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너졌던 L이 보내는 응원
L은 어린시절 무언가 시도하는 걸 배운 적이 없다. 시도할 수 있는 일 자체가 한정적이였으니까. 작은 세상에서만 살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두려웠다. 이것을 했다가 실패하면 낙오자가 되거나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처럼 마음이 찔려서 시작을 하지 못했다. 가진 게 적었던 만큼 결핍이 컸지만 이를 실행하기에는 '보호막'이 없었다. 게다가 L은 질문을 잘 못했다. 모른다는 건 알겠는데 무엇을 물어야 스스로가 알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기력이 지속되고 우울감이 떠나질 않았다. 삶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묻는 것도, 시도하는 것도 배우지 못했던 L은 무엇을 배우려면 다 혼자해야했다. 하다보면 조금 알게되고 그 알게된 걸 또 부딪쳐야만 다음을 볼 수 있었다.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무한반복으로 어디까지 알 수 있었을까.
게다가 L은 선천적으로 게으른 타입이였다. 재미와 흥미만을 추구하면서 살았고 타인의 감정에 의존적이였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점점 자아를 상실하는 줄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갔다. 망가지고 또 망가짐을 반복하면서 L은 삶이 싫었다. 그만 살고 싶었다. 그런데 학습화된 무기력과 짓누르는 우울감에 의해 낮아진 자존감은 삶을 떠나고 싶음도 실패로 만들었다. 매일 죽지 못해 살았다.
L은 지금 이 글을 쓰는 과거의 나이다
나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건 아니였다. 사실 그 환경에 대한 인지도 굉장히 늦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없어서 나는 항상 제자리 걸음을 겨우 하고 있었다. 달라지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했고, 그 때는 좋았다. 하지만 그걸로 삶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내가 삶이 조금 달라진 것은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WHY'를 찾았을 때였다. WHY는 단순했다. 나는 삶이 그냥 다 거지같은 줄 알았다. 매일이 힘들어서 버텨내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써야했다. 오늘 괜찮다 싶었는데 내일 또 인생에서는 태클이 왔다. 사람에게 의존하면서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던 시점에서 나는 한 친구를 만났다. 이유가 없이 믿어주고 조건이 없이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면서도 나를 무시하지 않고 항상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 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잘못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게 WHY의 시작이였다.
시작은 WHY가 정확해야한다. 비록 사소할지라도 분명하게 보여야한다. 나는 내가 잘못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세상을 한번 찾아보려고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만든 옷장에서 열쇠구멍으로 보이는 세상조차 믿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열쇠구멍으로 세상을 보기시작하자 시작이 달라졌다. 시작이 어려운 이유는 나의 생각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이다. 아주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보자.
정말로 세상이 나에게만 불공평할까?
정말로 하나도 빈틈없이 힘들게만 할까?
정말로 나는 실패하는 걸까?
정말로 이것만이 최선일까?
나는 그게 정말 사실일까? 감정이나 생각을 내가 사실로 마주한 게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어려운 이유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이다. 지금 그대로의 삶이 좋아서 지키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나의 생각과 마음이 진짜 나의 마음이 아니라는 생각을 시도하길 권한다. 지금 내가 정말 내가 쌓은 나일까? 라고 말이다. 누구나 고유한 퍼스널 브랜드로 태어난다. 이 세상에 아무리 나와 같은 이름에, 나와 같은 시점에 태어난 사람들이 있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하나 인생의 링안에서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쫓기거나 쫓거나를 반복할 뿐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없다. 그러다보면 누군가의 복사본이 되어 생의 마지막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언제 삶이 멈춘다해도 후회없이 살기위해서 오늘도 1가지는 시도한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생각'을 멈추진 않는다. '정말 이게 끝일까?'라고 말이다. 시작이 어렵다면 '나'를 생각하고 '나'를 바라보고 '나'를 파악하는 생각을 멈추지말아라. 분명 이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INPUT을 하면 또 다른 기회나 시도할 거리가 생각난다. 나는 아래의 문장때문에 게으른 나를 다시 일으키곤 한다.
시작은 YES/ NO 가 아니라 WHEN 이다.
나는 읽고 쓴다.
나는 듣고 쓴다.
나는 보고 쓴다.
나는 생각하고 쓴다.
나는 쓰므로 또 읽고, 듣고, 보고, 생각한다.
다재다능르코, 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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