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현대인의 일과 삶의 고찰
쉽게 읽히는 글이 시시하다면?
조금 버거우면서도 곱씹게 되는
알랭 드 보통의 일상 철학
이 책은 A로 시작했다 B로 도달하며 나름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사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만약 알랭 드 보통의 문체가 쉽지 않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도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읽는데 꼬박 한 달 걸렸다) 그래서일까. 알랭 드 보통은 호불호가 있는 작가라는 말도 있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나서다. 그녀의 책은 요즘 시대를 찰떡같이 반영하여 마치 내가 느낀 감정을 나열하듯 격공의 연속으로 술술 읽히는 소설이어서 그 이름을 따온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문체는 단어 하나하나 걸려 넘어지는 고전만큼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술술 읽히는 요즘 소설은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정도의 난이도인 것 같다. 읽다 보면 엥 여긴 어디.. 난 누구...? 지금 무슨 이야기지? 하며 다시 되돌아가 읽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한문단도 기계적으로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처음엔 약간 후회 반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묘하게 시선이 머무는 문장들이 있다. 읽을수록 의미가 진해지는 듯도 하고 다양하게 해석되는 듯도 하다. 그래서 이번 책은 주관적 책갈피가 엄청 많을 예정이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그랬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가 나는 아몬드 맛 에세이'라고. 처음엔 쉽게 읽히지 않아서 이 책만 다 읽고 다신 이 작가 책 읽지 말아야지.. 했는데 읽다 보니 문체의 매력을 조금 느낀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른 책도 도전해볼까 생각 중이다. (지금 말고 나중에..^^)
이 책은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알랭 드 보통이 느끼는 일에 대한 생각과 고찰을 담았다. 사실 일이라고 하면 관심 있는 분야의 일만 생각하고 살다 보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화물선, 물류, 비스킷 공장, 직업 상담, 로켓 과학, 화가, 송전 공학, 회계, 창업, 항공 산업 총 10개의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인의 생활을 들여다본다.
그는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와 함께 이 직업여행을 시작했고, 글 사이사이에 그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글 중간에 있으니 당연히 글의 부연설명일 거라 생각하며 함께 봤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도 지금 생각해보니 뻔하지 않은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덕분에 사진과 글을 좀 더 유심히 비교해 보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이 사진 왜 이 구절에 껴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책의 제목 또한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다. 왜 일의 '기쁨'과 '슬픔'일까? 몇몇 리뷰를 찾아보면 일의 기쁨과 슬픔을 파트별로 나누어 일에서 기쁨은 무엇이고 슬픔은 무엇인지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는데 약간 억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사 구분하듯 감정을 최대한 섞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라 그런 걸까. 그런 존재에 슬픔과 기쁨이라니.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사전적 의미의 기쁨, 슬픔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무언가는 아닌 것 같다. 일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들과 환경들, 그것들이 어우러져 묘하게 기쁨과 슬픔으로 느껴지는 그 어떤 것(?) 같다.
옮긴이는 내 맘을 아는지 이렇게 말한다.
책의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니. 왠지 안 어울린다. 그렇다, 사랑의 기쁨이나 사랑의 슬픔이라면 딱 들어맞는 느낌도 들고, 실제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의 보람이라는 말이 어색한 것처럼 일의 기쁨도 좀 어색하다.
알랭 드 보통이야 평소에 함께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한데 묶어놓고, 서로 낯선 것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효과를 살피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아닌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약간의 애매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옮긴이(정영목)의 소감을 통해 무언가 깔끔하게 해소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일을 기쁨이나 슬픔과 연결시키면 어색해질까? 일이나 일터는 감정이 배제된 영역이 되곤 한다. 일터에서 벗어났을 때 알게 된 사람이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옮긴이는 일에 대한 본인의 경험도 담는다.
나 또한 일에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실 일은 어떤 거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것 같다. [...]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일을 원경으로 멀리서 보아야만 할 듯하다. 그의 장점은 일을 원경으로 포착하는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자재로 줌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도 초점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원경, 중경, 근경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입체감을 살려가면서 일을 명상한다는 것이 그의 진짜 장점인 듯하다.
일 안에 있을 때는 열중하느라 정신이 없다. 쳐내기 바쁘다. 막상 그 일에서 나와야만 그 일을 전체적으로 보며 기쁨과 슬픔을 종합해볼 수 있는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지 않고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다른 일들의 기쁨과 슬픔을 엿볼 수 있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맨 뒤에 있던 옮긴이의 글을 읽고 책을 시작했다면 좀 더 이해도를 높인 상태에서 글을 이해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람은 거의 평생 일을 하고 산다. 경제적 허덕임에, 또는 커리어의 향상을 위해 나자신을 채찍질하며 정신없이 일하는 시간도 참 많았는데.. 나는 어떤 '목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일을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잔잔히 생각해 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그 질문에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에 닿아보는 것도 하나의 작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한번 생각을 되짚어 봐야겠다.
자기 셔츠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자기 집 샤워 호스를 세면대와 연결시키는 고리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는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이 구입한 물건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여행을 했는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 도시의 여느 박물관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지역이지만, 관광 안내 책자들은 이곳에 관해 하나같이 입을 다문다.
사실 먹을 것이라고는 보온병에 든 커피가 전부인 채로 '헨드리키에 바딩'이라는 이름의 배 앞에서 폭풍우를 맞으며 두 시간을 보낸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감동을 받았는가 하는 순진한 질문을 탐구해 들어가는 것보다는 사실들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우리의 열광을 표현하는 것이 쉬워 보인다.
그들은 늘 어떤 직업의 물절적 혜택보다는 그 일 자체가 주는 재미를 더 높이 평가한다.
창고는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루하게 보이기로 작정한 듯한 부지에 펼쳐져 있다.
집안의 낮의 질서가 밤에 이루어지는 그런 노동에 의해 지탱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거대한 식량 창고는, 적어도 산업화된 세계에서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다음 끼니를 어디서 찾아먹을까 안달하는 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동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겉으로는 어느 때보다도 법을 잘 지키고 고분고분하게 살지만, 밑에서는 소리 없이 분노가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우리가 매일 자제와 질서의 제단 앞에 복종하면서 속으로는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알 수 있다.
"몰디브에서 낚시로 포획." 포장지에 적혀있다. 묘비명만큼이나 간략하고 감질나는 주장이다.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진짜 문제는 비스킷을 굽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5천 명의 삶과 6개 제조 현장으로 계속 확장되고 분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게 여겨지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오직 제한된 수의 일꾼의 손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질 때에만, 그래서 그 몇몇의 일꾼이 자신이 작업시간에 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하는 순간에만 의미 있게 보일 수도 있다.
회사가 그 직원들에게 숭고한 이상을 제시하는가. 직원들이 그 이상을 위하여 온 힘을 쏟고 자기 삶의 가장 큰 부분을 내어놓는가.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 산업 혁명의 핵심에 자리 잡았던 능률과 생산성의 극적 향상이 [...] 평범한 물질적 상품을 공급하는 일을 넘어 확대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일까?
우리는 과자를 빠르게 만드는 데는 분명히 전문가지만 아직도 감정적 안정이나 결혼의 조화를 이루어줄 믿음직한 수단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1866년 존 러스킨이 쓴 야생 올리브의 왕관(The Crown of Wild Olive)에 나오는 한 구절이 기억났다. "모든 낭비 가운데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낭비는 노동의 낭비다."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런 태도는 그 이후 2천 년 이상 지속되었다. 경제적 요구는 사람을 노예나 동물과 같은 수준에 놓는 것이었다. 육체노동은 정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기형을 낳는다고 보았다. 시민은 노동하지 않고 소득을 얻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할 때만 음악과 철학이 주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논리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유럽의 부르주아지는 이 쾌락을 결혼과 일로 가져오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으며, 우리 또한 이런 흐름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우리가 무얼 하고 싶은지 아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게 한심하게 느껴진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다. 원하는게 무엇인지 아는 것은 굉장한 심리적 성과다.
돈과 지위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진정으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능력을 소멸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직업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대학 4년 + 직장생활 9년 내내 하고 있는 이 일에서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아 난감했다. 나는 이 직업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걸까. (괜찮다. 생각해보자. 무얼 하고 싶은지 아는 게 얻기 힘든 심리적 성과니까.. 자기 위로 중)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혹시 내 생각과 행동이 예외는 아닐까?라고 걱정될 때 한번쯤 생각해 보자. 내 생각이 규칙이고 보편적 규칙이 예외일 수도 있다. 규칙과 예외를 정의한 그 기준에 대해서 천천히 되짚어보자.
전통은 바꾸거나 조사할 수 없는 것이다.
빙산, 사막, 화산, 빙하 같은 것들을 보면 우리가 끝이 있고 한계가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위대한 거장들은 관대하다. 500년 뒤에 태어난 제자에게 기법과 관련된 지혜를 나누어주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의 관심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공감하고 상상하려고 노력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말 그대로 미리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측도 할 수 없는 자연환경에 끌렸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의 그림은 우리가 이미 본 것을 눈여겨보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물을 본 적 있어요?" 테일러가 묻는다.
"제대로 본 적이 있냐는 거죠?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송전탑을 따라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도로에서 벗어나 비정통적인 각도에서 풍경을 배회하고, 담장을 넘고, 숲을 통과하고, 철도 아치 밑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일상 언어에서는 전기 네트워크가 관련된 것보다 훨씬 더 기본적인 의미를 전달하라 때도 엄청나게 많은 단어들을 불안정하게 잔뜩 쌓아 올려야 했다.
권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재구성되었을 뿐이다. 사장이 자신의 앞선 위치를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평직원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부하 직원들은 그가 그들과 운명을 공유하는 척할 때 보여주는 신실함에 감탄하지만, 그는 속으로는 자신이 보통 사람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때에만 다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사무실 고참들은 환경을 길들이는 데 능숙하다.
공동 주방에 어디에 자기 먹을 것을 감추어야 하는지, 언제 화장실에 가야 세면대에서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일을 피할 수 있는지 등의 예시를 든다. 알랭 드 보통 회사생활한 적 있나. 왜 이렇게 잘 알아?
오늘 같은 하루를 어떻게 마감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설 때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해결책은 와인이다.
그래서 좁은 자취방에 바 테이블과 의자를 샀다. 거기 앉아서 분위기 있게 술도 먹고 커피도 마시려고.
마침 와인도 있다. 가끔씩 맥주 한 잔에 넷플릭스를 보는 건 직장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크한 해결책이다.
우리 욕구의 의미심장한,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아직도 상업의 메커니즘에 묶여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흔히들 좋은 생각은 바보라도 할 수 있으나, 수익이 나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위대한 정신을 가진 소수뿐이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은 현대 소설의 하위 장르인 사업계획서 장르에 속하는 이야기를 쓰고, 거기에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인격을 부여받은 등장인물들을 집어넣었다.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으면 엉덩이에 총알을 박아버리겠어."
이 말만 듣고 이 남자가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는 돈의 가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며, 내가 20달러짜리 지폐를 몇 장 내밀자 밤에 문을 닫을 때까지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좋다고 허락을 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feat. 리처드 베이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