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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e Jul 16. 2020

헤이 브로 - 닿지 않는 나의 동생에게

닿고 싶은데, 닿을 수 없이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한 가족인데. 같은 집에 산 게 20년인데도. 언젠가는 그에게 닿을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닿는 것이 그에게 불편하지는 않을까. 닿고 싶은 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닐까, 나의 동생아.




남동생과 나는 4살 차이이다. 차이가 많이 나지도, 그렇다고 적게 나지도 않는 그런 거리감이 우리 사이에 있다. 차라리 아주 가깝거나 아주 멀었다면. 애매한 거리감을 애매한 나이차 탓으로 돌려본다. 같은 배 속에서 나왔는데도 우리 둘은 참 다르다. 취향도, 성향도, 성격도, 좋아하는 음식 조차도. 우리가 합의를 이루는 건 엄마의 실수를 타박할 때뿐이다. 사실,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성격은 대충 알겠는데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예측할만한 데이터는 쌓이지 않았다. 그를 참 모르고 살아왔다. 하긴, 한 인간을 꿰고 있으려면 함께한 시간이 길거나 굵직한 에피소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이엔 그런 게 없다. 같은 집에 살았어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왔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가 추억을 만들어갈 시간, 그마저도 20살에 끊겼다. 내가 먼저, 다음엔 그가 차례로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방학이나 명절에라도 집에서 부대끼면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지 않냐고 한다면, 그러지 못했다. 둘만 있어도 꽉 차는 집이라 들어갈 엄두를 못 냈고, 나는 '기숙사에 남아 공부를 하겠다'는 핑계를 댔었다. 남동생도 같은 핑계를 대는 거 보면 우리 집은 여전히 세 명을 넉넉히 담아내기에 불충분하다. 그러한 연유로 20살 이후로는 연속으로 3일 이상 얼굴을 본 일이 없다. 방학에 휴가를 갈 만큼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기에 여름에 다 같이 어디론가 떠나본 기억도 없다. 그러니 우리 사이엔 시간도, 에피소드도 쌓이질 못했다. 깊어질 수 없는 거리감이 잔향처럼 남아있다. 그렇다고 서로를 미워하거나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깊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가 먼저 나에게 미안해했고, 그것을 인지하고는 나도 그에게 미안해졌다. 그 미안함의 시작은 그의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나는 미친 듯이 살을 뺐다. 남동생도 무언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남동생이 직접 서술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다만 그럴 수 없으니, 관찰자로서의 내가 인식했던 그의 변화는 '반항과 방황'이었다. 식구 중 같은 성별로써 아빠와 아들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나름의 돈독함이 있었을 것이다. 아빠를 유달리 생각했던 사춘기 초입의 아들은 아빠를 잃고 제대로 방황했다. 반항심은 그를 새벽 늦게 들어오거나, 새벽에 몰래 나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난 하필 고3이었다. 우리 집은 방 한 칸, 거실 한 칸. 아무리 내가 고3이라도 방 한 칸을 혼자 쓸 수는 없었다. 성별 분리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남동생이 방 한 칸의 주인이 됐다. 나는 엄마와 함께 거실에서 생활했고, 거실은 이미 온갖 가구들로 들어차 책상 하나를 놓기가 버거웠다. 즉, 고3인 나는 내 책상 없이, 동생 방에서 동생 책상을 빌려 썼다.


그런 나에게 동생의 방황은 사실 '아싸비오~!'였다. 동생 책상에서 공부를 해야 했기에 그가 늦게 오면 늦게 올 수록 땡큐였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가도록 동생이 안와 그날의 공부를 모두 마치는 날에는 기쁘기까지 했다. 동생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혹시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하고 있을지, 혹은 나쁜 짓을 당하고 있을지 하는 걱정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동생의 생사와 상관없이, 난 그저 그날의 공부를 끝내기만 하면 되었다. 엄마의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른 어느 새벽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작은 집을 쩌렁쩌렁 울렸다. 동생 방에서 공부를 하던 나는 '동생 왔네. 이제 책상 비켜줘야겠네.' 하는 생각뿐이었다. 문 밖에서 두 사람의 싸움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심하게 책을 챙겼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된 남동생은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나에게 미안해 죽겠다고 그런다. 자신의 반항과 엄마와의 싸움이 고3 누나의 공부를 얼마나 방해했을지, 본인이 고3을 겪어보니까 정말 못할 짓을 했다고 자책한다. 그 싸움 통 와중에 흔들림 없이 좋은 대학에 합격한 누나가 대단하다며 나로서는 얼떨떨한 존경심을 비추기까지 한다. 그 미안함은 충분히 이해하겠다만 '존경'이라는 단어는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존경이라... 내가 그로부터 존경의 눈초리를 받아도 괜찮은가. 그의 늦은 귀가를 환영했던 내가...? 그가 밖에서 어떤 일을 겪던 관심 없었던 내가...? 그가 집에 있는 날이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던 내가...?


인쓰다. 인간쓰레기다. 아무리 공부 핑계를 대더라도 가족으로써, 피붙이로서 그러면 안됐다. 나는 최소한 동생을 걱정했어야 했다. 경찰서를 가는 적극적인 액션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느긋하고 기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안 됐던 것이다. 그가 방황하던 그 시절, 아무 일도 없었어서 다행이지, 혹여나 그 새벽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었다면... 나는 스스로 얼마나 자책해야만 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10년이 넘어선 지금에서야 그의 무사귀환이 감사한 일이 됐다. 그리고 10년이 넘어선 지금에서야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넌 미안한 마음과 존경의 눈초리를 받을 자격이 없어. 한없이 미안해야 하는 인간은 바로 너야. 이 사실마저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넌 정말 너밖에 몰랐구나.' 이기심이 보인 잔인함과 비인간성에 몸서리가 쳐진다.




마음 여리고 착한 내 동생은 여태껏 나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딘가 풀 죽은 모습, 어딘가 의욕 없는 모습, 어딘가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 그런 것들이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바보야, 미안해야 하는 사람은 누나란다. 너의 죄보다 나의 죄가 더 크단다. 네가 미안한 것보다 더, 내가 미안해해야 해. 그러니 나에게로 뻗은 죄책감을 거두어들여도 된단다. 우리 둘 사이에 느껴지는 싸한 거리감은 이런 것들의 복합체겠지? 뭔가 조심스러운 너에게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어. 가면을 벗은 우리가 허심탄회하게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많은 것들이 괜찮아진 나는 이제 그에게로 닿고 싶다. 그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는 그를 감옥에서 풀어주고 싶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대하지 않다고. 그러니 그리 조심스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닿을 수 없는 것은, 10년 전의 이기적인 마음과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나 말고 그를 중심으로. 그의 입장에서. 기다리고자 한다. 그도 허심탄회해지고 싶을 때까지. 그도 나에게로 와 닿고 싶을 때까지. 피상적인 대화들 말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까지. 그도 가면을 벗을 때까지. 다만, 자발적으로 벗을 때까지. 그동안 답답하게 흘러갈 시간들은 10년 전 이기심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련다. 언제가 됐던 닿을 수만 있다면. 우리 사이의 장막을 걷어낼 수만 있다면. 불편과 어색함 없이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늦어지더라도 언젠가는 마침내 우리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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