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아이

- 2장 가족과 식인

by 북다이제스터


2장 가족과 식인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곳에 속해 있고

자신이 사는 곳에 살기에

전체를 볼 수 없다.”

- 이사야 벌린





영화 <미나리>(2020)는 전통적인 가족을 주제로, 따뜻한 가족애를 잘 그려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굳게 믿는 가족에 대한 견해도 ‘전통’이 아닌 현시대의 상호주관적인 산물일 수 있습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봅(1917~2012)은 “통상 낡은 듯 보이고 실제로 낡았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은 그 기원을 따져 보면 대개 최근에 만들어졌고, 종종 발명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관례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 나타나면 쉽게 바뀝니다. 반면 전통은 불편하고 시대에 뒤처져도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통은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변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전통을 강조하고 보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조상께 올리는 제사가 그렇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윤회봉사(輪迴奉祀)나 분할봉사(分割奉祀)라는 방식으로 차남이나 딸도 제사를 맡았습니다. ‘윤회’는 장남과 차남이 아버지 제사를 해마다 번갈아 지내는 걸 의미합니다. ‘분할’은 아들이 아버지 제사를, 딸이 어머니 제사를 맡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조선은 중국과 같은 부계 중심 가족 제도로 바뀌면서, 장남이 모든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자리 잡았습니다.


‘가족’이라는 전통도 근대에 만들어진 산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19세기 이르러서야 양반층을 제외한 서민들이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17세기 이전에는 노비가 사회 구성원의 50~80퍼센트를 차지해 가족을 이루기 어려웠고, 있다 해도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1663년의 호적에 따르면, 서울 인구의 75퍼센트가 노비였습니다. 17세기말 호적 조사에서도 자신을 양반이라 여긴 사람은 전체 인구의 9~16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역사학자 제임스 팔레(1934~2006) 같은 서양 학자들은 조선을 ‘노예제 사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이 보편화된 건 20세기 들어서입니다. 이렇게 근대 이후 가족 조직이 강화된 사실은 통념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족 중심 문화는 근대 이전의 ‘전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근대화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가정의 ‘소중한 아이’라는 개념 역시 가족의 의미가 변할 때마다 함께 달라져왔습니다. 근대 이전 어른들은 아이를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로마 시대에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상당히 멀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타인보다 더 가깝지도, 더 멀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는 사랑받거나 귀여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하인들이 돌보고, 유모에게 말을 배웠습니다.


오랫동안 아동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닌 불완전한 존재로, 천사가 아닌 악의 상징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426)에서 아이를 “무지하고 쉽게 흥분하며 변덕스러운 작은 인간”이라 묘사했습니다. 아이의 타락한 본성을 바로잡으려면 위협과 회초리, 체벌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아이를 부드럽게 대하면 타락한다’는 경고도 있었습니다. 교수형을 선고받은 어느 청년은 어릴 적 어머니가 자신을 제대로 벌주지 않았다며 어머니의 귀를 뽑았다는 이야기도 회자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가장 아낀 자식이 가장 나쁜 사람이 된다’는 속담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노예나 업둥이를 집에 두고 ‘기르기’를 즐겼습니다. 이런 ‘귀염둥이’는 장난감이나 성적 노리개 역할을 했습니다. 지위 높은 사람이 귀염둥이를 하나쯤 ‘기르는’ 건 죄가 아니었고, 오히려 존경받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도 부모는 자신 아기를 장난감이나 기계처럼 대했습니다. 아기는 인격 없는 작은 인간으로, 어른들 수중에 놓인 귀여운 ‘장난감’처럼 취급받았습니다.


인간은 시각에 민감해,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쉽게 끌립니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마지막 몇 주 동안 피부 아래 지방을 축적해 통통한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미숙아에게는 보통 1킬로그램쯤 되는 이 지방이 없습니다. 이 여분의 지방은 출산 시 산모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고릴라 새끼는 거의 지방 없이 태어나 이후 지방을 축적하며 몸무게가 늘어납니다. 인간 아기는 왜 미리 지방을 지닌 채 태어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생존에 꼭 필요한 지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자는 아기 뇌 성장에 지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태어난 뒤 뇌에 많은 지방이 필요하다면, 모유에 지방이 풍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엄마 젖의 지방 함유량은 낮습니다. 인류학자 사라 블래퍼 르디(1946~ )는 아기가 귀여워 보이기 위해 피하 지방을 축적한다고 보았습니다. 둥근 볼과 엉덩이, 통통한 팔다리를 가진 토실토실하고 달덩이 같은 아기 모습은 어른 눈을 사로잡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아기 인형’이 토실토실한 모습으로 부모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시기가 지나면, 곧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는 자식을 더 이상 귀여운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여전히 기계처럼 대했습니다. 규율을 매우 엄격히 적용한 나머지 자식들은 자신 감정을 표현하거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중세 유럽에는 ‘아동’(兒童)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이 개념은 지난 200~300년 사이에 우리에게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인간을 단지 아기와 성인, 두 시기로만 구분했습니다. 회화 속 아이들은 ‘작은 어른’처럼 묘사되며, 어른과 같은 옷을 입고 어른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욕설이나 음담패설을 해도 혼나지 않았고, 도박을 해도 제지받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단지 ‘작은 어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아이들 2만여 명이 십자군 원정에 나선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열한 살이면 전쟁에 나갔고, 장교를 포함해 가장 나이 많은 군인도 18세에 불과했습니다. 일곱 살이면 직업을 가져야 할 나이로 여겨졌고, 남자아이는 대략 14세, 여자아이는 12세면 결혼했습니다.


근대 이전 유럽인은 아이에게 순수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17세기 프랑스 궁정에 여섯 살 난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궁정 귀부인들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장난삼아 아이에게 임신했다고 진지하게 농담했습니다. 물론 아이는 강하게 부정하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며칠 뒤, 아이가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 침대에 누군가 몰래 가져다 놓은 갓난아기를 발견하고 크게 놀랐습니다. 아이는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성모 마리아와 나밖에 없겠지. 난 고통도 없었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궁정에 퍼졌고, 왕비는 아이를 위로하며 갓난아기의 대모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갓난아기의 아버지가 누구냐 묻자, 아이는 잠시 생각한 뒤 “왕이나 기슈 백작”이라 답했습니다. “그들이 내게 뽀뽀해 준 유일한 남자들이니까”라는 말이 아이가 내세운 이유였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장난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순수함이 손상될까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농담이 아이 양육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두 세기 전 유럽 인들이 지금처럼 아이를 대했다고 가정해선 안 됩니다. 이를 보여주는 예가 18세기 프랑스 판본 ‘동화’인 『빨강 모자 소녀』입니다. 이 동화는 분명 아이에게 숲 속에서 늑대나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조심하라는 교훈을 주고자 회자되었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이를 재우며 이런 ‘동화’를 들려주진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과거의 사고방식은 지금과 크게 달랐습니다.


옛날 한 소녀가 엄마 심부름으로 할머니에게 빵과 우유를 가져가던 중 숲 속에서 늑대를 만났습니다. 늑대가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집으로요.”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늑대가 “어떤 길로 가느냐? 핀의 길이냐, 바늘의 길이냐?”고 묻자,

소녀는 “바늘의 길이요”라고 답했습니다.

늑대는 핀의 길을 따라 먼저 할머니 집에 도착했습니다. 늑대는 할머니를 죽인 뒤 피는 병에 담고 살은 썰어서 접시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 잠옷을 입고 침대에서 소녀를 기다렸습니다.

소녀가 문을 똑똑 두드리자 늑대가 말했습니다.

“들어오렴, 얘야.”

소녀는 반갑게 인사하며 빵과 우유를 내밀었습니다.

“너도 뭐 좀 먹으렴. 찬장에 고기와 포도주가 있단다.”

소녀는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때 작은 고양이 나타나 속삭였습니다.

“더러운 년! 할머니 살을 먹고 피를 마시다니!”

그러자 늑대가 말했습니다. “옷을 벗고 내 옆으로 오렴.”

소녀는 늑대에게 물어봤습니다. “앞치마는 어디에 둘까요?”

“불 속에 넣어라. 더 이상 필요 없을 테니.”

코르셋, 치마, 페티코트, 스타킹을 벗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했고, 늑대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습니다. “불 속에 넣어라. 더 이상 필요 없을 테니.”

소녀가 침대에 들어가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왜 이렇게 털이 많아요?”

“따뜻하기 위해서란다, 얘야.”

“할머니 어깨는 왜 이렇게 넓어요?”

“나무를 잘 옮기기 위해서란다, 얘야.”

“손톱이 왜 이렇게 길어요?”

“가려운 데를 잘 긁기 위해서란다, 얘야.”

“할머니 이빨은 왜 이렇게 커요?”

“너를 잘 먹기 위해서란다, 얘야.”

그리고 늑대는 소녀를 잡아먹었습니다.


『빨강 모자 소녀』가 채록된 판본 35개 중 절반 이상은 소녀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결말로 끝납니다. 사실 소녀는 그런 운명을 겪을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엄마 말을 안 들은 것도 아닙니다. 이 동화가 전하는 교훈은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이 아닙니다. 설명할 수 없는 비정한 재앙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재앙은 우연히 닥치며, 흑사병처럼 예측도 설명도 할 수 없습니다. 재앙은 단지 견뎌야 할 운명일 따름입니다.


『빨강 모자 소녀』 같은 당시 ‘동화’들은 우리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잠자는 미녀』 초판에서 공주는 기혼자인 왕자에게 겁탈당한 채 잠든 상태로 아기들을 낳습니다. 아기들이 젖을 빨다가 공주를 깨웁니다. 동화는 왕자의 장모인 식인 마녀가 왕자의 사생아들을 잡아먹으려는 두 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신데렐라』에선 여주인공이 자신과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를 피해 하녀가 됩니다. 다른 판본에서는 사악한 계모가 신데렐라를 화덕에 밀어 넣으려다 실수로 심술궂은 자기 딸을 재로 만듭니다. 『헨젤과 그레텔』에선 주인공이 식인귀에게 자식들의 목을 가르도록 요청합니다. 『미녀와 야수』에선 남편이 신부들을 계속 잡아먹습니다. 『세 마리의 개』에선 여동생이 오빠 침대에 대못을 숨겨 오빠를 죽입니다. 『엄마는 나를 죽였고 아빠는 나를 먹었다』에서는 엄마가 아들을 토막 내 냄비 요리로 만들고, 딸이 그 음식을 아빠에게 차려냅니다.


거의 모든 ‘동화’는 착한 일을 해도 반드시 보상을 받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을 쉽게 믿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은 고되며, 이웃의 이타심을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지키려면 명석함과 재치가 필요하며, 윤리적인 행동이 항상 유용한 건 아님을 보여줍니다.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순수함이 있다고 믿지 않았고, 어른들 세계의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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