라틴어에서 온 말이거든. 


"세상에나, 과학을 공부하려면 전 세계의 말을 전부 알아야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런데 재미있네요. 몇 가지는 익숙한 단어들이 떠올라요. 펜타곤이나 트라이앵글이나 모노 같은 거요." 


플루오린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무시무시한 능력도 가졌단다. 플루오린을 설명할 때는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지. 가장 강하고, 가장 잘 안 녹고, 가장 잘 안 타고, 그리고 가장 잘 녹이기도 해. ‘불산’으로 불리는 플루오르화수소산은 단 몇 방울만으로 피부와 점막에 침투하여 뼈를 녹일 수 있어. 


"헉! 불산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단지 수소와 결합했을 뿐인데 완전 엄청난데요?" 


불산은 금과 백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금속을 녹여. 은이나 구리도 상온에서 서서히 녹아. 특히 이산화규소(SiO2)와 규산염은 플루오르화수소(HF)와 반응하면 사불화규소(SiF4)를 생성하면서 물이 생겨. 그러니까 유리나 석영은 플루오르화수소산에 쉽게 녹는단다. 아까 말했던 불투명 유리전구는 플루오르화수소산을 가해 내부를 거칠게 갈아내듯 녹인 거란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TV 같은 전자기기들이 휴대성과 디자인 때문에 점점 얇아지는 추세야. 1mm라도 더 줄이기 위해 전쟁 중이지. 얇아지는 과정에서 ‘불산’도 꽤 큰 몫을 해. 반도체 공정에서 불산을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겉면의 유리를 얇게 만드는 데에도 불산을 사용해. 특히 유리는 얇아질수록 밝기가 좋아져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야.  


스마트폰이나 TV화면을 디스플레이 패널(panel)이라고 하는데 이 디스플레이 패널 겉면은 유리야. 만약 제품을 분해하게 된다면 두 장의 유리가 합쳐서 하나의 판으로 되어 있는 1mm 미만 두께의 디스플레이 유리판이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유리 제조회사에서 전자회사에 보내는 유리판 한 장의 두께는 0.5~1mm 정도야. 두 장이 합쳐지면 두께가 최대 2mm지. 그래서 더 얇게 만들기 위해 디스플레이 제품공정이 모두 끝나면 1mm의 유리를 최대 0.2mm까지 깎아. 디스플레이 제품공정 전에 깎아내면 쉽게 깨지기 때문에 공정이 다 끝난 후에 깎는단다. 여러 장의 디스플레이 패널을 불산으로 샤워를 시키면 몇 시간 동안 불산이 유리면에 흐르면서 표면을 녹여 얇게 만들지.  


4HF + SiO2 → SiF4 + 2H2O


유리를 가공하는 화학식이야. 불산 용액에 유리 덩어리를 넣으면 불소(F)가 14족 규소(Si)와 반응해. 규소는 4개의 전자를 원하는데 불소 원자 4개가 결합력이 약한 수소(H)를 버리고 유리의 산소(O)까지 밀쳐내며 규소와 결합하게 되지. 반응이 끝나면 실리콘 테트라플루오라이드(SiF4)(silicon tetrafluoride) 덩어리와 물이 생성돼. 유리가 녹은 거지. 이렇게 얇게 깎은 디스플레이 패널이 휴대전화나 태블릿, 스마트워치 등에 쓰인단다. 반도체 공정에서도 많이 사용돼. 반도체도 유리와 같은 실리콘(Si)으로 만들지. 이 공정은 매우 위험해서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해. 그런데 구미에서도, 수도권 어느 공장에서도 불산 유출 사고가 있었지. 게다가 안산 시화공단 근처에서는 불산을 실은 차가 전복되기도 했었어. 몇 방울만 튀어도 뼈를 녹이는 강력한 물질인 데다가 상온에서는 기화되어버리니 확산을 막을 방법도 없어.


글 : 칼럼니스트 김병민, 김지희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플루오르가 지나간 흔적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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