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

by 김케빈

지금의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다행인 점은, 회사가 일에만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딱히 아무것도 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여가 적은 게 단점이지만, 출근 시간도 늦은 편이고, 일도 비교적 편하며, 쉬는 시간을 짬짬히 활용해서 책 쓸 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니 말이다.


만약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사업을 한다던가, 투자를 한다던가, 그런 걸 죄악시하고 금기시하면서 회사에 온 몸과 마음을 바쳐서 그것 외에는 하지 못하게 하는, 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죽지 않을만큼, 때려치지 않을 만큼 괜찮은 급여를 주되, 회사일 빼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환경이 아니어서, 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해도 괜찮을 여유가 있는 곳이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환경에 있다보면, 늘어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그나마 유능해 보이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죄다 떠안고

'선임자' 라는 명예의 감투를 쓰고

신음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래 일한 직원들도 마찬가지었다

그저, 피해망상에 찌들어서

혹은 나태함에 찌들어서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남이 만들어놓은 무대의 괸객으로 있을 뿐이었다.

나는 관객으로는 살기는 싫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책을 쓰기 시작하고

생각을 조금씩 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었다.


삶의 늪에 빠지지 않고, 그 위에 올라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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