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생할 결혼생활 시뮬레이션
여자친구를 사귄다.
그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될지,
다른 사람들과결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연애를 반복한다. 결혼을 할 때까지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장이다.
그냥 연애경험은 좀 많아보는 게 좋고,
이러다가 덜격 결혼을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겁이 났는데
우려라고 해야될지, 축복이라고 해야 될지 하는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남은 축복이다. 볼거리가 생겼으니까!
그런데 자유의 몸으로 생활을 얼마 해 보지도 못했는데, 연에를 하다보니까
코가 꿰이고, 결혼을 하게 됬다.
혹시나, 혹시나, 내가 끝까지 반대를 못 해서
아, 나 같은 성격의 애가 태어나면,
그거는 진짜 괜히 왜 태어나서 고생이니, 수준의 고생을 하게 될텐데.
애는 키우지 말자. 그렇게 나는 강하게 주장한다.
아내가 된 사람도 좋다고 동의를 한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안도의 순간이 그렇게 잠깐일 줄이야.
그런데, 아내가 어느 순간 아이가 갖고 싶단다.
열심히 살다 보니까 월급받고 회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이 번다.
우리가 애를 키울 능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애를 나으면 안되냐는 항변이 돌아온다.
나는 애를 키워야 하는 책임을 내가 져야 하고, 나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삶은 싫다고
결사반대를 한다. 누구는 애가 안 생겼으면 좋겠어서, 진짜 애가 없었으면 하는 게 아니다.
지킬 게 많아진 가장, 책임질 게 많아진 가장이 된다면 필연적으로...
나는 어디 잡혀서 살아야 한다.
일을 끝나고 집에 오니까, 애가 있다.
일단 씻고 와서는 애를 본다.
나는 부모에게 사랑을 어떻게 주는지 배우지 못했다.
결혼도 그냥 상대가 좋아서, 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작은 것까지 시시콜콜 따져가면서
어떻게든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책임이 싫다는 막말까지 했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다. 기어이, 내 아내는 나를 설득해서.
아이가 나를 많이 닮기를 바라면서
애를 낳고야 말았다.
아니, 미친소리하지마. 나 닮으면 세상살기 힘들어져서
애가 얼마 못살고 자살한다고.
나 닮은 애였으면 좋겠다 같은 무서운소리 제발 하지마.
그냥 니닮는게 훨씬 나아.
어쩌다 보니 나같은 성격을 물려받아 태어난 자식이 나타났다.
내가 항시 남을 위해 살면서도 지혜가 있는, 나라는 마음이 하나도 없는
도인이 아닌 나이기에, 완성자가 아닌 나이기에 얄짤없이 내 성격을 물려받는다.
돌인데, 애가 돈 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돌잔치에서 애가 연필이나 붓 같은 걸 집는다. 책 같은 걸 집는다.
아, 안 돼.
자식의 그런 성격의 일부를 이해하고, 내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을 알지만
나는 그렇게 다그치고 윽박지르고 틈만 나면 걱정했던 내 부모처럼
나는 내 자식을 그렇게 대할수가 없다.
인생이 파산하거나 인생을 말아먹을 정도로 심각한 길을 가지 않는이상
나는 자식이 무슨 선택을 하던, 그냥 지켜본다.
아니나다를까 돈 버는 거랑은 1도 관련없는 예술 쪽으로 향한다.
내 부모가 했던 것처럼 재테크. 사업. 이런 것들을
가정환경속에 아무리 녹여놓았어도, 내 아기는
내 걱정이나 조언들을 다 튕겨내고서는
가난한 자의 루트이자, 내가 밟을 뻔했던 루트로 간다.
나랑 똑같다. 조직생활에서는 폐인이 되어서 나온다.
다행이 악폐습과 감금생활이 이어지는 군생활은 아니었지만
상태가 영 안좋다.
나처럼 군생활할 때 원고를 빼앗겨서 글을 못쓰는 일은 안 겪었지만
좋아하는 소설과, 챙겨보는 방송의 스트리머를
같이 생활관을 썼던 동기들과 선임들이 매일같이 혐오하는 바람에
항상 비웃음의 대상이었단다.
그런 거 왜 보냐고, 내 자식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무한한 혐오를 당했단다.
나는 자식 앞에서는 화를 내고 뒤돌아서서는 펑펑 운다.
자식이 내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없도록
문을 꼭 잠구고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
아내는 불같이 화를 낸다.
돈도 많고, 아는 인맥도 많아졌으니, 그런 걸 다 동원해서,
그 자식들의 인생을 조지자고 한다.
나는 최고의 복수는, 자식이 성공하게 되어서
그런 이들보다 높은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되면
그게 진짜 복수라고 생각하고는 자신있게 말한다.
나름 유튜브에서 인지도도 있고 누구나 다 알법한 유명한 강사의 말이었기에
나는 자신있게 인용한다.
하지만 자식의 반응이, 못 볼 걸 봤고,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이다.
나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힘든 마음을 달래고 있냐고 묻는다.
자식은 그렇다고 말한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다. 자식을 이해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그런 자식에게, 블로그나 웹툰을 그려서 공감할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떻겠느냐, 하는
말을 한다.
자식은...무어라 말하려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 자식을 보고 나는 생각을 한다.
내 아빠는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계획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었다.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계획서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었다.
솔직히, 나는 그 말이 숨이 막혔다.
사실상 나에게는 사업계획서를 가져오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성인인 아들에게 원하는 걸 마구잡으로 해 주는 건, 나에게 의지하게만 하고
자기 삶에서만 무책임하게 되니,
나는 그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은다음
너 돈으로 하고 나서, 내게 돈을 달라고 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자식에게 말했다.
해적선장에게 배운 사업방식은 그랬다. 예측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쪽이 최저 리스크로 시행착오와 함께 니즈를 파악하는 방식을
나는 자식이 스스로 탐색하고, 먼저 비용을 지불하고,
자기 의지로 하게끔 내버려뒀다.
좀 한참이 지나서, 자식은 그림을 배우러 학원도 다니고,
클래스 101에서 돈을 내고 이것저것 잡다한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의 닮지 않았으면 좋겠을 면들, 내 자식은 그런 걸
고스란히 타고 났으나,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비운덕에 얻은
실낱같은 지혜 덕분에, 내 자식은 나보다 아르바이트도 일찍 했다.
회사 생활도, 나보다는 일찍 상대적으로는 늦게 작은 회사에 취업은 했지만
그냥 나랑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젋은 시절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직생활이라는 울타리에서 부적응자로 밀려나,
하루하루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삶.
그런 자식에게 아직까지도 사업을 권하고 있는
이제는 머리가 새하얗게 센 내 사업가 멘토가
이제는 내 자식에게 사업을 권하고 있다.
한참이나 망설이고 고민하던 내 자식은
나처럼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다.
어쩐지, 인생이 반복이 되는 거 같다.
나는 힘들 때마다 들었던, 게송을 귀에 꽃아본다.
옛날, 젊을 적이나, 지금이나 게송은 마음에 힘을 준다.
인생무상이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게 후회가 되지는 않느냐고?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인생의 막바지에 와서는
그렇게 결혼을 한 게 후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결혼을 안 해봤던 게 후회되지 않았을까
가정을 안 꾸려봐서 남을 보면서 부러워했던게
일생의 후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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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끝.
사업을 성공적으로 지속했을 때, 이상적인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현재로 돌아온다.
결정까지 1주, 최대한 늦춘다고 하더라도 2주의 기간이 남았다.
다른 시뮬레이션도 돌려볼까.
혼자 사는 시뮬레이션, 6개월 뒤에 짤렸을 때의 시뮬레이션
내가 그만 두었을 때의 시뮬레이션
6개월 뒤에도 사업을 지속하고, 잘 되지만,
여자에 대해서는 철벽을 치는 시뮬레이션
친구나 아는 사람 이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던, 아니던 질릴 정도로 철벽을 치는
그런 시뮬리에션.
아까 서울을 가서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갔다왔던 게
그냥 이제는 신기루 같다.
다시 그 자리에 가면 그 사람들이
내 꿈에서 등장한 사람이었다는 듯
그냥 없어져 있을까봐, 나는 그게 무섭다.
내 망상이 탄생시킨,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일까봐 무섭다.
지금의 나도 가짜일까봐 무섭고.
아닌가. 지금의 나가 진짜가 아니라 가짜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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