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그녀를 응원한다.
내가 그녀를 잘 모르던 시절에 그녀는
강인해보이면서 긍정적이였다. 다른 일에는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잘못된 일에는 언제나 단호했다. 그녀에게 인정을 받으면 왠지 더 뿌듯했다. 작은 일에도 그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했다. 남들이 무시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희생해서 지켜야할 것을 지켰다. 그녀는 무언가를 더 해줄 수 없는 순간에 항상 미안해했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책을 얻어서라도 가져다주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옆에 있으면 부족한 게 있어도 마냥 좋았다. 착한 사람이지만 그러면서도 끝내 책임지는 사람이였다. 그녀는 내가 힘들어하면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도 이만큼 했으니까 그걸로 괜찮다고 말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였다.
어느날 나는 그녀의 다른 모습을 마주했다.
그녀의 의식의 스위치가 꺼지고 무의식의 스위치만이 켜져있는 순간을 마주했다. 그녀는 울고 소리지르고 몸부림쳤다. 내가 알던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그녀도 보호가 필요했는데, 보호해줄 사람들이 주변에서 하나하나 연기가 되어서 사라지자 그로 인해 힘든 사람들까지 감싸안느라 의식의 스위치가 꺼졌다. 무엇을 해줄 수 없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하나를 더 알았다. 그녀의 무의식에는 내가 없었다. 그 날 나는 많이 울었다.
아픔의 시간이 지나서 또 일상의 어느 시간쯤에 그녀는 진단을 받았다. #정신분열증 지금은 그 병을 이렇게 부른다. #조현병
그녀는 나의 엄마다. 내 나이 22살. 고등학생이였던 내 눈에 엄마의 스위치가 꺼졌던 날이 다시 떠오르며 엄마가 진단받았던 날 의사에게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의아했다. #왜또이런일이벌어진걸까 하고 말이다.
평범한듯 삐걱이던 일상에서 엄마는 차츰 나아지는 듯 보였지만 그저 살아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가 입원했다. 일반병실과 달리 정해진 시간 철문을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입원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우리집은 '14층'이였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녀는 환청을 들었다고 했다. "뛰어내리라고 한다고.." 한문장에 심장이 쾅. 하고 내려앉았다. 다행히 그녀에게 '병원'은 안정적인 단어이자 시설이였다. 차츰 안정화를 찾았고 퇴원했다. 이후 재입원과 퇴원이 있었고 - 지속적인 통원이 진행중이다.
이렇게 엄마의 스위치가 ON/OFF를 반복할 때쯤이 되어서야 나는 엄마를 제대로 마주했다. 20년을 넘게 함께 해온 엄마를 내가 이렇게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나에게 또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슬펐다. 엄마의 무의식에서 나는 모성애로 지켜야할 자녀는 아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까. 언니도 동생도 알아보는데, 나는 없다. 왜일까라고 생각이 들던 그날부터 난 정신의학과 심리, 변화 이런 단어를 쫓아서 많은 것을 보고 익혔다. 그녀의 삶에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해서 말이다. 공부하다보니 알았다. 그녀에게 나는 지켜야할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나는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으로 느낀다는 걸. 처음엔 말하기도 꺼려했다. 누군가에게 엄마의 병이름을 꺼낼때마다 나는 엄마를 내가 정신병자취급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그 단어하나가 엄마를 더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차츰 엄마를 받아들인 건, 내가 그녀와 보내왔던 시간 덕분이였다. 자유로운 영혼이자 생각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라난 건 엄마의 인생태도 덕분이였다. 엄마의 조현병은 10대 때부터 시작이였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엄마는 이 모든 시간 오로지 엄마가 이겨내며 3남매를 키웠다. 우리집이 풍족하지 않았지만 무엇이 풍족하지 않은지 몰랐던 것도 엄마덕이였다. 엄마와 보내온 20년이 넘는 시간을 돌아보니 엄마에게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어졌다. 엄마가 나에게 준 건 '사랑'이니까. 나는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다. 이건 효가 아니라 응원이다.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와 다시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다시 만난 그녀는
그녀는 참 긍정적이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인정했다. 초긍정이라고.
그녀는 배우고 싶은 게 많다. 최근엔 비누공예라고 했다.
그녀는 마음이 순수하다. 그래서 아직도 잘 살아낸다.
그녀는 알려주면 잘할 줄 안다. 그리고 웃는다. '잘하지?;라면서
그녀는 한문을 좋아한다. 그리고 많이 안다.
그녀는 성경공부를 좋아한다. 교회를 다닐때마다 빼놓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놀러가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의 자녀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엄마다. 지금도 그녀는 본인이 일을 못나가서 미안하다고 한다.
한번의 대화도, 한번의 사건도, 매일매일 쉽지 않다. 내가 그녀를 보면서 느낀 조현병은 마음의 병이다. 옆에서 자꾸 봐주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리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자꾸 잡초가 자라서 새싹을 괴롭히는 병이다. 새싹이 잘 버틸 때랑 잡초가 막 자라날 때랑 참 다른 그런 병이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가끔은 너무 어렵다.
하지만 가끔 그녀의 말은 자꾸 응원하고 싶게 한다. 새싹이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도 같이 버텨보고있다.
왜 다른 형제들에게는 말을 안해?
"몰라. 다른 애들은 몰라. 너한테 말하면 안심이 돼"
"역시 딸이 없으면 웃을 일이 많이 없어"
왜 아빠랑 이혼안했어?
"너네 결혼식이나 혹시 나 어떻게 되면 어른이 없으면 안되잖아"
늦은 오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또 환각을 보는 것 같아.
덜컥 내려앉은 마음을 다잡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나에게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할까봐 또 이런다. 그래서 엄마에게 저녁먹자고 데이트신청을 했다. 차에서 엄마와 대화를 했다. 하나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할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한다.
엄마, 그 사람같지 않은게 엄마 때렸어?
"아니"
그럼 만졌어?
"아니"
그럼 엄마한테 물건 던졌어?
"아니"
그럼 아무것도 안했네? 그럼 엄마 건들면 말해 때려줄게.
"응. 근데 그게 통장이나 돈같은거 훔쳐갈 것 같아"
엄마 우리집 돈 없어서 훔쳐갈거 없어.
걱정마. 냉장고이런거 밖에 없는데 가져가라고해.
4층에서 가지고 내려갈려면 뒤질거야. (같이 깔깔깔 웃음)
그리고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동안 같이 이야기 나눌 방법을 찾아 제안했다.
엄마, 문자 좀 배워봐
"다 까먹었어"
우리 셋한테 문자보내면 내가 5000원 보내줄게.
"진짜?"
응. 진짜로 대신 문장보내야돼! 밥먹었는지 이런거.
"응. 해볼게. 5000원이나 신난다"
엄마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와서 오늘 마음을 담아본다. 누군가를 위해서 살지는 못할거다. 하지만 그녀를 응원하기위해선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고 그 치료엔 돈이 든다. 부자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후회없고 싶다. 그래서 난 오늘 일한다.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서.
P.S 엄마, 오늘도 살아줘서 고마워요.
나는 읽고 쓴다.
나는 듣고 쓴다.
나는 보고 쓴다.
나는 생각하고 쓴다.
나는 쓰므로 또 읽고, 듣고, 보고, 생각한다.
다재다능르코, 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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