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라는 심연

- 16장 자유의지

by 북다이제스터



과거 동양 철학에서 자유의지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인간의 삶에는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 곧 운명(運命)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사회적인 성공이나 재산, 수명 같은 건 모두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그 결과를 바꾸긴 어렵습니다.


반면 서양 사상은 자유의지를 인간 고유의 속성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플라톤 이래 서구 전통은 인간의 영혼과 마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며, 따라서 자연을 지배하고 역사를 만들어갈 특권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따라 개인은 이성적으로 선악을 분별하고 책임을 지는 주체로 간주되었고, 이러한 전제가 곧 인권 개념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근대 서구 사상의 문을 연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정신(영혼)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의심할 수 없는 공리(公理)로 삼았습니다. “(1)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 (2) 결정론에 지배되는 존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3) 물질적인 존재는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 (4) 따라서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데카르트의 말한 ‘나’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는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주체의 확실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는 의식과 대립하는 또 다른 마음 영역인 무의식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무의식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닙니다. 무의식은 의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내 말을 듣지 않는 ‘나’입니다. 데카르트는 우리 안에 있으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검은 타이를 맨 여인>(1917)



그림 속 아몬드 모양의 눈과 길게 늘인 얼굴은 모딜리아니가 아프리카 미술에서 받아들인 형식입니다. 정면을 향하면서도 약간 기울어진 얼굴,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어깨는 어린 시절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본 보티첼리 작품의 영향입니다.


모딜리아니는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을 재현하기보다, 그 사람의 내면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라고 묻자, 그는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리겠다”고 답했습니다.



칸트 역시 인간을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 곧 스스로 도덕법칙을 세우고 이를 따르는 자율적인 주체로 보았습니다. 도덕은 외부가 아니라 주체 내부의 순수한 자유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이나 충동, 권위 있는 문헌, 부모의 요구, 사회 관습, 국가의 법률 등 우리 바깥의 그 어떤 것도 행위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칸트는 이런 힘들을 모두 “의지를 타율적으로 규정하는 요소”로 평가 절하했습니다. 이런 외적인 원인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칸트의 자율성 개념에는 중요한 조건이 붙습니다. ‘~하고 싶다면, ~해야 한다’라는 조건부 명령, 즉 가언(假言)명령은 도덕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연민이나 측은지심 때문에 거지에게 돈을 준다면, 그 행위는 감정이라는 조건에 의존합니다. 칸트는 이를 도덕적으로 의미 없다고 보았습니다. 감정은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우며, 합리적인 선택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칸트의 윤리학에서 도덕의 근거는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이성입니다.


칸트가 제시한 도덕법칙은 ‘너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조건 없는 정언(定言)명령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 여기서 도덕 판단의 주체인 ‘나’는 이성에 따라 스스로 도덕법칙을 세우고, 스스로 그 법칙을 따릅니다. 이 명령은 외부에서 강요된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하는 명령입니다. 도덕은 타율이 아닌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깨닫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칸트의 도덕철학은 자유의지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사실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던 칸트는, 모든 것이 신의 섭리나 자연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결정되는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유의지를 인간이 알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가정하며, 인간이 신이나 자연법칙에 지배받지 않고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주체라고 모순된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 의지가 외부 원인과 무관하다면, 그 의지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요? 내 의지가 온전히 나에게서 비롯된다면, 그 ‘나’는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실제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의도할 때 떠오르는 생각과 동기는 언제나 외부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자유의지는 실재한다기보다, 그의 도덕 체계를 유지하고자 설정한 가정에 가깝습니다.


헤겔에 따르면, 타인과 무관한 고립된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더구나 사회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특정 사회나 국가의 구성원으로 태어나, 그 안에서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채 내 '의지'가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칸트가 말한 자율성은 결국 내면화된 타율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회가 내 안에 심어놓은 명령을 자신의 명령으로 착각한 상태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의 심연’이라는 문제입니다. 칸트를 통해 우리는 자유의지가 얼마나 규명하기 어려운 문제인지, 그리고 그 개념이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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