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연필로 하루를 비우는 시간
[도서 줄거리 요약]
동양북스 콜렉트 팀이 모은
듣기만 할 때는 몰랐던 여운의
노랫말 91편을 필사집으로 엮었다
책은 사랑과 위로, 계절과 내면의
네 갈래로 노랫말을 나누어 놓고
각 편마다 따라 쓸 지면을 곁들였다
수록곡은 감성 선별, 공감도 검증,
저작권 계약 가능 여부를 거쳐
스트리밍 순서에 맞춰 정리되었다
독자는 노래를 찾아 들으며 가사를
손끝으로 옮겨 적고, 페이지를 채우는
과정을 따라가도록 구성됐다
책상 위엔 노래 대신 연필 심의 온도가
먼저 내려앉고, 표지가 조용히 열린다
가사 필사집을 펼치는 순간
빈칸이 나를 먼저 부르고 숨을 고른다
여러 연필을 굴려 보던 오후 끝에
내 손에 남은 건 B의 단정한 무게였다
너무 진하지도, 너무 옅지도 않게
마음의 속도를 따라오는 선 하나
어쩌면 위로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손이 흔들리지 않게 받쳐 주는
작은 도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연필을 고르는 일부터 했다
복잡한 마음을 비우는 일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한 글자씩 옮기는 속도에 가까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자꾸만
하루 한 페이지라는 약속이 풀린다
후렴이 돌아올 때마다 손도 돌아오고
나는 몇 장을 더 써 내려가고 만다
그렇게 넘어간 페이지를 세다 보면
문득 낭비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내가 비운 시간만큼, 책이 얇아져서
아까움이 마음 한쪽을 톡 건드린다
하지만 낭비는 아니었다
비어 가는 건 책장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인 잡념과 삐뚤한 말들이었다
종이가 줄어든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 쓰게 되면 빈 페이지에 덧붙이고
그래도 모자라면 새 노트를 사러 가겠지
그건 소비라기보다 다음 노래를 만나는
작은 산책 같은 약속이 될 것이다
한 권을 끝낸다는 건 끝이 아니라
내 손글씨가 나를 더 잘 아는 쪽으로
조금씩 데려가는 과정이라는 걸
이 책은 조용히 보여 준다
그러니 여러분도 오늘은 한 줄만
가장 편한 연필로 옮겨 적어 보세요
오늘 여러분 손끝에 남길 문장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