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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10. 2016

소설가 방현희, '집밥' 만드는 남자가 필요했던 이유

                       

오랜 투병 끝에 엄마가 떠난 후 세상에 홀로 남은 30대 청년 형진. 그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오랜 주택을 '셰어하우스'로 변모시킨다. '오직 싱글' 그리고 '주3회 집밥을 제공하며, 주말에는 입주인들이 당번을 정하여 함께 요리하고 함께 먹을 것.' 입주 조건에 동의한 다섯 명의 입주자와 형진은 '집밥 먹는 셰어하우스'라는 독특한 공간 안에서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방현희 작가의 소설 <불운과 친해지는 법>의 줄거리다.

소설 속에는 각자의 불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덤덤하게 그려진다. 정규직 계약을 꿈꾸는 '민규', 해외 여행을 낙으로 삼는 '혜진', 부모님의 속박에서 벗어난 뮤지션 '정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수진', 이혼 후, 밤 근무 전문 수의사가 된 '호준'. 그리고 이들의 셰어하우스 '피코크 그린 쿨 하우스'의 주인장 '형진'.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이 곳에는 청춘들의 자화상과 다름 없는 다섯 인물들의 이야기가 형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족이란 만들어진 공동체일까. 만들어가는 공동체일까. 지난 10월 13일, 서울시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방현희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소외된 약자들이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필요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는 가족, 약자들의 연대에 대한 화두를 넌지시 건넨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시간 규정되어 왔던 '역할'에 대한 정면 돌파

Q <불운과 친해지는 법>으로 '다음, 작가의 발견 - 7인의 작가전'에 선정되고 '2016 부산국제영화제 'BOOK TO FILM' 부문에 진출하게 되셨습니다. 부산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는지 궁금하네요.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미처 몰랐던 커다란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1차 컨텐츠인 소설을 가지고 2차, 3차 콘텐츠까지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거든요. <불운과 친해지는 법>은 인도 영화사 측에서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Q 이 소설의 주공간인 '피코크 그린 쿨 하우스'는 일명 집밥 먹는 셰어하우스입니다.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부모와의 불화, 연애,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고민 등… 작품 속 인물들이 우리 시대 청춘들 제각각의 자화상 같았어요.

당사자, 그러니까 청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나눌 통로가 적어요. 저는 글을 쓸 수 있는 장이 확보된 작가이니까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었고요. 그런 기사를 봤어요. "약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도시 안의 약자들은 그 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아요. 열악한 환경에 굉장히 많이 노출이 되어 있고 그곳에서 살아가는데, 정작 그들의 삶에 주목하기란 힘들죠. 그들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약자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에서부터 이 소설이 시작된 거죠. 

Q 공간의 공유가 소통의 의미는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집밥을 나눠 먹는다'라는 설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독립된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생활을 필요로 하잖아요. 어떤 영역을 공유하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침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셰어하우스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소통을 위해 최소한의 장치로 집밥을 함께 나눠 먹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것도 비슷한 처지의 남자 ‘형진’이 밥을 해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들만의 공감대가 생길 테니까요.

저는 젊은이가 당연히 부모와 불화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독립다운 독립이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그러면 불화할 수가 없어요. 그 속에 편입하려는 것이죠. 이건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단코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항상 기성 세대에 반기를 들고 기성 세대가 이루어놓은 어떤 것을 뛰어 넘어야 하고 심지어는 부수고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현실이 그렇지 못한 거죠. 안타까워요.

Q 이런 설정은 곧 '필요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탄생하는 가족'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포착한 문제들을 소설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이 작품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역할'에 대한 것이었어요. 우리가 기존의 관습과 사회 문화적으로 강제되어진 것들이 있잖아요. 결혼 생활,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 같은 것이요. 사회 활동이 잘 맞지 않는 여자도 있고 반대로 집안일이 좋은 남자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역할에 의해 강제적으로 나뉘어진 부분에 대해 물음을 던져보고 싶었던 거예요. 역할보다는 타고난 자질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것을 더 키워줘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을 스스로 발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할 것이고요.

Q '피코크 그린 쿨 하우스'를 운영하고 집밥을 짓는 등 소설 속에서 그려진 형진의 역할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여자의 역할'이라고 규정되어 왔던 것들이죠. 여전히 존재하는 편협한 시선에 형진이란 인물로써 ‘이런 사람도 있다’라고 정면 돌파를 한 셈이에요.

누군가의 시선에서 보면 기준 미달인 사람일 수 있겠죠. 하지만 형진은 외부 활동보다 모성적인 역할을 더욱 잘할 수 있는 남자예요. 남의 이야기 들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애틋하게 여기고. 형진이 만나는 여자 ‘지우’는 혼자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자기 손으로 밥도 못 해먹는 여자잖아요. 가정적인 것에 결핍이 되어 있는, 타고나기를 남성적 자질이 더욱 강하게 타고난 여자. 이런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것에 맞닥뜨리면 이건 또 다른 문제가 될 거예요. 우리 생각이 그만큼 아직도 유연하지 않은 거고요. 

남자나 여자나 특정 역할을 강요받고 살아왔던 시기가 오래 됐어요. 아직도 사회적으로 자신에게 기대되는 것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왔던 환경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죠. 제가 이번에 형진이라는 남자 주인공을 내세운 것도 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아. 괜찮아. 이 영역에서 너희도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너희 영역을 새롭게 확보해나갈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자유로운 역할의 변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던지고 싶었어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진은 '지우'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했어요. 자신만의 기준과 사회적 기준 간의 괴리 때문에 고민을 하는 모습들이 작품 속에 자주 드러나는데요. 지나치게 비관하지도 않았지만, 또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그 캐릭터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 모습이 현실에 가까우니까요. 연애를 할 때는 끌려서 시작을 하지만, 페르소나라는 건 대부분 역할에 의한 것이거든요. 그러나 사실상 우리가 사랑받고 싶은 것은 내 민낯이에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 내가 가진 게 무엇이든 나의 민낯을 사랑해주길 바라서 사랑이라는 것을 하죠. 

그런데 이게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갈 때는 또 달라지는 거예요. 둘만 사랑할 때와는 다르죠. 타인의 시선에 노출이 되는 순간 문제는 발생하기 시작하고,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게 되는 거죠. 특히 남자는 항상 반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오니까요.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냐, 라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이고 상대와 나 사이에 신뢰가 있고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도 서로 간에 유연하게 역할을 바꿀 수 있는지의 문제가 첫 번째죠. 그런 유연성을 기른다면,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이 사회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소설가 방현희, '집밥' 만드는 남자가 필요했던 이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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