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글쓰기 챌린지
5월 한달간 '새싹챌린지'에 참여하여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보려 합니다. 매일 달라지는 주제로 글쓰기 리프레시를 해보고자 해요. (* 5월 11일은 방학으로 넘겼어요!)
내 인생의 첫 실패담이자 가장 크게 나를 좌지우지했던 실패는 '자살시도'였다. 물론 실패했기에 오늘 난 이 글을 쓸 수 있기도 하고 그때 자존감이 바닥 그자체였던 나에게 감사해야할 정도로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릴 때 내가 온라인에서 쓰던 닉네임을 떠올려보면 기억에 남는 게 '울증이a'다. 나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큰 감정이 우울감이였기 때문이다. 밝고 말하는 거 좋아하는 외향적 성격과는 전혀 별개로 내 삶에 연결되어있는 키워드들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의 가출, 친구가 만든 온라인 안티클럽, 온라인 테러, 선배의 괴로힘, 대인관계의 문제점, 주변 사람들의 죽음, 공황장애, 감정기복 그리고 자살시도
괜찮다고하려고 해도 그게 금새 지쳐버릴 정도였다. 당시 나는 저 상황들을 잘 넘길만큼 아는 것도 없었고 나와 별개로 생각할 수 있을만큼 강하지도 않았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곳은 더 없었고. 그래서 때마다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그게 어느 순간을 넘기자 나도 모르게 이성의 끈은 끊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손목에 흐르는 피를 마주했어야했다. 무의식 속에서 나는 내 장례식을 떠올렸고 내가 사람들의 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나? 했더니 그걸 떠올릴 수 없었고 죽는 것마저 두려워졌고 그래서 깊게 베지 못했다. 그게 중1쯤의 나였다. (중1쯤이라고 표현한 건 힘들었던 만큼 기억을 정말 많이 지웠다. 지금도 사실 누군가가 이런 일이 있었잖아라고 하면 어렴풋 내가 했다는 것만 기억날뿐 '아?'라고 느낄때가 많다) 그만큼 난 처절하게 정신적으로 갇혀있었다.
삶의 시간에서 남과 있을 때는 괜찮다라고 했지만 혼자있는 순간은 내내 많이 울었다. 이유도 모르고 울고.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울고. 그러다 잠들고 어느순간 눈물도 나지 않았다. 왜 살아야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며 방황했다.
노력을 안해본 건 아니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면 노력할수록 헛수고로 돌아가는 게 많았고, 노력할수록 불행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냥 되는대로 살기를 택했다. 19살까지의 나의 삶을 그대로 삼켰다.
검은 감정은 고스란히 나를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대인관계안에서 더 많은 부딪침을 마주해야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관계안에서 내가 느낀 건 '믿을 수 없는 데... 말도 못하면 이젠 진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였다.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사람과 만나려고했다. 의지할 곳이 하나 없었기에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를 믿어주지 않아도 되니 그냥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했다. 그만큼 외롭고 공허했고 힘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살고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한번의 실패는 생각보다 나의 무의식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고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때부턴 '사고'가 나길 기도했다. 말도 안되는 기도이지 않은가. 무려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마음은 검정 그자체였다. 우연한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길 말이다.
20살 처음으로 '삶의 의지조각'을 만나며 나는 내 실패담을 감사함을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은 나의 기도를 다르게 들어주었다. 이 기도가 진짜 맞는지를 검증할 시간을 오히려 주었다. 보이는 부분을 다시 보게해준 친구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다시 보게해준 선생님을 동시에 만났다. 같은 시기에 두 사람을 만나고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불행으로 무너진 시간들을 제대로 배우고 마주하고 생각이 변하고, 이를 내가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검증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의 20대 전체를 말이다.
실패 후 다시 마주한 길은 이제 갈림길이 나와도 두렵지 않은 기준이 되었다. 여전히 삶에선 힘든 순간이 있다. 하나 나는 이젠 실패가 두렵지 않다. 실패의 의미가 '아직 모르는 것일 뿐, 아직 이르지 못했을 뿐'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