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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14. 2016

천명관 "숭고한 가치 찾기? 난 속된 이야기가 좋다"

             


"엉뚱한 장소에 엉뚱한 것이 있을 때 재밌는 일이 생긴다. 나는 좀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다. 엉뚱한 것들을 재밌어한다." 


소설가 천명관을 만났을 때 그가 가장 자주 말한 단어는 '엉뚱'이었다. 그러고 보니 무거움보다는 가벼움, 느림보다는 빠름, 엘리트보다는 대중에게 더 강한 관심을 뒀던 천명관에게 제법 어울리는 단어 같았다. 


2004년 <고래>로 데뷔. <유쾌한 하녀 마리사>(문학동네, 2007년) <고령화 가족>(문학동네, 2010년) <나의 삼촌 브루스 리>(예담, 2012년)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창비, 2014년) 등의 소설을 꾸준히 발표한 천명관. 지난 10월 말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예담, 2016년)란 신작 소설집을 발표했다. 제목이 암시하듯 인천 뒷골목의 건달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늘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별명이 붙는 작가답게, 그의 이번 작품도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흐른다. 인천에서 베트남, 영암에서 부산까지. 전국팔도, 아니 전 세계를 종행무진 하며 배경도 휙휙 바뀐다. 등장인물들은 '모범'을 제시하기 보다는 조금은 모자라고 우스꽝스런 캐릭터다. 음식점에 비유하자면 고급 이자카야보다는 부담없이 술잔 기울일 수 있는 포장마차라고나 할까. 


포장마차에서 그를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쉬운대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카페에서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시고, 닭똥집 대신 조각케익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스스로 "90년대 조폭 코미디의 유산"이라 밝힌 신작 소설 <이것이 남자의 인생이다>와 그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 문학은 카프카 아닌 조폭 코미디 유산" 


Q 지금 쓰는 이야기들이 모두 30대 때 만들어 둔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주로 그렇다. 그때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갈 때니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샘솟고. 그렇게 축적된 이야기들이 많았다. <고래>도 그렇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그렇고. 다 그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었다. 


Q 아직도 많이 쌓여 있나? 


이제 20년이 되니까 세월이 흘러 유효하지 않은 게 너무 많다. 이야기에 시의성도 있는 거니까. 이번 소설 배경도 90년대 중반이다. 


Q 한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선 이 소설을 "우리나라 90년대 조폭 코미디의 유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90년대 한국 영화에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 조폭 코미디의 전성기가 있었잖나. 이 소설은 그런 조폭 코미디 영화의 유산이다. 그래서 나한테 '경계인'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지. 문학에선 카프카의 유산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내 얘긴 싸구려 조폭 코미디의 유산 정도인 거다.


Q 이번 작품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했던 작품이다. 그 경험은 어땠나? 


카카오페이지는 원래 로맨스처럼 더 대중적인 장르의 웹소설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이다. 거기 이용자들에게는 어떤 아저씨가 여기 와서 뭘 쓰는데 "여기 와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런 느낌이었을 수도 있다.(웃음) 표지가 웹툰 '흡혈고딩 피만두'의 피만두를 닮았다고 한 의견도 있더라. 내가 보기엔 배우 김희원씨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Q 책 제목을 미국의 소울 가수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It's a man's world)'에서 가져왔다. 


소설 제목이 원래는 '만사형통'이었다. 고다르가 만든 동명의 영화('Tout va bien')에서 가져온 거다. 제목은 만사형통인데 일은 하나도 안 풀리는 역설적인 제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앞 부분에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가사로 에피그래프(비문)를 붙이면서, 이걸 제목으로 해도 재밌겠다 싶어서 현재 제목으로 가게 됐다. 


Q 본인 작품에 붙는 '영화같은 소설'이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내가 쓴 걸 남들은 그렇게 보는 구나' 한다. 그걸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한다. 영화적으로 느껴지는 건 시각적이고 선명하다는 건데.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많이 해선지, 장소가 어디고 어떤 인물이 나오는지 그런 것을 분명히 하는 훈련이 돼 있다. 


Q 배경으로 전라남도 영암이 등장했을 때 그 구체성이 확 다가오더라.(웃음) 


그 근처에 무안도 있고, 나주도 있지만, 그 중 영암이 제일 안 알려진 것 같았다. 영암이 충청도인지 전라도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주먹 세계에 대한 남자들 로망? 강한 남자 콤플렉스 때문" 


Q 주요 등장 인물인 조직폭력배 세계에 대해 따로 취재도 했었나? 


취재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남자들은 흔히 그런 얘길 많이 알고 있다. 건달에 대한 호기심이나 주먹 세계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Q 왜 그런 걸까? 


어릴 적 맞고 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지나가면 애들이 전부 벌벌 떨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한번씩 가졌나 보지. 그래서 생긴 강한 남자 콤플렉스가 아닐까 한다. 


Q 여성 독자들 입장에선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 전혀 공감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원래 그런 소설을 쓰잖나. 


Q 사랑 이야기가 중간중간 끼어 있다. 인간과 동물의 사랑(어린 건달 울트라와 35억 짜리 종마, 남회장과 호랑이), 형근과 루돌프의 동성 간의 사랑 같은 것들. 이 대목에선 무척 애틋한 감정이 느껴진다.


거친 깡패가 말을 좋아해서 사랑에 빠지는 아이러니가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소설은 말과 호랑이와 사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제목을 영화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같은 식으로 지을까 고민도 했었다. 


Q 울트라가 자기 집 앞마당에서 말을 기르는 장면이 굉장히 비현실적인 느낌을 줬다. 


굉장히 낯선 장면이다. 엉뚱한 장소에 엉뚱한 것이 있을 때 재밌는 일이 생긴다. 나는 좀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다. 엉뚱한 것들을 재밌어한다. 그러다가 헛발질도 많이 하고. 그러다 후회도 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Q 천 작가는 순문학 전통이 강한 한국문학에서 대안으로 많이 거론된다. 


내가? 설마…(웃음) 문단에서는 나를 대중작가라고 밑으로 본다. 나를 경계선 작가라고들 얘기 하는 건 "네 건 문학이 아냐"란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경계란 말이 그럴 듯해 보여도 실은 그런 의도가 있다. 그런데 내 책은 팔리지도 않는다. "나 대중작가야" 이랬으면 좋겠는데 사랑도 못 받는 대중작가란 게 말이 되나 싶다. 양쪽에서 사랑도 안 받으면서 경계에 선 작가라고 하니까 난처하다.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천명관 "숭고한 가치 찾기? 난 속된 이야기가 좋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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