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화
"자."
참새는 곰에게 문서 하나를 내밀었다.
"야, 야. 이걸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어떻게 해?"
"아. 괜찮아. 우리 아버지가 동물전자 대주주이자 사외임원이어서, 이정도 쯤은 무마할 수 있어. 동기 좋다는 게 뭐 별 거 있냐? 나는 평소에는 비싸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 얻어먹어서 좋고, 너는 니가 잘리냐, 남냐 그걸 알 수 있으니까 좋고. 상부상조 아냐?"
"그, 그렇지."
곰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부럽네. 나도 저런 금수저였으면 좋았을텐데.'
"뭐 해? 빨리 보기나 해."
곰은 불안한 표정으로 종이를 훑었다. 그리고 중간 쯤, 자기 부서의 정리해고자 명단에 자신이 있는 걸 보고, 순식간에 얼굴이 검게 죽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거, 거짓말이지?"
리스트에는 영업부의 차장으로 진급하는 두더지와, 인사과로 부서이동이 된 여우, 그리고 정리해고 대상자로 되어 있는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말도 안 돼. 베짱이! 걔는 왜 안짤린 거야? 회사 첫날부터 회사를 빨리 때려치는 게 목표라고 떠들었던,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라도 하나도 없는 그런 놈이 왜 안잘리고 있냐고!"
"아. 걔는 동물전자 CEO랑 친해서 안짤렸어. 인사고과 보면 다른 사원들은 극혐이라고하는데 능력 하나는 겁나 좋아서 자기네 부서 과장이나 부장한테 보고하는 게 아니라 CEO한테 다이렉트로 올리는 미친짓을 하는 놈이야. 하늘같은 사장님한테 하는 거 보면 완전 또라이가 따로없지. 처음에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금은 비서실로 갔으니까. 사우론 사장님이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 거 알지?"
곰은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서는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야. 참새야. 나 어떻게 살려줄 수 없냐? 이름이라도 좀 빼줄 수 없어?"
"이미 사루만 상무님한테 올라간 걸 일개 과장인 내가 무슨 수로 건드려."
"그...하지만, 너희 아버지 빽도 있잖아."
"너부터 그렇게 챙겨주기 시작하면, 잘리기 싫다고 징징대는 놈들 다 끌어안아야 할거야. 그렇게 무능한 놈들로 회사가 채워지잖아, 그럼 회사가 망해요. 너네 살겠다고, 회사 전체를 망해서 일 잘하고 있던 놈들까지 몽땅 실업자 신세가 된다고. 내가 그러니까 어떻게 해 줄 수 없다는 거야. 회사에서 퇴직 지원 프로그램 한 세 달 정도 하니까, 그거나 내일부터 들으러 다녀. 너 말고도 정리해고 리스트에 올라간 놈들이 자기 좀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나 또 술약속 가야 돼. 택시값 내줄테니까 집에 빨리 들어가기나 해."
곰은 우울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곰이 가자 참새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시발. 아빠. 내가 이 꼬라지 보기 싫어서 인사과 가기 싫고, 대충 시설팀같은 적당히 급여 되는 한직에 넣어달라고 한 건데, 왜 굳이 나를 인사팀에 넣는 거야? 그냥 사루만 상무한테 확 보낼 수도 없고...으아악! 짜증 나! 집이이 재벌급은 아니어도 납들보다 백 배는 잘 사는데 그냥 큰 거 아니어도 사업 좀 하게 납두면 되지, 왜 이런 걸 시키는 거야..."
참새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고서는 전화를 받았다. 어쩌다보니 친하게 지냈던, 선배였다.
"하. 시발. 회사생활하기 싫다. 걍 하늘에서 비대신 현금이 내려서 이런 놈들이 먹고살 수 있어서 손싹싹 빌면서 나한테 안 왔으면 좋겠다."
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시발. 아주 잘 하는 짓이다. 에휴."
참새는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