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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재다능르코 Nov 08. 2021

180일, Do It Yourself

 잘 살고싶어 고군분투한 180일의 기록


한달간 연재를 해보려고하는 이 글은 몸과 마음이 바닥을 쳤다가 180일간 회복을 하면서 겪은 저의 경험담입니다. 쉽지 않은 순간을 맞이한 시간을 회복하며 겪은 시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적어봅니다.

브런치의 알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브런치의 글을 쓰지 않은지 벌써 5달이 넘었다는 소식 - (이와중에도 시간이 더 지나서...160일쯤 되려나)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긴 시간동안 멈춰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3분기부터 꽤 바쁜 시간들이 이어졌다.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쉴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였고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책임은 나를 짓눌렀다. 엄마의 당뇨가 잡히지 않는 순간부터 일을 하다가도 몇번이나 집을 갔는지 모른다. 그러다 엄마의 조현병이 심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고 조현병때문에 당뇨관리가 안된다는 생각에 대학병원 외래를 당겨서 담당교수님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조현병은 심해지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치매인 것 같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22살 처음 엄마의 조현병을 알게 된 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엄마가 치매가 올 확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것, 외할머니가 치매가 오셔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기에 더더욱 하지만 생각하고 있던 것과 마주하는 건 달랐다. 2021년 설날 엄마는 치매검사를 위해서 입원했다. 일주일정도면 확인이 가능했고 그것만 해결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입원은 1년의 시간의 시작점이였다. 다음날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어디 다친 적이 있었냐고. 그간 잘 다니신 것만 기억하기에 전혀 몰랐다. 검사결과는 충격적이였다.

어머니가 양쪽 발목이 골절상태이셔서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당뇨로 인해 남들보다 통증을 덜 느꼈고, 조현병으로 인해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셔서 방치되어있었다. 급하게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드리고 10일간 엄마를 간병하러 들어갔다. 정신과 병실은 일반병실과 사뭇다르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분위기도 다르다. 수술후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눈앞에 딸을 두고도 본인에게 자식이 셋이 있는데...라며 남에게 이야기하듯 본인의 이야기를 하셨다. 하루에도 링겔을 위해 꽂아둔 주사바늘을 5번 넘게 빼기도 하고, 잠깐 물을 뜨러가거나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양쪽 발을 수술했는데도 침대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으려고 하시고, 병원인 걸 인지하지 못하셔서 과거의 기억에 섞여 나는 악덕사장이 되기도 해야했다. 10일간 나는 지칠때로 지치기 시작했다. 10일만에 3kg가 넘게 빠졌으니까 말이다. 그 이후 한달여간의 입원이 지속되고 이후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간병이 시작되었다. 


요양병원에 가셨지만 필요한 병원의 통원은 계속 이어져야했다. 평일 20일 중 8일을 통원하자 현타가 왔다. 요양병원에서 모시고 다른 병원으로의 통원에는 이동만 하루 5시간을 썼다. 점심쯤 시작하면 저녁 6-7시가 되었다. 하루가 끝난 거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걸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도 잠깐..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계속 해결해야했다. 엄마의 병원 통원이 이어졌고 가장으로서 병원비를 책임지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9월이 되었는데 몸이 진짜로 병이 나기 시작했다.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탈모가 오고, 염증이 오고, 불면증이 왔다. 이틀에 한번 2-3시간 겨우 잠드는 게 몇주 지속되자 나는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회사에 말씀드리고 아침출근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야했다. 1년가까이 내 삶에서 나를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로 미룬채 살았던 삶은 나를 망가뜨렸다.



열심은 분명히 냈다. 자꾸 가라앉는 내 마음을 끌어올려보겠다고 6월엔 1일부터 약 90일에 가까운 시간을 매일 걷기도 하고, 이와중에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일도 열심히해보려고 노력했다. 평상시 자기계발을 좋아했고 성장과 변화를 추구했기에 이게 답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만들어지면 또 할 수 있을거라고 말이다. 극한의 상황이였기에 스스로 멈추면 '게으른 사람'이 되거나 '뒤쳐지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나를 몰아세웠다. 쉬고싶다는 생각이 와도 쉬면 그 뒤엔 더 많은 걸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절로 따라왔다. 


쌓이고 쌓이자 이제는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에도 지치기 시작했다. 쉼이 나에게 오지 않았다. 점차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브런치를 150일이나 찾지 못한 이유도, SNS에도 글을 올리지 못하고, 기존에 글을 써왔던 곳에도 전혀 하질 못하기 시작했다. 알람 자체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전혀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었다. 맘편히 나만의 시간을 가진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무언가에 전혀 동기부여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의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다시 돌아봐야했다. 

내삶에서는 현실도, 집문제도, 가장이 되어야했던 시간과 어머니의 병은 끝없는 중압감으로 왔다. 어린나이부터 집의 현실을 봐야했던 내가 일찍 깨달은 게 있다면 

사회와 현실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냉정하다

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철이 금방 들었다. 이제는 웬만한 일로 상처받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여겨왔는데 그랬는데 내가 에너지가 바닥날 줄은 예측을 못했다.


17살부터 친구였던 친한 친구 A는 내 상황을 알고나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네 삶은
대체 언제 가벼워지냐..

항상 느껴왔던 말이였지만, 유난히 그 날은 그 말이 나에게 깊이 다가왔다. 시도때도 없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내가 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 - 문득 나는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현실을 감당하고 사는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었기에 몸과 마음의 파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한끼도 챙겨먹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주변에서 나에게 해주는 말 중 가장 많은 말이 뭔지가 들려왔다.

다른 문제들도 있지만,
이기적일 수있겠지만
너만 봐. 지금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나로 세웠다. SNS도 멈추고 연락은 최소화로 하고, 에너지도 최소화로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멈춰두고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노트북도 스마트폰도 전원을 꺼줘야하듯 가끔씩은 나의 전원도 꺼줘야함을 느꼈다. 과부화로 고장나기전에 - 전원을 끄고 마주했던 시간 차분히 나를 관찰했던 시간 180일. 의지가 약함이 아니라, 동기부여가 부족한 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삶의 시선이 바뀌어야함을 알게되는 시간이였다. 


지금은 나에게 약 180일의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였다고 느낀다. 그 시간을 통해서 놓치고 있던 것을 다잡기도 했고 삶의 여러가지 부분들이 바뀌기도 했고 좋은 습관들이 나에게 남는 방법을 찾아가기도 했다.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달라져서 지금은 차근차근 해결해가고 있다. 나에게 도움되었던 방법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매주 월, 수 한달간 나눠보고자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는 분들에게 도움되길 간절히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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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르코, 임지영

tvwkd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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