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르타스

- 14장 자유

by 북다이제스터



14장 자유




“자유가 개인을 고립시키고,

불안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 에리히 프롬





현대 사회에서 ‘자유’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시민 사회가 중시하는 자유는 바로 이러한 ‘개인의 자유’를 말합니다.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논쟁에서 자유를 근거로 삼으면, 결코 지지 않을 가장 안전한 방어 논리가 됩니다.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누구도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의 가치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합니다. 루소는 자유를 자연이 인간에게 준 본질적인 선물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재산으로도 자유를 보상할 수 없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유를 포기하는 건 자연과 이성을 거스르는 일”이라며, 그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유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보편적인 단어에 각자의 의미를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에게 자유는 재산권이고, 다른 이에게는 국가를 넘어서는 무정부 상태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할 사회적인 조건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유’라는 보편 개념에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같은 ‘자유’를 말하지만, 각자 다른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 문명은 자유를 높이 평가한 사회였습니다. 자유를 뜻하는 그리스어 ‘엘레우테리아’(eleutheria)는 당시 다른 고대 근동 언어나 히브리어로도 번역할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리스 이외 대부분의 고대 문명사회에서는 개인이 집단에 억압되어 있어,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리스어 엘레우테리아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리베르타스’(libertas)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에도 쓰인 단어입니다. 자유를 ‘liberty’로 해석하면 억압에서 벗어난 상태, 곧 ‘얽매이지 않은 자유’를 뜻합니다. 오늘날에도 가령 “권력에 얽매이지 않는다”라는 표현 속에 그 의미가 남아 있습니다.


반면 ‘freedom’은 인간에게 ‘본래 부여된 권리’, 즉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토크빌은 liberty를 ‘시민적·공민적 자유’로, freedom을 ‘자연적 자유’로 구분했습니다. 이런 구분으로 비추어 보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시민적·공민적 자유’인 liberty보다, ‘자연적 자유’인 freedom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의 자유는 현대와 달리 ‘시민적·공민적 자유’를 의미했습니다. 폭정과 억압을 막기 위해 시민이 통치에 직접 참여하는 능력과 의무가 곧 참된 자유(liberty)였습니다. 민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의견을 밝히며, 정치적인 쟁점을 판단하고 투표하는 등 자치적으로 운영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특권과 의무가 자유였습니다. 행정관으로 봉사하거나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모든 활동이 자유의 실천이었습니다.


아테네 민주정은 이러한 관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아테네 정치는 모든 시민이 직접 참여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대의제나 공무원제, 관료제가 없었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회와 법정이 정치의 중심이었습니다. 심지어 최고 행정관도 선거가 아니라 시민 가운데 추첨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5만 명 가령의 아테네 남성 시민 중 3분의 2 가량이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민회 의원으로 복무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느 아테네사 연구자는 민회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민회는 거의 모든 사안을 다루었고, 시민은 원한다면 언제든 참석해 토론하고 수정안을 제안하며 표결을 행사했다. 전쟁과 평화, 과세, 종교의식의 규칙, 징병, 군사비 조달, 공사, 조약, 외교 협상 등 모든 영역이 논의의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자유는 단순한 개인의 권리를 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 참여하고 책임을 다하는 일이었습니다. 동료 시민과 함께 ‘공동체를 위한 선’(common good)을 고민하며, 정치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일이 곧 자유(liberty)였습니다. 따라서 시민은 자치를 위해 바람직한 인성이나 시민 소양, 즉 공적인 사안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공동체 소속감을 키우며,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갖춰야 했습니다. 자유는 자치를 전제로 하며, 자치는 시민의 덕성에 달려있다는 인식이 바로 고대 자유사상[liberty]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 ‘파이데이아’(paideia), 곧 소양 교육은 폭정을 막고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개인이 교육을 통해 절제와 지혜, 중용, 정의 같은 덕목을 함양할 때 자치가 실현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자치를 지향하는 자유 시민에게 ‘교양’(liberal arts) 교육이 필수였습니다. 교양학은 기술이나 돈벌이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자유 시민에게 필요한 판단력과 인격을 형성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학교가 오랫동안 실용 학문만을 가르쳐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교육은 예외에 속했습니다. 정치학자 페트릭 데닌(1964~ )은 “이름 자체에 자유민을 기른다는 뜻이 담긴 교양 교육을, 우리가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 사람들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현 상황을 고대 사회와 비교해 안타까워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자 앨런 블룸(1930~92)은 돈벌이를 위한 교육의 대표격인 MBA(경영학 석사)를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 ‘재앙’이라 혹평했습니다.


“우리는 한때 ‘노예 교육’이라 여겼던 학문을 선호한다. 오로지 돈벌이와 직업교육에 몰두하며, 한때 ‘시민’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던 이들이 받던 교육에 집착하고 있다. 우리는 무지했던 선조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지만, 지난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만 받았던 교육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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