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손해 보는 우리가 진짜 공부해야 하는 이유 3가지
공부는 '잃어버린 시간/놓쳐버린 시간'을 갭을 줄여주는 유일한 도구이다.
'공부(Study)' 아마 가장 많이 쓰고 듣는 말 중의 하나이지 아닐까 싶다. 영어 'study'의 어원은 라틴어 "studeo"에서 왔다고 한다. studeo의 의미는 '-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을 추구한다', '-을 위해 헌신한다'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배워온 공부라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지만, 진짜 우리가 해야 할 공부와는 딱 맞는 의미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자어로 공부(工夫)는 학문과 기술을 닦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단순하게 시험을 위한, 무언가 달성만을 위한 것이 공부가 아님을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공부'라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여기까지도 12년인데, 대학까지 평균 4-6년을 공부한다. 나 또한 그렇게 거의 17년 가까이를 내 인생에서 공부를 한다는 데에 썼다. 그런데도 나는 공부를 하였다는 표현이 참 어색한 것 같았다. 성적도 반에서 2등부터 중간 정도 등수, 그리고 몇 과목들은 바닥까지 쳐보면서, 잘하는 것도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 수능 등급 등 다양하게 받아본 나 - 특별하게 잘할 것 없던 내가, 하나 이와 달리 대학 때는 4년 내내 과 TOP을 하면서 지내온 시간을 지나면서 '공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너무 어려운 공부>
학교를 다닐 때 '영어'를 공부하려고 참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물론 '시험/성적/과제'라는 데드라인이 있으면 능률이 오르는 것 같았지만, 내가 게임을 하듯 / 독서를 하듯 / tv를 시청하듯 공부를 하기란 참 어려웠던 것 같다. 왜 공부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 이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아서 시험을 준비할 때마다 초조와 불안감들이 나를 감싸며 공부=스트레스라는 공식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었다. 잘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먹지 않는 상황이랄까,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 인터넷 창에 참 많이도 검색해보고 온갖 카페를 가입해서 '공부법'에 대해서 참 많이도 찾아보았다. 지금도 존재하는 '수. 만. 휘' (단어도 추억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니)에서도 많은 수기들을 읽으면서 따라 해 보았다. 하지만 기초도 없고, 흥미가 그렇게 크지 않은 공부를 하면서 오랫동안 인내심을 갖추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게다가 1:1 과외 중에도 졸 정도로 집중력이 약한 나에게 공부는 너무 높은 벽처럼만 느껴졌다. 역시 할 수 있는 사람만 하는 거는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래 머리는 타고나는 거야라고 고정관념마저 갖게 되었다.
달라진 계기는 간단했다. 내가 알고 있던 '공부'라는 것과 해야 하는 '공부'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면서 였다. 그렇게 싫어했던 공부를 다시 할 자신도 없어서 가게 된 대학.. 가고 싶지도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채로 생각지도 않았던 과에서.. 4.5만 점에 4년 평균 4.44 최우수 학위로 학교를 졸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공부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준 친구와 멘토를 만났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그간 쌓아둔 나의 지식들이 나의 삶의 잃어버린 시간과 놓쳐버린 시간, 혹은 아예 몰랐던 시간들에 관한 다른 생각들로 까지 연결하게 되면서 "공부"라는 부분이 참 중요한 거구 나라는 생각마저 들면서 지금은 무엇이든 아는 것을 좋아한다. 메모해두고 저장도 해두고, 복사도 하고, 프린트도 해둔다. 또한 공부는 나에게 또 다른 나를 선물해줬다. 상담을 해주면서 처음 만난 같은 나이의 친구에게 '선생님 같아서 말을 못 놓겠다'라는 말을 듣는다. 아는 게 많아서라기보다 '생각'이 달라져서였다. 그래서 마음도 표현하는 말도 행동도 달라졌다. 이 모든 게 나에게 공부가 만들어준 행운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3가지
내가 내 이유를 하기보다 저자들의 몇 가지 이야기로 생각을 해보셨으면 한다.
책은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그리하여 내가 누리는 안락에 감사하고 내가 겪는 아픔을 고집하지 않게 하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 원망 없이 받아들이게 하지요.
김이경 「책 먹는 법」 중
딱 정말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면서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알게 하고 내가 누구임을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안 다라는 게 공부.
공부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물론 공부했던 것들이 얼마나 어떻게 남아있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책을 건성으로 읽은 뒤 주요 내용만 기억하는 사람과 책이 나에게 어떤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 사람은 똑같은 책을 읽었다고 해도 훗날 기억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만약 후자의 방법대로 꾸준히 공부를 해왔다면 그 공부는 내 생각과 인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며, 언제가 되든 반드시 놀라운 힘을 발휘할 때가 올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 「내가 공부하는 이유」
나를 배신하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힘을 발휘한다. 나 또한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난날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내가 고맙고 감사하다.
나만의 개성, 바꿔 말하면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강점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강력한 무기를 하나 얻는 것과 같다. 누구도 회사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다가는 오래 버틸 수도 없다. 하지만 평생 공부를 하다 보면 오랜 시간 공부가 내 안에 쌓여서 누군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지식 세계, 나만의 아우라가 생긴다. 그게 바로 긴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가 아닐까.
사이토 다카시 「내가 공부하는 이유」
이 부분을 꼭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나만의 아우라', 다양한 업무 다양한 직업을 지속적으로 사는 나는 같은 나이의 사람에게도 선생님 같다는 아우라를 준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사실 진부한 대답일지 몰라도, 나는 공부한다. 나를 공부하고, 타인을 공부하고 세상을 공부한다.
"정말로 내가 공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꼭 의문을 가져보세요"
눈에 보이는 성적표 말고,
마음의 성적표를 달라지게 하고 나니 눈에 보이는 인생 성적표도 달라지더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지도 모르지만, 꼭 공부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하는데 -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공부해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