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다.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

by 김케빈

강의라는 걸 한다고, 수락을 하고나서 며칠이 지났다. 도움을 받자 당장이라도

글을 쓸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게임에서 못 가졌던 미련을 못놓자 언제 그랬다는 듯

푹 절어서 살기 시작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 시작은 스트레스였다. 서울을 다녀오고나서 얼마 안되자가마 한꺼번에 책 네권 분량 주문이 들어왔다. 그 때 책을 사갔던 지인이었다.


왠지 시간이 지날수록 성향 자체가 너무 싫었다. 비굴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이 보여서 싫었었다.


그런 사람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고객으로 와서는 책을 사가고 싶다고 했었다.

내가 미쳤다고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한 권을 무료로 풀었을까.

당연히 대책은 있다. 종이책 한 권 분량이 될 때까지, 고통스럽게 무료로 풀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자선사업 따위 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 부분은 이야기를 쭉 전개를 해 나가는데 필수불가결일

어쩌면 주인공이 정서적으로 성장을 하는 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그런 과정이었다.


돈을 몇 배는 더 받아내고 싶었었다. 어떻게든 물러서 돈을 더 받아내고 싶었다.

순순히, 그렇게 공짜로 보게 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팬은 커녕 아, 흥미롭군요 하면서

굉장히 잘난 표정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표정과 말투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딴 놈을 고객으로 받아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수가 없었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대단한 것도 없는 놈이 고객이 됬다고 왕인 줄 알고 착각하고 있었다.

후크에서 나를 코칭해주는 사람만 하더라도, 내 앞에서 막 빌빌 기거나 그러지 않는다.

당당하기만 하고 왕처럼 행동한다.


나는 고객이라고 해서 온 사람과 비교하면 부족하기는 커녕

비교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데

왕이 아니라 노예처럼 행동하고 끌려다닌다.

뻔히 상대가 애써 말을 돌리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좋은 소리나 하고 있다.


자기가 무가치하다면서 열등의식에 쩔어서

회사를 위해서 헌신하다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운명으로 계속 가면서

그러한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하는 놈이랑


나랑 비교를 할 게 말이 되는가.

애써 고통스럽다고 마음을 보는 눈마저 고의적으로 닫고 지내지 않는가.

보기가 고통스러워서 외면하지 않는가.


돈을 받자 을이 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었다.

나는 돈을 받아도 갑처럼 행동할꺼야. 당당하게 행동할꺼야.

항상 될껏처럼, 믿고, 행동할꺼야 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


독자라는 사람들이 왕으로 있게 하기가 너무 싫었다.

내가 좋아서 쓴 거고, 저들도 내 작품이 좋아서 보고 있는 건데


팬은 고사하고 그냥 흥미로운 거 하나 잘 봤다는 식으로 취급을 받는 게 배알이 꼴렸다.

소설을 쓰라고 하면 한 줄도 못 쓸거면서, 내가 날림으로 툭툭 던지는, 막장 식의 코칭이라도 없으면


한 줄도 못 쓸 자식들이, 테크닉이 아닌 관념관습을 때려부수기 시작하면

대가리만 커서 저항하기만 바쁠 개자식들이, 하면서 온갖 욕이 들끓어올랐다.

생각같으면 그딴 식으로 볼 거면 책 보기 말라고, 때려 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갑이 되고 싶었다. 저렇게 위에서 잘난 척 하는 놈들이

내가 계속 작품을 고치고, 노력을 들이붓고, 악을 들이붓자


다음 편, 혹은 더 많은 책을 원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더 이상 수정하지 않아도 되는 책들이 하나둘씩 탄생하고

나는 일을 적게 하게 되고, 얼마게 되었든 수익이 발생하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런 구조가 발생하고 싶었다.


실제라고 생각하고 가정을 해 보았을 때, 내가 돈이 무한대로 있다면 온갖 경험을 해서 그걸 책으로 쓸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중독과 정상을 왔다갔다하는 게임만 하더라도 돈이 많다면 회사를 매수해서 사용하고 있는 계정에 있는 제한을 풀어버린다음, 사람들에게 즐겜을 하는 방법을 책으로 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책으로 팔아서 돈을 벌지도 모른다.


화가 난만큼 실력을 기르고 갑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무엇을 장난감 취급을 하고 무시를 하느냐에 따라 달랐다.


누가 나를 보고 돼지같다고 하면 기분이 나쁘긴 하겠지만 돼지 맞다면서 낄낄대면서 웃을 수야 있겠지만

그냥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오호, 잘 읽었습니다. (게다가 쉽게 쓴 것도 아니다) 하니까 기분이 썩을 것 같았다.


글을 못쓴다고 하거나, 그러면 차라리 그나마 인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 보면서 필력이 대단한 사람 엄청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은 타고났을 테니까. 플롯을 짜고, 탄탄한 스토리를 기획을 하고. 나는 그런 거 못따라가서 줄거리 쓰고, 소설로 옮기고, 그게 다인 사람이다.


하지만 무시와 편견 속에서 꿋꿋히 써 왔던 글쓰기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너무 싫었다. 그래서 코칭을 해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고나자 문제가 해결이 어느정도 되었었다.


나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나가는 것.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해 나가야 될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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