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노예 2

잔혹동화

by 김케빈

"에이 거짓말. 그냥 하는 소리겠지. 어떻게 회사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겠어? 가족을 위해서 잠도 줄여가면서, 아이들 보고 싶은데 그것도 못 봐가면서 힘들게 일했던 나를 어떻게 그렇게 내칠 수가 있겠어?"


곰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베짱이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히 베짱이는 거짓말을 하는 거일꺼야. 암 그렇고말고.'


곰은 그렇게 다짐하면서 인사과로 가서 참새를 찾았다.


"저. 참새야. 그...혹시 정리해고 명단 좀 볼 수 있어?"


"아. 왜? 안 돼. 부장님이 보여주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사우론 상무님 지시라고. 걸리면 너나 나나 모가지야."


참새가 째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곰은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했다.


"너가 말했던 비싼 술집, 거기 가서 술 사줄테니까, 제발, 응?"


곰의 말에 참새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말했다.


"일단..."


참새가 속삭이듯 째진 목소리로 무어라고 말했다. 곰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아아...."


곰은 밥을 먹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곰.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옆에 팬더가 물어보았다. 하지만 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여우는 다그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인데. 한 번 털어놔봐. 내가 비밀 지켜줄게."


곰은 잠시 머뭇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내가 잘릴 수도 있대."


"무슨 말이야? 니가 왜 잘려?"


"그게...옆 부서에 참새 말로는 내가 이번 정리해고 때 잘린대. 집에 꽃같은 아내랑 두 자식새끼 먹여살려야 되는데 잘리면 어떡하라고 어흐흐흑...회사 월급이 끊어지면 어떡해...아직 집 대출금이랑 카드 할부금도 많이 남았는데 허어엉...."


"야. 설마. 그렇게 열심히 일한 너인데, 그렇게 쉽게 자르겠어? 아마 잘 될거야. 정년퇴직 해야지. 같이. 안 그래?"


"그래..."


"얌마. 그리고, 퇴직하면 치킨집이라도 차려서 같이 하면 되지 뭘 그러냐?"


"그, 그런가?"


곰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밥이나 얼른 먹어. 혹시라도 좀 더 열심히 일하면 안자를지도 모르니까."


"그래..."


곰은 우울한 표정으로 밥을 퍼 넣었다.


"아...."


곰은 멍한 표정으로 사무실 한 켠에 있는 휴게실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동물전자에 입사를 하고서부터, 신입사원일 때를 거쳐서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입사를 하고서, 신입사원인 동기들, 그리고 하나둘씩 승진하거나, 아니면 회사 일에 지쳐서 퇴사를 선택했던 동료들이 떠나갔다.


'가지마. 조금 더 버텨보자.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거야.'


'곰...미안하지만 우리는 우리 행복을 찾아 떠날거야. 이러다가 퇴직하기 전에 자살하겠어. 돈 좀 못벌어도 좋아. 우리는 동물답게 살고싶어. 우릴 잡지마.


누군가는, 대기업인 동물전자에서 일했던 커리어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에 경력직으로 갔고, 누군가는 사업을 열기도 했었다.


중소기업을 다니던 사람들은 대기업의 살인적인 업무강도가 줄었으니 편하다고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업 연봉을 받는 곰과는 점점 생활 격차가 벌어져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몇 명은 돈을 빌리기 위해서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어서, 회사에서 동기로 만아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지만, 결국에는 절교하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 곰은 살아남기 위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회사에서 요구하는 인사고과를 비롯한 시험들을 턱걸이로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통과하면서, 낮에는 회사일에 치이고, 밤에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좋은 고과를 받고, 승진 시험에 합격해서 승진하기 위해 가족들을 돌봐가며 치열하게 회사에서 요구하는 각종 자격증, 영어시험 공부를 했다.


입사한 200명의 동기들 중 180명이 살인적인 업무 강도 때문에 그만두었다. 업계에서 가장 급여가 센 곳이었지만, 그만큼 업무 강도는 살인적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 1,2년을 버티지 못했다.


곰은 7년동안 성실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회사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면 언젠가 정년퇴직이라는 꿈같은 해피엔딩이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회사를 다녀왔다.


회사 동료들이 제네시스를 뽑으니까 따라서 뽑았고, 술과 외식, 접대 자리 등 회사에서 하는 행사란 행사는 빠짐없이 참석해서, 상사들의 시중을, 좋은 부서로 간 동기들의 시중을 끊임없이 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승진을 하고 좋은 고과를 받는 건 동기인 두더지였다.


두더지는 라인도 잘 타서 승진도 곰보다 빠르게 했고, 남의 성과를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때때로는 밥을 얻어먹고, 곰에게 남의 성과를 낚아채, 곰이 발표를 하도록 돕기도 했었다.


어느새 두더지는 회사 내에 작은 세력까지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약 잘못해서 잘린다면, 잘못해서 잘린다면...끝이었기에 곰은 알면서도 끊임없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여우와 밥을 먹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하고, 부장에게 혼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참새에게 갔다.


참새는 주위의 감시카메라를 보더니 말했다.


"일단 회사 밖으로 나가자."


곰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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