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필사집

- 나츠메 소세키의 신작? 과의 며칠

by 북돌이


책상 위에 조용히 놓여 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필사집’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붙잡은 것은 표지의 분홍빛 패턴이었다.

고양이의 실루엣이 비추는 그 장면이,

마치 오래된 극장의 무대 조명처럼 느껴져서

조용히 숨을 고르게 만들었다.


속지를 넘기면 더 분명해진다.

책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곡선과 선분의 반복,

은은한 그라데이션의 분홍과 회색.

필사집이지만 공부의 느낌보다,

‘천천히 나를 데려가는 산책길’ 같았다.


그리고 책을 열자마자 맞이한 일본어 문장은

생각보다 단정하고 담담했다.

"吾輩は猫である。名前はまだ無い."

이미 수없이 읽어왔는데도

필사라는 행위를 통해 다시 만난 문장은

이상하게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한 줄을 베껴 적는 동안,

내 필기구의 움직임과 종이의 질감이

책 속 고양이의 시선과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고양이의 호흡을 따라 쓰는 기분이었다.


이어지는 한국어 번역 문장은

일본어의 빈틈을 메우듯 다정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필사집의 가장 좋은 점은

일본어 한 문장,

한국어 한 문장,

이 두 줄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이었다.


목차를 넘기며

앞으로 내게 남은 필사 여정을 헤아려 보았다.

챕터마다 다른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 필사집에서 보내게 될 몇 주가

왠지 아늑한 방처럼 느껴졌다.

06-2나는 고양이로소이다_한국어 문장필사.jpg.jpg

내가 쓴 필사 노트의 일본어 문장은

약간 삐뚤고 서툴렀지만,

그 서툼도 기록의 일부가 되어 간다.

한국어 번역을 따라 적을 때에는

마치 어린 나에게 편지를 남기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 뒤,

비즈 북마크를 책 위에 올려두고

필사한 페이지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순간,

한 권의 책을 읽었다기보다

한 마리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필사라는 행위가 주는 온기가 아닐까.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아 주는 문장,

어렵게만 느껴지던 일본어를

조금 더 가까이 느끼게 해준 하루하루의 기록.

이 필사집은 그런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책이었다.


당신은 요즘,

어떤 문장을 따라 쓰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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