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로 느끼는 불행과 슬픔의 극대화
학창시절 옛문학이 문득 생각날 때.
인생의 슬픔을 아는
어른에게 추천하는 단편소설
어쩌다가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을 다시 읽게 되었는지. 한적한 어느날, 왜 때문인지 럼블피쉬의 '예감좋은 날'이 생각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기분 좋게 듣다가 문득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이 생각났다.
고등학생 땐 멜로디에만 집중하며 음악을 들었다. 그 때 들었던 럼블피쉬의 '예감좋은 날'은 제목만 보고 마냥 신나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고 가사를 다시 보니 이별을 예감한 한 여자의 슬픔이 담겨있었다.
'운수좋은 날' 소설 또한 운수가 좋다는 말 뒤에 깔린 그 시대의 비극이 더 극대화되는 소설이다. 리디북스에 가면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수업시간에는 억지로 공부해야하니까, 구지 선생님의 강의와 함께 들어서인지 너무 길다고 느껴졌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꽤 짧은 단편 소설이었다.
아픈 아내와 어린 아이가 있는 인력거꾼 김첨지. 아내는 한달 넘게 기침이 그치지 않고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한채 점점 아파 간다. 그날은 아내가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아픈 아내를 뒤로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인력거를 끌고 밖으로 나온 김첨지. 근 열흘동안 돈 구경도 못한 그에게 아침부터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아픈데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말이 맴돌았지만 모처럼만에 찾아든 행운을 잃지 않기 위해 열심히 손님을 실어나른다.
돌아오는 길에 치삼이라는 친구와 선술집에 들어가 한잔 나눈 후 아내가 먹고 싶다던 설렁탕 한그릇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개벽(1924)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돈이 없어 약 한첩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는 약을 주어 병을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찾아올거라는 말로 현실을 위로한다. 이 소설은 반어적 표현으로 슬픔을 극대화한다. 소설 사이사이 반어적 표현이 슬픈 감정을 더 사무치게 한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한 손님을 인력거로 실어나르며 걷다 다리가 무거워진다. 가는길이 집 근처로 다다른 까닭이다. 오늘은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말에 새삼스러운 염려가 가슴을 눌렀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그 염려를 억지로 억누르며 다시 집에서 멀어진다. 아내를 위해 돈을 벌러 나갔지만 그 때문에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더구나 오늘은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말이 비극적인 현실을 더 슬프게 한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묘하게도 가장 함축적이며 기억에 남는 부분.
실상은 너무나 슬프고 비극적이기에.