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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e Jul 10. 2020

탈모 있는 여자 친구를 위로하는 방법

원래부터 머리숱이 많지는 않았다. 숱이 없으니 머리카락이라도 굵고 두꺼우면 좋으련만. 내 머리카락은 얇아서 폴폴거렸고 미용사로부터 '어머~ 아가 머리 같아요' 하고 포장된 말을 듣기 일쑤였다. 원래도 그랬던 내 머리카락이 요즘 들어 머리통에 도통 붙어있지를 않는다. 자고 일어난 베개에 다섯 가닥, 고갯짓 한 번에 한 가닥, 필라테스 수업 후 세 가닥, 머리 한 번 쓸어 넘기면 또 한 가닥. 그렇게 매 순간 탈출하는 머리카락들을 보니 마음이 쓰려 죽겠다.


별로 없는 머리카락이라도 지켜보려고 나름 노력을 들였다. 머리카락을 생성하는 비오틴이 풍부하다지만, 똥물과 구분될까 싶은 맛을 풍기는 맥주효모도 1년 넘도록 복용 중이다. 자외선이 두피를 화나게 할까 싶어 양산 없이 외출한 적은 손에 꼽는다. 물에 비벼진 샴푸를 대기만 해도 우수수 빠지는 탓에 노푸(물로만 감기)를 실천한지는 3개월. 노푸 초기에는 머리 빠짐도 눈에 띄게 줄고 새 머리가 올라와서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러던 머리카락들이 노푸와 권태기를 맞고 요즘 다시 보란 듯이 탈출 중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대머리' 되겠다 싶어서 어제는 바르는 발모약(미*시딜)을 구매했고 오늘은 탈모 병원을 예약하기에 이르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삶에서 탈모가 시작됐을 거라 의심되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약 10년 전. 이전 글에서 고백했듯 '아빠가 집을 나갔'던 그때. 아빠를 잃고 우습게도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했었다. 아빠와 다이어트가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었다. 아빠를 잃은 나는, 누구에게든 사랑받기 위해 예뻐져야 하며, 예뻐지기 위해서는 먼저 살을 빼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키 작고 통통했던 내가. 내 모습이 어떻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대상 하나를 잃고 나니. 사랑받기 위해서 외적인 모습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한창 잘 먹고 공부해야 할 고등학교 시절에 일부러 '먹지 않고' 공부했다. 다이어트 지식은커녕, 몸을 올바르게 가꾸는 법을 몰랐던 나는 무식하게도 정말 먹지를 않았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귤을 먹을 때는 즙만 먹었다. 귤껍질은 뱉어냈다. 피자는 토핑만 쏙 골라 먹었다. 한 끼 식사는 한 숟갈이면 충분했다. 밥 한 숟갈 위에 고기 한 점, 김치 한 줄기. 그게 한 끼 식사였다. 오죽하면 어느 날은, '아무리 다이어트 중이라도, 네가 소고기를 안 먹고 배겨?' 하는 심정으로 없는 살림에 엄마는 소고기를 사다 구웠다. 기대감에 부푼 엄마는 접시 위에 소고기를 한 가득 깔았으나 나는 역시 소고기 한 점으로 식사를 마쳤고 엄마는 수저를 들고 울었다. '좀 먹어... 이러다 너 죽어!'


그렇게까지 무식한 다이어트 끝에 한 달만에 12kg을 뺀 홀쭉이가 되었다.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 먹은 것을 죄다 토해내는 폭식증과 위장 장애, 때때로는 요요를 겪어가며 그때의 몸무게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다이어트 후유증은 겪을 대로 다 겪은 것 같은데, 내게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던가. 10년간 망가뜨린 밸런스는 이제야 머리 끝에 도달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맹렬히 보인다.




'머리가 다 빠져버린다면 그냥 가발 쓰지 뭐'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내 머리로는 평생 느끼지 못할 풍성함을 한 번에 얻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한 후에는 가발도 믿음직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대머리를 들키기 싫어 남편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삶이라면, 지옥과 무엇이 다를까. 비용 대비 효과가 많이 떨어진다는 탈모 치료나 이식 수술도 대안이 아니다. 탈모 앞에서는 답을 모르겠다. 대안은 없을 것만 같다. 풍성하고 빼곡한 머리카락은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휑하지 않은 정수리, 그거면 되는데. 남들에게 다 있는 그게 나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안타깝게 남자 친구도 탈모 진단을 받았다. 그는 새까맣고 촘촘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가졌다. 그런데도 탈모란다. M자로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해서 탈모약을 복용 중이다. 원래 머리숱 없는 데다가 탈모가 의심되는 여자와 탈모약을 복용하는 남자.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죄가... 있다. 아기도 탈모일 확률이 너무나 확실해서 이 정도면 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안 그래도 출산 계획이 없었는데 자꾸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만 많아진다.




어제는 진심으로 우울한 마음을 담아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나 진짜 대머리 되면 어떡해?"


여자 친구의 이런 물음(시험)에 예상할 수 있는 남자 친구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괜찮아. 그래도 예뻐." 하는 감성적인 대답, 또는 "예쁜 가발 사줄게." 하는 실용적인 대답, 또는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하는 회피의 대답과 "..." 즉, 대답의 포기이다. 사실 예전에도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1번으로 대답했었고, 그 말이 뭐라고 또 위안이 되어 금세 고민을 잊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이번에도 1번이 좋겠다. 그렇게 대답해주라. 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입술이 열린다. 1번... 제발 1번...


" ㅎㅎㅎ 그럼 나도 약 끊을게. "


예상을 빗나간 그의 답변. 어쩔 수 없이 대머리가 되어버린 여자 친구와 일부러 대머리가 되려고 하는 남자 친구라니. 눈이 마주친다. 아 나 우울한데... 웃을 타이밍 아닌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 결혼하면 서로의 대머리는 지켜주는 걸로. 각자 방에서 가발 쓰고 나오는 걸로. 그니까 내가 너보다 일찍 안 일어나도 되는 걸로. 서로 어울리는 가발도 선물해주고. 서로 언제까지나 풍성한 모습으로. 그거 좋겠네. 상상하는 와중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 만약에 만약에. 최악의 순간이 온대도 우린 그렇게 나름대로 재밌을 거야. 최악의 순간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장면으로 교체된다.


그의 위로법은 제대로 통했다. '대머리가 되어도 혼자는 아니겠다.' 하는 안도감과 함께 '남자 친구까지 대머리를 만들 순 없어!' 하는 악바리 근성이 생겼다. 얘는 무슨 죄야... 대머리 커플이 될 순 없지!!! 그의 위로법은 머리카락을 심지는 못했으나, 탈모 극복 의지를 빼곡히 심어주었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 친구를 위해서. 정말 약을 끊어버릴지 모를, 아니, 머리를 다 밀어버릴지 모를 그를 위해서라도 나는 탈모를 꼭 막아야겠다. 


인생은 싸움이다. 한 번에 몇 개의 전투를 동시에 치러내는지 정신이 없지만, 탈모에 잠시 굴복했던 나는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이전에는 질 수밖에 없는 이유 투성이었지만, 이제는 이겨야만 하는 이유 하나만 남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는 덮여진 정수리를 쟁취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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