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립

감사일기 #.3

by 김케빈

감사하게도 나는 부모님을 잘 만난 편이다.

듣기로는 다른 집들은 부모님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사고 나서

수억의 빚을 지고 있고, 나이가 50이 되어서 간신히 빚을 갚은 다음

어떻게 어떻게 한푼한푼 모은 돈을 자식들의 결혼자금으로 모두 내주고 나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조차도 없어서, 연금으로 인하여 죽고나면 팔릴 집에 사면서


나이가 많이 들고, 몸은 여기저기 아프지만

없는 것마저 다 주고 떠나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식 역시 부모님과 같은 운명을 살다가 떠날 가능성이 농후하고

나는 다행이도, 부모님이 정말 열심히 사신 덕분에 그런 빚 속에서 살다가

늙어서 허망하게 떠나갈 운명에서는 벗어났다.


독립 역시, 수십 만원의 월세를 부담하고, 월세를 부담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매일같이 돈 없을까 걱정하는

극한 상황의 두려움 속에서 살지는 않는다.


부모님이 정을 주고, 사랑을 주는 것은 서툴러서 잘 하지 못하고

내가 상처 많은, 나이가 많은 어린이가 되었을지언정


이런 마음으로, 다른 이 세상, 이 한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없이 많은, 눈물나는 사연의 청춘들과 같은 시작점이 아닌


훨씬 앞의 시작점이라는 면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하고 안도한 마음이다.


이 세상에는 가난하고, 집안은 싸움으로 풍비박산이 나고 어지러운 집안도 있다.

나는 부모는 종교에 의지해서 생각하는 힘을 잃고, 기대하고 의존하면서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그런 같은 생활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자식에게 손찌검을 하는 못난 부모도 보았고


TV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재벌이어서,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면 된다는 물질중심의 사상에 물들어서

갑질 논란에 휩싸이고, 갑질을 한 자식으로 인해 부모가 언론 앞에 고개숙여 사과하는 것도 보았다.


물론, 집이 가난하더라도 정이 많아서 오순도순 사는 이상적인 가정들도 모르긴 몰라도

꽤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 문제가 등장하면 그들은 별다른 충돌없이 돈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서로 서운해하고 감정 상해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두 경우에 속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이 빚에 허덕여서, 엄마가 한때 육체노동을 하고, 그로 인하여 수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부모님은 끊임없이 노력을 했고, 운까지 따라줘서 어느 순간, 대한민국의 절대다수가 겪는 빚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서 여유롭게 사는 삶을 살게 되었고, 나는 순수한 내 능력은 약했을지언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남들보다는 훨씬 더 빨리,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감사하다.



나는 그래서그런지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함과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알기에 벗어나기 위해서 나 자체는 능력이 없더라도,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고, 방법은 잘 모를지언정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다 크고나서 부모님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여유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셨기에 어색한 면은 있다.


미숙했을 부모님이 냈던 상처 중 상당수를 내가 받았기는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정신적인 상처를 어떻게든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기도 하니까, 나는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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